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생명의 집 금호강아, 힘차게 흘러라!!"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금호강!!"
경북 포항시 죽장면 가사리 '가사지'. 13일 오후 4시 30분경 이곳에 모인 4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힘차게 외쳤다. 이들의 외침은 쩌렁쩌렁 울리며 메아리가 돼 골짜기 여기저기를 울리며 퍼져나갔다. 그 메아리는 마치 부모가 사랑스런 아이를 대하듯 이 일대를 따뜻하게 쓰다듬는 듯했다.
그랬다. 이곳은 금호강의 발원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들은 금호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금호강 대구 구간에 자리잡고 있는 '팔현습지'를 아주 사랑하는 이들로 소위 '팔현의 친구들'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팔현의 친구들', 금호강 시원(始原)을 찾아가다
대구 3대 습지 중 하나인 팔현습지를 사랑한다 함은 금호강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들은 이날 금호강의 시원(始原)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13일 아침 8시 30분에 시작된 여정은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발원지인 포항 죽장에 다다를 수 있었고 이곳에서 발원지인 '가사지'에서 모여서 이 일대를 둘러보고 함께 '금호강 사랑'을 외친 것이다.
골짜기를 울린 그들의 외침은 드론에 실려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고 그 외침은 저 멀리 대구까지 닿을 듯했다. 대구시민들에게 혹은 대구 홍준표 시장에게 가닿기를 희망하면서.
이곳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첩첩산중 골골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마침 포항시에서 몇해 전 만들어놓은 사방댐으로 모였고, 그 물길은 작은 저수지를 이루었으니, 팔현의 친구들은 이름 없는 그 저수지에 '가사지'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이곳은 명실상부한 금호강의 발원지로 명명했다.
사실 금호강 발원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금호강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의 가사령(佳士嶺,500m)과 기북면 성법령(省法嶺, 709m)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금호강은 경북 포항시 죽장면 가사리에서 발원하여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서 및 달성군 다사읍 낙동강 합류 전까지 총연장 114.6km이며 유역면적은 2087.9㎢에 이른다. 금호강 유역은 낙동강 전체 유역면적의 약 9.2% 정도를 차지하며 동서로 걸친 장방형 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즉 가사령과 성법령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물길이 이곳 가사지에서 모여 비로소 계곡을 형성, 가사천으로 흘러들고 그 가사천이 자호천으로, 자호천이 여러 지천들에서 모여드는 물길을 모아서 비로소 금호강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금호강은 이렇게 포항 죽장에서 발원해 영천을 거쳐 하양으로 해서 대구 달서구와 달성군에 이르러 낙동강과 만나는 낙동강의 제1지류에 해당하는 강으로, 대구 구간에서는 42킬로미터나 흐르며 대구를 동서로 관통해 '대구의 젖줄'로 불러야 할 강인 것이다.
'팔현의 친구들'과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은 그 시원을 찾아 대구서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포항 죽장까지 내달렸다. 그곳에 다달아 금호강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했다.
산업화 이후 다시 찾아온 금호강의 위기
그 이유는 금호강에 불고 있는 개발 바람 때문이다. 금호강은 썩어서 사실상 죽은 하천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부활한 하천이다. 산업화의 바람을 따고 대구에서 우후죽순 생겨나 발전한 섬유산업은 금호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수질질표인 BOD 200ppm(수질 최악의 지표가 10ppm을 넘지 않는다)이 넘는 완전히 썩은 하천으로 전락했던 것이 지난 산업화 시절의 금호강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91년 낙동강에서 터진 '페놀 사태'는 식수원인 강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교정을 요구했고 그때부터 하천을 돌보는 움직이 일기 시작했다. 90년 말부터 하수종말처리장이 곳곳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80년 들어서서 그동안 금호강의 물길을 급격히 막아왔던 영천댐의 변화(영천댐과 임하댐이 도수로 연결돼 임하댐에서 많은 물을 공급받게 됨)로 2001년부터 영천댐에서 하루 25만9천톤씩의 하천유지수를 보내주기에 이르자 금호강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금호강의 수질은 BOD 2~3ppm의 맑은 물길로 돌아왔고, 그러자 그 안에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들이 돌아왔다. 금호강 팔현습지에서만 14종의 법정보호종이 발견됐다는 것은 금호강 부활의 한 상징인 것이다.
이렇게 금호강이 되살아난 지 얼마나 됐다고 "시민 이용 중심의 금호강"을 내세운 대규모 토건 사업이 예고됐다. 대구시는 '금호강 르네상스'란 이름으로 여기에 환경부까지 가세해 교량형 산책로를 건설하려 한다. 위치 또한 멸종위기종의 '숨은 서식처'이자 집단 서식처인 팔현습지 하식애 앞이라 논란이 됐다.
팔현습지 하식애에는 오랜 세월 이곳에 터를 잡고 번식을 이어오고 있는 수리부엉이 부부가 살고 있다. '팔현의 친구들'이 각각 '팔이'와 '현이'로 명명했다. 팔현습지를 보금자리 삼아 생존을 이어온 그들은 올해도 산란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고 새봄을 지나 초여름이 오면 곧 어린 수리부엉이가 이곳에서 비행 연습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하식애 앞으로 8미터 높이의 교량형 보도교를 건설해 이곳에서부터 화랑교를 넘어 동촌유원지까지 이어지는 1.5킬로미터에 이르는 산책로 겸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시민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현재 국가하천을 관리하고 있는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사업 계획이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의 서식처를 망치는 공사를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는 위기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에 '팔현의 친구들'은 이 개발 사업을 반대하면서 여러 활동을 하던 중 금호강 발원지를 찾아 그곳 산신들과 여러 정령들에게 금호강의 안녕을 빌었다. "제발 뭇생명들의 집 금호강을 지켜달라고, 금호강은 인간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뭇생명들과의 공존의 공간"이라고 말이다.
이들을 대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의 다음 행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은 이날 거의 대부분 결의에 찬 각오를 밝혀주었다. 그중 몇 사람들의 발언을 인용해 본다.
팔현습지, 반드시 지켜내
"'금호강 디디다'팀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사실 실제로 금호강에는 작년 5월부터 계속 갔거든요. 근데 긴 구간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제 금호강에 많은 애정이 생겼어요. 또 팔현습지에 대한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이 생겨서 저희가 이번에 책(<팔현반상회>)도 출간했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팔현습지를 위해 (공사가 시작되면) 저희는 다 같이 눕기를 약속했기 때문에 함께 팔현습지를 지키는 데 동참을 하겠습니다."('금호강 디디다' 리더 국악인 서민기)
"팔현습지 앞쪽에 살아서 평소에도 자주 산책을 갔었는데 이제 더 자주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다른 친한 사람들한테도 이런 현실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고 또 더 좋은 건 직접 가서 이곳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 곳인지 많이 이야기를 나눠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팔현습지 인근 주민 이예린)
"'간질간질간질'의 김태욱입니다. 팔현습지에 보도교가 설치되는 곳, 그러니까 그 개발될 곳을 직접 가본 건 처음이었는데 보면서 든 생각이 뭐가 부족해서 여기에 그런 걸 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생태기행을 계기로 제 스스로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이 금호강과 팔현습지를 위해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계기가 진짜 생긴 것 같아요. 작게나마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예술인 김태욱)
"저는 수성구 의원 정경은이라고 합니다. 팔현습지에서 이번에 공사하는 구간이 수성구이기 때문에 수성구의회에서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는데 힘에 부쳐서 못했습니다. 근데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저는 희망이 조금 생겼고요. 이렇게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주시면 팔현습지 공사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함께 힘을 모아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정경은 수성구의회 의원)
"저도 수리부엉이, 민물조개 등을 보면서 습지가 이런 곳이구나 제대로 느껴본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걸을 때 땅이 폭신폭신한 느낌 그게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박미란)
"여러분이 했던 모든 활동들이 의미가 있는 게 저 같은 일반시민이 한 명이 알게 되면 저를 통해서 또 제 주변에도 알리게 될 거고 많이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누릴 만한 모든 것들은 이미 많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동물에게 그 자리를 내어줘야 될 것 같습니다. 팔현습지를 지켜내는 데 저희 일반시민이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안내해 주시면 제가 큰 용기 내어서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대구 북구 주민 석은경)
"오늘 역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봄 그리고 여름, 가을 모습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주변에 공사를 하신다든지 하는 이런 분들도 직접 와서 한번 자기들이 다른 관점에서 한번 보고 느끼면 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 이경주)
"제 생각에 지금 현재 팔현습지는 정말 꽤 중요한 종들이 안식처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게 강 양쪽 수변 전체를 개발해서 그들이 불안감을 가지고 정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즘에 거의 안 쓰고 있는 정책인데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한쪽만 개발해 주민들한테 내주고 다른 한쪽인 팔현습지는 지금처럼 그냥 새들이나 자연에 두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생각합니다."(충남대학교 백운기 교수)
"우리의 싸움이 참 힘든 국면인 것 같아요. 결국은 자본과의 싸움이겠죠. 토건 자본 그리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막강한 정치 세력들. 지금까지는 환경이니 생명이니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자본을 축적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런 게 우리를 억누르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힘이 든 것인데 그러나 여기 오늘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셨잖아요. 예술하시는 분들도 많이 오셨고 또 오히려 다음 세대인 자식한테 이끌려서 오신 부모님도 여기 계시고요. 이런 게 굉장히 희망적인 사인이죠. 굉장히 반갑고 환영하고요.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을 제가 드렸지만 또 희망도 있는 것이고 그리고 결국은 현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결집돼서 나타나느냐 이게 결국 제일 중요한 관건이라고 봅니다.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대구환경운동연합 이승렬 의장)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