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언련 총선 특별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여섯 번째로 이종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기자 주
언론 프레임에 따라 늘어나는 '보도시간'
중앙일보가 3월 첫째 주 포털 네이버 메인뉴스(6개)를 통해 가장 오래 보도한 선거, 정당 관련 기사는 무엇일까? 민언련 총선보도 모니터링 데이터에 따르면,
<전여옥 "김신영, 문재인 시계 자랑해서 잘렸다? 황당">(3월 6일 정시내 기자)가 가장 오래 보도되었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이 방송 관련 사안에 대해 좌파 커뮤니티 활동을 비판한 내용이다.
언론사는 중요한 뉴스일수록 해당 기사를 중요한 위치에 배치하거나 오래 노출하는 방식으로 차별화한다. 해당 기사는 네이버뉴스(N뉴스) 언론사편집판 '중앙일보' 메인화면에 12시간 이상 노출됐다. 그런데 방송 프로그램 사회자 교체가 국회의원 공천이나 후보 관련 보도보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유명인 관련 이슈에 이념 갈등을 추가한 기사가 포털 이용자 클릭을 유도할 것으로 판단한 결과로 추정된다.
조선일보가 이 기간 가장 오래 보도한 기사는
<"뜻밖의 맨눈 공개"… 한동훈, 아기가 안경을 벗기자 보인 반응>(3월 6일 박선민 기자)이다. 충북 청주 육아맘 간담회에 참석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안고 있던 아기에게 안경을 빼앗기고도 능숙하게 행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다. 총선과 관련해 정당 공천, 지역 판세, 후보 인물과 공약 등 언론이 유권자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은 산적해 있다. "맨눈 공개" 기사로부터 유권자가 어떤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이 역시 언론사가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흥미유발형 기사를 오래 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언론이 어떤 이슈를 눈에 띄게 보도하는지는 민언련 선거보도 모니터링팀뿐 아니라 유권자 모두가 주시해야 할 과제이다. 정치성향에 따른 편향적 보도와 유익하지 않은 선정적 보도에 휘둘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관찰을 위해서는 언론의 보도량(기사건수)을 넘어 보도시간(기사노출 시간)에 주목해야 한다. 저널리즘 연구에서 어떤 이슈가 언론에 의해 중요하게 다뤄지는 정도를 '이슈 현저성(issue salience)'이라고 한다. 보통 보도건수로 측정된다.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 사회자 교체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안경 관련 이슈는 많은 기사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므로 이슈 현저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사가 이슈를 오래 보도하면, 해당 이슈는 많은 이용자들에게 노출되면서 현저성을 갖게 된다. 정당의 공천 상황보다 방송 프로그램 사회자 교체나 한동훈 위원장 안경 관련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언론의 기사건수 이외에 기사노출 시간에도 주목해야 한다.
선정적, 편향적일수록 포털 노출시간 길다
보도시간(기사노출 시간)을 중심으로 3월 첫째 주 네이버뉴스에서 언론사별로 가장 오래 노출한 기사를 더 살펴보자. 우선,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윤석열 대통령 민생토론회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가장 오래 보도했다. 민생토론회는 보도건수로만 보면 현저성이 높은 이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언론은 민생토론회를 오래 보도하며 중요한 이슈로 의제화했다.
더불어민주당 공천 관련 보도는 동아일보, 한겨레, JTBC, MBN 등이 가장 오래 보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보도시간 관점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공천 관련 갈등과 반발이 두드러지게 다뤄진 것이다. 국민의힘 공천 비판을 오래 보도한 경우는 MBC에서만 관찰됐다. 더불어민주당 공천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의 지형이 보도시간에도 반영된 셈이다.
언론계와 학계 일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 반발이 국민의힘에 비해 더 강하므로, 현실을 반영하는 언론이 더불어민주당 상황을 더 많이 보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비판 기사가 국민의힘 관련 기사에 비해 포털 메인뉴스에 더 오래 걸려 있는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불어민주당 반발 의원이 많다는 것이 더 많은 기사로 나타날 수 있지만, 개별 기사가 더 오래 보도돼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기사의 보도시간에는 언론사 프레임과 뉴스 이용자 눈치보기가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갈등 상황을 흥미 위주 프레임으로 오래 보도하면서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TV조선은 한동훈, 오마이뉴스는 박은정?
언론이 가장 오래 보도한 기사는 언론사의 정치성향을 대변하는 모습도 보인다. 보수성향 TV조선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지원유세를, 채널A는 검찰의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를 오래 보도했다. 반면, 진보성향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오래 보도한 기사는 해임된 박은정 검사의 정권 비판을, MBC에서 가장 오래 보도한 기사는 국민의힘 공천 후보의 문제점을 다뤘다. 정치성향에 따라 언론사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대한 보도시간을 차별화하고 있다.
한편, KBS는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의 별세를 길게 보도했다. 다른 언론에서도 다뤄졌지만, 총선 관련 사안들만큼 주목받지는 못한 사안이다. 그런데 KBS는 총선보도가 쏟아지는 시기에 왜 손명순 여사의 일생을 가장 오래 보도했을까? 사건 중요성이나 뉴스 이용자 관심 정도를 고려하면, 해당 뉴스는 포털 메인뉴스에 가장 오래 노출될 만한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KBS 뉴스가치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민언련 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 KBS 총선보도량이 MBC나 SBS에 비해 매우 적게 집계된다. 우리나라 대표 공영방송이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에게 충분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보도건수 넘어 '보도시간' 주목할 때
요즘 저널리즘 생태계 변화를 철학자 바우만의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를 본떠 '유동적 저널리즘'으로 요약한다. 마감시간이 없어지고 즉각적 보도와 지속적 업데이트가 관행화하면서 뉴스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액체성을 띠게 된 것이다. 언론을 감시하고, 개별 기사를 모니터링하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졌다.
언론 감시의 관점을 뉴스보도량에서 보도시간으로 전환하거나 추가해야 할 때다. 포털 이용자 클릭 수에 집착하는 언론이 편향적이고 선정적인 저품질 기사의 보도시간을 늘려 끼워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보도량에 주목하는 사용자들과 연구자들의 감시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 총선을 앞두고 언론 보도의 양적인 차이와 시간적 변화 모두를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종혁(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슬로우뉴스, 2024총선시민네트워크 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