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스탈린 치하 공산주의 독재를 풍자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말미에 나오는 이 문장은 온갖 계략을 동원해 농장의 지배권을 확립한 돼지(스노볼) 정권이 농장에 걸어놓은 문구이다. 평등의 형용모순과 같은 이 문장은 '어떤 동물'은 '특권 계층'임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그 '어떤 동물'은 당연히 정권을 잡은 스노볼을 비롯한 돼지 무리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은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용하는 표제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얼빈 임시정부'라던 행안부, 왜 사과 않나
 
    오류 투성이 행안부 홍보물.
  오류 투성이 행안부 홍보물.
ⓒ 행안부

관련사진보기

 
2024년, 한국사회는 그 '어떤 동물'에게만 더욱 평등한 사회일지도 모른다. 정부 혹은 대통령 등 고위 관료가 내보내는 '허위정보'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고, 언론사의 '오보'에는 유독 강경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그렇다. 일례로 삼일절 행사를 공식 주관하는 행정안전부의 '하얼빈 정부' 사태를 보자. 이 사태는 행정안전부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일제 당시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하얼빈'에 세워졌다고 '허위정보'를 게재한 사건이다(관련기사: 행안부의 황당한 3.1절 설명... 만주서 임시정부가 시작? https://omn.kr/27mp3). 

복잡한 역사 사료 조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포털 검색만 해도 나오는 기초적 사실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계정은 버젓이 틀렸고 왜곡했다. 문제가 되자 행정안전부는 뒤늦게 이를 삭제하고 "철저한 검수를 통해 유사한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깊게 확인하겠다"고 공지하면서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게 '단순한 실수'라고 하면서 사과 한마디 없이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틀리기 어려운 걸 틀린 것이어서, 이게 정말 '실수'인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허위정보', 이른바 가짜뉴스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해왔다. 윤 대통령도 얼마전 저커버그 메타 CEO를 만나서도 "가짜뉴스는 자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이번 행정안전부의 '허위정보' 사태 역시 정부 차원에서 강경하게 대응해야 하는 게 마땅할 것인데, 그냥 이대로 넘어갈 모양새다. 그저 삭제했으니 끝난 거라 판단한 걸까. 그런데 정부가 아닌 언론사 '오보'를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 9월 YTN이 흉기 난동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잘못 내보낸 사건이 있었다. YTN은 즉각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그저 방송사고였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동관 당시 위원장은 "고의"라면서 YTN을 형사고소하고,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냈다. 경찰은 YTN 관계자를 수차례 불러 조사했고, YTN 본사 압수수색 영장까지 신청하기도 했다. 몇개월의 수사 끝에 경찰은 결국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헌법상 비례성 원칙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두 사안을 생각해보자. 행정기관이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 역사를 왜곡하는 '허위정보'를 공식 계정을 통해 적시한 것. 이제는 자연인이 된 이동관 전 위원장의 사진이 '흉악범 사건' 보도할 당시 앵커 배경화면에 잠시 노출된 것. YTN은 그나마 '유감'을 표명했지만, 행안부는 '양해', '사과', '유감'은 언급조차 않았다. 헌법 근간을 이루는 역사의 왜곡, 이동관 전 위원장 개인의 인격 침해, 어떤 사안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까.

"10원 한장 피해 없다"던 대통령, 왜 가만히 있나
 
지난 2023년 7월 2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최은순씨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은 후 법정구속 됐다.
 지난 2023년 7월 2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최은순씨는 징역 1년을 선고 받은 후 법정구속 됐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사실 이렇게 비교하면 한도끝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 장모는 300억 통장 잔고증명 위조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받았는데, 대선 후보 당시 "10원 한장 피해준 적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대선 당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던 김건희 여사는 최근까지 '요란한 내조'를 하다가, 명품백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겨우 조용해졌다. 틀린 말, 뒤집힌 입장에 대해 어떤 언급이나 사과도 없었다.

반면 김만배씨 녹취 보도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들에 대해선 검찰이 '조작'이라고 규정하고, 수차례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관련 보도를 한 MBC 등 방송사에 대해 법정제재(중징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풍자한 영상마저도 '가짜'라는 딱지를 붙여서 차단 조치했다. 차단해야 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입일까, 아니면 풍자 영상일까. 

'자유평등주의'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정부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크게 두가지를 제시했다.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배려를 해야 하고, 동시에 개인의 책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평등한 배려'에는 행정부의 법 집행이 위정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균등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걸 전제로 한다. 드워킨은 자신의 이론을 집대성한 저서 <정의론>의 말미에서 "정부는 피지배자들을 평등한 배려와 존중으로 대우해야 한다"며 '정의로운 정부'의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지금 우리는 로널드 드워킨의 정의로운 나라에 살고 있나, 아니면 동물농장의 돼지들이 지배하는 '어떤 동물들은 더욱 평등한' 농장에 살고 있나. 
 

태그:#윤석열, #김건희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