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찾은 팔현습지는 '겨울 철새들의 왕국'이었다. 대구 동구 방촌동 금호강 제방에 서서 맞은편 팔현습지 쪽을 바라보면 강물 위에 점점이 박힌 것들이 보이는데, 모두 겨울 철새들이다. 물닭에서부터 청둥오리, 쇠오리, 알락오리, 홍머리오리, 비오리 같은 오리류들이 많다. 드문드문 민물가마우지도 보인다.
그 오리들 사이에는 놀랍게도 멸종위기종 조류들도 섞여 있다. 바로 큰기러기와 큰고니다. 마침 필자가 도착했을 때 20여 마리의 큰기러기들이 갑자기 날아올라 잠시 선회 비행을 하더니 인근으로 내려앉는 장관을 선보이기도 했다.
큰고니는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세 마리는 주식인 식물 뿌리를 케먹는지 강 가장자리까지 다가가 머리를 강물 속에 박은 채 열심히 '물질 쇼'를 펼쳤다. 이들은 벌써 몇해 전부터 이곳을 찾았고 올겨울에 어김없이 이곳에 매일 나타나고 있다. 팔현습지가 이들이 쉬기에도 안정적이란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사람들의 대규모 주거지인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는 이곳까지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팔현습지의 입지 때문이다. 강의 흐름을 기준으로 오른쪽인 대구 동구 방촌동 쪽은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다. 그러나 반대편인 팔현습지 쪽은 산지 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다. 즉 인간의 간섭이 없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멸종위기종이란 이 예민한 친구들이 팔현습지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2년 '강촌햇살교'가 들어서면서 팔현습지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넘어들어가기 시작했고, 2020년 들어선 수성파크골프장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팔현습지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팔현습지도 이전 같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동 동선은 강촌햇살교와 수성파크골프장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부분에 집중되고 그 라인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은 사람들이 거의 들어가지는 않는다. 오른쪽으로 인공 정원과 흙길 산책로를 닦아놓아서 그곳으로도 사람들의 유입이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다.
그래서 어느 정도 평형을 이루어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철새들이 아직 이 곳을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정도의 개입은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겨울 철새들이 강 안을 점령하고 있다면 강 바깥 산지 절벽을 점령한 채 마치 이곳의 수호신 혹은 터줏대감처럼 금호강을 굽어 살펴보고 있는 존재가 있다.
팔현습지의 수호신 수리부엉이
이곳의 붙박이 텃새로, 바로 백수(百獸)의 제왕다운 위용을 뽐내며 하식애 절벽에 자리잡고 낮이면 두 눈을 감은 채 잠을 자고 있는 수리부엉이 부부가 그들이다. 이들 부부가 정확히 언제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건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은 필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다.
지난해는 산란까지 했고, 그 새끼 세 개체의 존재도 확인했다. 지금은 다 분가했고 부부만 남아 올해도 대를 이어 번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무사히 산란에 성공한다면 올여름 새끼들이 비행 연습을 하는 장면을 또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동적 평형을 바탕으로 평화로운 나름이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이 팔현습지에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바로 문제의 교량형 보도교 사업이 여름 이후 착공을 기다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벌이는 것으로 주민 편의를 내세우면서 높이 8m, 길이 1.5km에 이르는 산책길 보도교를 산지를 따라 동촌유원지까지 길게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길이 들어서면 이곳의 평화는 완전히 깨질 것으로 보인다. 팔현습지에 이나마 겨울 철새들이 찾고, 14종의 법정보호종이 서식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접근이 없는 산지 절벽 구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 지금 길을 내 사람들이 드나들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동촌유원지와 이곳을 연결해서 그곳의 사람들까지 이곳 팔현습지로 유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생태적 고려가 전혀 없는 이 계획은 '삽질'이라 비판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일부 시민들은 "이런 사업을 어떻게 환경부가 행할 수 있냐"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당장 8m 높이의 교량형 보도교가 들어서면 수리부엉이 부부는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낮 시간 하식애 절벽에서 잠을 자야 하는데 바로 앞으로 사람들이 이동을 하면 잠을 청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둥지가 그대로 드러나 산란 또한 용의치 않을 것이다. 보도교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의 안정적인 서식처를 망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팔현습지의 평화... 환경부가 결단해야
벌써 두 차례 팔현습지를 다녀간 꾸룩새연구소('꾸룩새'는 수리부엉이의 애칭) 임봉희 부소장은 "수리부엉이는 둥지를 틀면 그곳에 특별한 교란 요소가 없는 한 최소 수십 년은 살아 간다"고 했다.
거꾸로 가도 한참을 거꾸로 가는 환경부가 아닐 수 없다. "이럴 것이면 환경부가 뭣 하러 하천관리권을 국토부로부터 이양받았냐"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환경단체로부터 나오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환경부가 토건 사업을 강행하고 환경부가 그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란 심의를 하는 이상한 구조인 것이다. 환경부가 선수(낙동강유역환경청)와 심판(대구지방환경청)을 모두 함께하면서 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 사업은 환경부의 그림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 믿어본다. 왜냐하면 멸종위기종 겨울 철새들이 이곳을 매년 찾고 있고, 터줏대감인 붙박이 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 역시 이곳을 안정적인 서식처로 삼아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최후의 보루로서 살아남아 있는 한, 겨울 철새들이 이곳을 매년 찾는 한, 환경부는 이 사업을 결코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장관이 찍어누르듯 지시를 한다 해도 환경부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이를 그냥 묵과하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공무원들은 적어도 환경이 좋아 환경부를 택했을 것이고, 환경적 마인드가 철저한 이들의 집단일 것이기 때문에 이 사업이 강행되는 것을 결코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환경부다운, 환경부스러운 환경부 공무원들의 입장이 보다 절실한 이유다.
팔현습지는 딱 지금 선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이 선을 넘는 순간 동적 평형은 깨어져 생태계는 망가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수리부엉이가 하식애를 떠나고 큰고니와 큰기러기뿐 아니라 모두 14종에 이르는 법정보호종을 이곳에서 내쫓지 않으려면 환경부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그래야 환경부가 환경부다워지고 이 나라게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자연생태를 보호해야 할 환경부가 자연생태를 파괴하는 일을 결코 벌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 공사가 강행된다면 환경부는 더 이상 환경부가 아닌 것이 되고, 그것은 국가의 한 시스템이 깨진 것이다 다름없다. 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정부부처들로 인해 이 나라는 대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환경부의 결단과 환경부 직원들의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해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