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에서 도카이도 본선의 열차를 탔습니다. 열차는 세키가하라(関ヶ原)역에 도착합니다. 짧은 정차 끝에 열차는 다시 서쪽으로 달립니다. 이제 세키가하라를 넘었습니다. 세키가하라의 서쪽, 간사이(関西) 지방에 도착한 것입니다.
간사이는 일본 제2의 도시권입니다. 오사카와 교토, 고베를 비롯한 거대한 도시들이 모인 곳이죠. 인구가 도합 2,200만에 달하는 지방입니다.
일본 경제산업성 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간사이 지역의 GDP는 약 85조 엔입니다. 같은 해 네덜란드 전체의 GDP와 비슷한 수준이었죠. 일본 수도권의 GDP 약 105조 엔에도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독자적인 경제권을 이루고 있는 만큼, 간사이 지역이 가진 특성도 분명합니다. 실제로 간사이는 많은 부분에서 도쿄가 위치한 간토(関東)와는 달랐습니다.
음식 문화부터 차이가 많죠. 타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가 오사카의 대표 음식이라면, 도쿄에서는 주로 몬자야키를 먹죠. 같은 우동을 시켜도 도쿄에서는 가쓰오부시와 간장으로 맛을 낸 우동이, 오사카에서는 다시마와 소금으로 맛을 낸 우동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성향도 많이 다릅니다. 오사카 사람들은 유쾌하고 활달하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면, 오사카 사람들은 쓰러지는 척 연기를 하며 받아준다는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유명하죠.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나 에도 막부가 있던 동일본은 무사들의 땅이었습니다. 반면 교토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은 오랜 기간 귀족과 덴노의 땅이었죠. 서일본은 세토내해(瀬戸内海)와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호(琵琶湖)를 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해운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죠.
반면 간토에는 넓은 평야가 있습니다. 덕분에 운송은 주로 육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간사이를 배(船)의 땅으로, 간토를 말(馬)의 땅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문화적 차이가 크다 보니, 간사이 사람들이 갖는 애향심도 깊습니다. 물론 도쿄와의 경쟁심도 있죠. 도쿄의 야구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간사이의 야구팀 한신 타이거스는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라이벌 팀이기도 합니다.
'지방 소멸'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국의 이야기만은 아니죠.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 역시 '지방 소멸'을 먼저 겪어내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이라는 용어는 일본 총무대신을 역임한 마스다 히로야(増田寛也)의 보고서를 계기로 주목받은 말입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뿐 아니라, 청년의 '수도 집중'이 인구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었죠.
마스다의 지적대로, 일본 인구의 도쿄 집중과 지방 소멸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벌써 도쿄의 외항인 요코하마는 인구수로 오사카를 뛰어넘었습니다. 도쿄 수도권은 일본 전체 경제 규모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키가하라를 넘어, 간사이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한국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죠. 흔히 바다를 끼고 있는 제2의 도시권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오사카와 한국의 부산을 비교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서울 수도권은 한국 전체 경제 규모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선진국 가운데에서는 유례없이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 1,000대 기업 중 743개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간사이에는 여전히 일본의 대기업 상당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최대의 제약회사인 다케다제약, 일본 기업 중 시가총액 3위인 키엔스가 오사카에 있죠. 닌텐도의 본사는 교토에 있습니다.
한국의 대학입시에서는 '인서울'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통용될 정도로 서울의 사립대학이 강세를 보입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도쿄의 사립대학보다 지방의 거점 국립대학이 더 강세를 보이죠.
입시의 결과로 대학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지방 도시가 청년 인재 유출을 보다 덜 겪으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른 분위기가 간사이에는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도쿄를 향해 모이는 세상에서도, 버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간사이에는 묻어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오사카의 지역정당인 '일본유신회'의 포스터가 많이 보입니다. 간사이에서만 볼 수 있는 지역 언론이나 방송사, 은행도 있었습니다.
그런 지방색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지역주의가 만든 비극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일본의 지역 정당도 오히려 지역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일본유신회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2025년 오사카 엑스포는 과도한 예산 사용으로 벌써부터 국민의 반발을 빚고 있습니다. 오사카의 행정 체계를 도쿄와 비슷하게 확대하는 '오사카도 구상'에 대한 주민투표도 있었지만, 지역정치의 역량만 소비한 채 부결됐습니다. 역시 지역정당이 만든 실책이었습니다.
일본의 지방 정치가 만들어낸 실수까지 따라 갈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지방은 한국의 길을 만들어 가야겠죠.
하지만 이제 그런 길을 갈 수 있는 지방의 정치적, 경제적 역량이 한국에 남아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습니다. 청년 인구의 유출과 일자리의 부족, 인프라의 부실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지방 정치에서 역동성까지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겠지요.
오늘도 화려한 도톤보리의 거리는 불을 밝혔습니다. 역시 오사카에 본사를 둔 대형 제과업체, 글리코에서 만든 전광판이 도톤보리강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한국인이 많이 보입니다. 코로나19 봉쇄가 끝나고, 엔화 가치의 하락과 함께 일본 여행이 많아진 것이 실감나는 풍경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는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한국의 지방 도시가 그릴 수 있는 미래도, 오사카의 화려한 거리와 조금은 더 가까워졌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