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로 13번째 기일을 맞은 박완서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그녀의 소설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박완서의 소설 가운데 은근하며 분명하게 흐르는 어머니의 서사, 그 중에서도 격동의 시기에 온몸으로 가정을 지탱한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다. 자전적 연작소설인 <엄마의 말뚝>이 바로 그 작품이다.
소설은 40여년 전인 1980년 태어났다. 그 1980년으로부터도 다시 40년쯤 전의 이야기다.
화자는 여덟 살짜리 시골 소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녀를 엄마는 서울로 데려간다. 아빠는 맹장이 터져 괴로워하다 죽었는데, 서울이었다면 간단히 살릴 수 있었을 병이었다. 시부모가 한 거라곤 무당을 찾아가는 것뿐이었다. 귀한 아들은 굿 한 번 열기도 전에 숨을 거뒀다. 엄마가 시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올라간 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소녀의 눈에 비친 서울살이는 상상과 전혀 달랐다. 달동네 중에서도 꼭대기, 그마저도 집주인 눈치를 봐야하는 셋방살이였으니 소녀가 아니래도 같았을 터였다.
천진한 시선으로 그린 엄마의 서울살이
홀로 된 엄마는 기생들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린다. 엄마 따라 먼저 올라온 오빠는 소학교를 다니며 공부에 매진한다. 위험한 동네라 바깥을 나다니지도 못하고, 집에서 할 일이라곤 오빠가 내준 글공부를 하는 게 고작이던 시기였다.
오늘의 독자가 소녀의 천진한 시선을 따라 엄마의 서울살이를 읽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소녀가 적어간 문장과 문장 사이, 홀로 두 아이를 지켜내려 안달하는 30대 젊은 여성의 고달픔이 그대로 읽히기 때문이다.
아들 둘을 전문학교에 보낸 물장수를 '김씨 할아버지' 하고 부르며 예우를 다하는 모습에서, 제 아들 따귀를 올려붙인 집주인에게 한 마디 항의도 하지 못하고 손을 부르르 떨던 장면에서, 딸을 사대문 안 학교에 보내겠다고 먼 친척들을 찾아다니던 것에서, 너만은 반드시 신여성이 되어 마음먹으면 못하는 것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던 순간에서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 알알이 읽힌다.
책을 읽으며 제목인 <엄마의 말뚝>이 대체 무엇일까 계속 궁금하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난 말뚝은 엄마의 집이었고, 고생이었다. 바닥에 고인 물에 비친 푸르른 하늘처럼 간신히 비치는 희망이기도 했다.
어렵게 돈을 끌어 모아 달동네 가장 꼭대기에 집을 마련한 가족들, 그 집을 소독하고 빈대를 잡고 무너질까 걱정되는 축대를 비가 오는 날마다 내다보면서 소중하게 지키고 키워나갔던 희망이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엄마에겐 나름의 말뚝이 있다고
엄마는 꿈이 이뤄지고 가족들이 서울에서 번듯하게 살게 된 뒤에도 늘 제 말뚝이 박힌 시절로 마음을 이끌고 간다. 말뚝에 매어놓은 끈을 붙들고서, 예전엔 이랬는데 그때는 그랬는데 하고 돌아가곤 하였다. 엄마는 바늘도 박기 힘든 곳에 말뚝을 박아두고서 자주 옛 일을 돌아보았다. 지나가버린 궁상스런 그 시절을 엄마는 엄마의 마음으로 지탱하고 견뎌냈다.
책을 덮으며 모든 어머니들에겐 나름의 말뚝이 어디엔가 박혀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어머니에겐 지금이 바늘 하나 꽂히지 않는 땅에 말뚝을 박아 넣는 시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철없는 자녀는 엄마의 말뚝 박기를 거들 수도 없다. 모두에겐 각자가 박아 넣어야 할 나름의 말뚝이 있는 것이므로.
문득 수십 년 뒤 옛 집이 사라진 달동네를 찾아 엄마를 떠올리는 화자의 심정으로 가만히 생각한다. 내 어머니가 박아 넣은 말뚝은 대체 얼마나 처절한가 하고서, 그 말뚝은 얼마나 굳건한가 하고 말이다. 문득 어머니와 마주 앉아 내 어머니에게 있었을 말뚝에 대해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