법무부는 지난 14일 오후 <'프락치 강요 사건' 국가배상소송 항소 포기>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보도자료에 나온 '프락치 강요 사건'이란 1983년 9월경 국군 보안사령부의 이른바 '녹화 공작 및 선도 업무'의 일환으로 군 복무 또는 대학 재학 중 불법 체포 및 감금 되어 가혹 행위를 당한 후 동료 학생에 대한 감시 및 동향 보고 활동(일명 프락치 임무)을 강요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의 피해를 호소하며 2023년 5월 18일 국가에 위자료를 청구하였고, 이에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2023년 11월 22일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1인당 인용액 9000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선고했다.
이 선고에 대해 법무부는 소송수행청인 국방부의 항소 포기 의견을 존중하는 한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신속한 회복을 위해 항소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힌 것이다.
법무부는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해 항소 포기 결정을 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피해자분들께 사과와 위로의 말을 드린다"라는 한동훈 장관의 말도 전달했다.
이날 보도자료 배포 후 언론에는 '한동훈 장관, 프락치 강요 피해자 2명에게 사과'라는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 댓글에는 법무부와 한동훈 장관의 항소 포기와 관련해 환영의 글이 다수 달렸다.
"국가의 사과가 이렇게 가벼워서야"
그러나 정작 프락치 강요 피해자와 관련 단체는 반발했다.
먼저 이번 소송을 지원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센터(이사장 홍인식, 소장 황인근)은 입장문에서 "40년 만의 사과가 피해자도 알지 못하는 기습사과"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사과는 "기만적 사과"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항소 신청 마지막 날인 14일 즉, 법무부의 항소 포기 보도자료가 나간 당일까지 법무부는 항소 신청을 유지했다가 그 후에야 취하했다면서 이는 피해자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12월 7일 해당 사건 피해자인 이종명 목사가 이미 소천했다"며 피해자가 사망한 것을 법무부가 알고 있었는지 되물으며 "국가 폭력에 대한 사과는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야 하며 국가의 사과가 이렇게 가벼워서는 안 된다"며 법무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실제 이번 녹화 공작 피해자인 박만규·이종명씨는 함께 국가배상소송에 참여해 승소했으나 지난 12월 7일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이종명 목사가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그럼에도 이번 법무부 보도자료에는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언급이나 위로의 말은 없었으며 단지 생존 여부와 관계없는 사과의 입장만을 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해" 항소를 포기한다는 법무부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최초 지난 11월 22일 국가 배상 선고 후 국가는 12월 12일 항소장을 작성해 12월 14일 오전 11시경 항소장을 제출했었다"라며 국가의 항소 의지가 지속되었다는 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국가 배상 소송 과정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수용하지 않는다거나 소멸시효를 주장하고, 배상 금액이 많다는 등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를 애써 축소하려 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 피해자들은 국가에 매우 실망했었다"라며 항소장 제출 시에도 국가의 태도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늦게나마 국가가 항소를 포기했으나 소송 과정에서 보인 국가의 태도는 결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려는 태도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도대체 누구에게 사과한 건가"
프락치 사건의 당사자 2명 중 현재 유일한 생존자가 된 박만규 목사는 법무부의 사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까지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은 바가 없다. 당연히 법무부나 국방부 관계자 누구에게도 사과받은 사실이 없다. 도대체 한동훈 장관은 누구에게 사과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함께 소송을 했던 이종명 목사가 고인이 된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1심 재판에서 국가를 대리한 소송 수행자가 권리 소멸을 주장하며 피해를 애써 축소하려고 했던 이중적 태도를 보여 놓고 이제 와서 사과라니 이렇게 성의 없는 사과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사과라면 공개된 자리에서, 무엇을 잘못했고,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한다는 최소한의 입장을 피해자 앞에서 밝히는 것이 사과 아닌가."
국가의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한다는 점에서 이번 법무부의 태도는 환영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동안 프락치 강요 사건 국가 배상 소송에서 보여왔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부정, 배상액 축소 주장, 소멸시효 주장'이 반복된다면 피해자들은 국가의 사과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사과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인권센터 입장문 말미에서 요구한 것처럼 최소한 법무부 장관과 피해자의 만남을 통해 피해자의 요구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 국가의 태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 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