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낙동강 감천 합수부(해평습지)를 다시 찾았다. 반가운 겨울 철새 재두루미 수십 마리가 그곳 모래톱을 찾아 월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이기도 해서 멀리서나마 그들의 모습을 다시 지켜보고 싶었고, 그 모습을 통해서 낙동강의 생태적 회생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이날 감천 합수부를 찾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귀한 새' 재두루미는 정확히 54개체였다. 순차적으로 온 녀석들이 벌써 일주일째 머물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바로 날아가지 않을 것으로 봐서 그대로 월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의, 서너 개체의 재두루미 한 가족이 감천 합수부를 찾아 월동한 적은 있지만, 50개체 넘게 월동한 적은 없다. 더군다나 이곳 해평습지는 재두루미보다 흑두루미 도래지로 유명했던 곳으로, 흑두루미 수천 개체가 도래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3년 전인 2020년부터 흑두루미들은 발걸음을 완전히 뚝 끊었다. 심각한 교란 요소가 발생한 것이다. 가까이에 새로운 도로가 신설된 것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이나 가장 심각한 변화는 낙동강에서 찾을 수 있다.
낙동강이 거대한 물그릇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흑두루미들은 넓은 개활지 같은 모래톱이 있어야 내려와 쉴 수 있다. 수백 개체가 한꺼번에 움직이기에 천적 등으로부터 피신할 안정적 거리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사방이 확 트인 모래톱을 선호하는 것이다.
4대강사업 전 낙동강은 거의 모든 구간 넓은 모래톱이 존재했다. 그 덕분에 흑두루미들은 낙동강을 따라서 이동하며 월동지인 일본 이즈미와 순천만까지 날아갔다. 이른바 흑두루미들의 '낙동강 루트'가 존재해온 것인데, 이 '낙동강 루트'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낸 게 바로 4대강사업이다.
모래톱을 모조리 준설하고 보에 물을 채우자 광활했던 모래톱이 깡그리 사라져버렸다. 낙동강은 거대한 물그릇으로 변했고, 생명이 찾지 않는 곳으로 급격히 변해갔다. 흑두루미들이 '낙동강 루트'를 버리고 '서해안 루트'를 이용하게 된 이유 또한 마찬가지 원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낙동강 일부가 드문 드문 예전 모습으로 복원되면서 철새 혹은 야생동물들이 이곳을 찾아와 머물다 가거나 이곳을 월동지 삼아 겨울 한철을 나고 다시 고향으로 날아가곤 하게 된 것이다.
감천 합수부가 대표적인 곳으로, 감천에서 흘러들어온 모래톱이 이 일대를 4대강사업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시켜놓았고 그 현장을 재두루미가 포착해 이곳에 내려앉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 개체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이번에 54개체까지 늘어난 것이다.
철새들의 이동길인 '낙동강 루트' 복원을 위해서는
앞으론 지금보다 더 많은 개체들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이 현상이 흑두루미들의 낙동강 루트 복원 가능성을 높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런 현상이 긍정적으로 발전한다면, 과거 수천 마리 흑두루미 도래지로 명성이 높았던 해평습지로의 복원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점쳐볼 수 있을 듯하다.
이처럼 4대강사업은 야생동물들에겐 아주 가혹한 결과를 남겼다. 물길이 깊어지면서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모래톱이 사라지면서 겨울철새들이 떠났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깊어진 물길이 강 이쪽 저쪽으로의 이동을 차단하면서 야생동물들도 오갈 수 없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서식처도 반토막이 났다.
수천년 아니 수억년 동안 이어져오던 자연의 질서가 만 2년이 조금 넘는 공사로 인해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그렇게 급격하게 만들어진 변화를 서서히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감천 합수부 해평습지인 것이다. 여름철 폭우와 태풍 등으로 불어난 강물은 감천의 모래를 이곳 합수부로 실어와 이전 삼각주 모습으로 복원시켜 놓았다.
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반긴 것이 바로 이들 야생동물들이고, 그 중의 한 그룹이 겨울철새들이다. 재두루미들도 오랜 기간 이동을 하면서 이곳에 만들어진 변화를 눈여겨 봐왔을 것이고, 이번에 50개체가 넘게 찾아온 것일 테다.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월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구미시가 이들의 먹이를 주기적으로 공급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시는 벌써 수년째 이곳에 겨울철새들의 먹이인 볍씨를 제공해주고 있다.
낙곡을 주워먹을 먹이터가 사라진 현실(소먹이용으로 볕집을 곤포사일리지로 싸서 모조리 걷어가버려 낙곡이 남아있을 수 없는 현실)도 이들이 낙동강을 떠나게 만든 주요 원인이라, 그 먹이를 공급해줌으로써 먹이터가 사라진 현실도 극복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연적인 변화가 따라야 한다. 낙곡을 주요 먹이로 삼아온 이들을 위해서 농경지를 계속 확보해줄 필요가 있다. 또 볏짚을 소먹이용으로 둘둘 말아 곤포사일리지로 만들어 모두 가져갈 것이 아니라 일부를 놔둠으로써 겨울철새들이 그곳에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오랜 세월 되풀이 해온 방식을 회복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6천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도래해 월동하는 결과를 이끌어낸 순천시처럼 말이다. 그 오랜 질서에 따라 흑두루미들은 누대로 이곳을 찾아온 것이니 그 질서를 회복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
'흑두루미 떼창'이 만든 장엄한 풍경... 이 장면 자체가 다큐 https://omn.kr/26vmz)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고, 공존의 질서를 회복하자
그 질서의 정점은 바로 낙동강의 부활이다. 보로 막힌 낙동강의 보를 열어 강의 흐름을 회복하고 모래톱을 복원시켜서 수억년 동안 지켜져온 '오래된 미래'를 복원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들 야생의 친구들은 물론 인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보로 강을 막아놓으니 여름철부터 늦가을까지 독성 녹조가 창궐하고 그 독이 수돗물과 농작물 심지어 공기 중에서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위험천만하고도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낙동강네트워크 임희자 집행위원장)"이다.
흐르는 강은 녹조를 잠재울 것이고 모래톱을 복원시켜 낙동강의 수질을 더욱 깨끗이 만들어줄 뿐더러 겨울철새들을 비롯한 여러 야생동물들에게도 안정적 서식처를 제공할 것이다. 결국 인간과 야생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공존의 질서를 회복시킬 것이란 이야기다.
아울러 농경지들이 사라져가는 현실도 극복돼야 한다. 특히 겨울철새들이 날아와 먹이활동을 하던 들녘에도 축사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다. 신규 축사를 추가로 들이는 것과 지금처럼 곤포사일리지로 볏짚을 수거해가는 '싹쓸이 방식'도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농경지를 유지하고, 볏짚도 일부 남겨둬 겨울철새들이 생존을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공존의 질서다. 순천시처럼 농민들과 영농단을 꾸려서라도 일정한 면적의 농경지를 공존의 공간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순천시는 시의 적극적 행정으로 매년 흑두루미를 보러 수십만 광광객들이 찾는 생태관광의 '메카'가 되어가고 있다.
구미시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구미시를 위해서도 좋고, 더불어 그것이 야생과 인간이 공존해가는 길이기 때문에 생태적 질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따라서 '공단도시 구미시'를 넘어, '생태도시 구미시'와 같은 혁신적이고도 미래지향적 슬로건을 내세우는 생태적 변화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5년 동안 낙동강의 변화상을 기록해오고 있습니다. 낙동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