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머선일인교, 말이나 됩니까?"
지난 29일 <오마이뉴스>가 만난 부산 연제구의 일부 여당 지지층은 여론조사를 크게 불신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후보가 진보당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는 점 자체를 받아들이질 못했다.
지역 토박이인 박순자(81)씨는 숨은 보수표인 이른바 '샤이 보수'였다. 박씨는 "조사가 너무 야당 편이라 짜증이 난다. 전화가 왔을 때 받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22대 총선에서 격전지가 된 연제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출렁이는 민심... 국민의힘보다 앞선 진보당 후보
몇 달 전만 해도 여당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듯 보였던 부산 연제구는 여야 후보의 맞대결로 재편됐다. '정권심판'으로 뭉친 민주당·진보당이 극적인 후보단일화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문 전 연제구청장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노정현 진보당 후보가 본선으로 진출했다.
이후 공표된 첫 여론조사 결과는 다소 이변이었다. 부산MBC·부산일보가 KSOI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노정현(47.6%) 후보가 김희정(38.3%) 후보를 오차범위 밖으로 밀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의 국정운영 부정평가는 57.3%, 정권심판 여론도 54.6%에 달했다. 연제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하지만 박씨처럼 아직 많은 이들이 자기 의사를 드러낸 게 아니었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동네 곳곳을 돌며 여러 의견을 물었다.
대형마트 옆에서 노점을 하는 김아무개(72)씨는 노 후보 지지자였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그는 "물가로 진짜 힘들다. 이번엔 서민들 챙기는 후보에게 힘을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손에 쥔 붕어빵 재료 값은 8천 원에서 최근 들어 1만2천 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이와 달리 연제구청 앞에서 운동기구를 움직이던 50대 김정민씨에게 야권은 미운털이 박혔다. 김씨는 여당을 밀겠단 생각이 확고했다. 그는 "대통령이 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야당이 이기면 탄핵하려고 할 텐데 무조건 막아야 한다"라고 눈을 흘겼다. 그는 현 정권을 지키기 위해 여당 후보가 되길 바라는 쪽이었다.
질문이 말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지지후보를 정했느냐는 물음에 신리삼거리의 두 60대가 서로 언성을 높였다. 박아무개(62)씨가 "김건희랑 윤석열이 하는 꼬라질 봐라. 열받는다. 이번엔 야당이 이길기라"라며 얘길 꺼내자, 함께 있던 정아무개(63)씨는 "뭐라카노, 여기서 진보당이 우째 되겠노"라고 받아쳤다.
20·30세대 또한 대파·채상병 등 여러 사안에 영향을 받았다. 부산교대에서 마주친 1학년 김수현씨는 대통령의 '대파 한 단 875원'을 끄집어내며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라며 실망감을 표시했다. 군대에 가야 하는 2학년 이아무개씨는 "해병대 사건을 보면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미 마음을 정한 눈치였다. 폐점된 홈플러스 주변에서 유모차를 끌던 30대는 "고물가나 쟁점마다 집권당 책임이 크니 야당에 더 힘이 쏠리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인물은 노정현, 발전은 김희정" - "아직 반반"
한 유권자의 인물 비교도 흥미로웠다. 온천천 인근의 60대 김아무개씨는 "인물은 노정현이, 발전은 김희정이 낫다"라고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그는 "아직 반반이라 마음을 결정한 건 아니"라면서도 "둘 다 장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두 차례나 기초의원을 한 노 후보는 참신하면서 꾸준히 표밭을 갈아 반응이 좋고, 17·19대 재선 의원과 여가부 장관을 지낸 김 후보는 그간 공백에도 현역을 제쳐 경쟁력을 증명했단 설명이었다.
팽팽히 엇갈린 민심에 두 후보는 우선 집토끼를 더 붙잡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모두 경선 후유증이 남아있어 지지층을 먼저 결집해야 투표율과 부동층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양측은 현재 판세를 경합으로 평가했다. 김 후보와 노 후보 쪽 관계자는 각각 "박빙이 맞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건 여당이다. 20대·21대 총선에서는 3.21%P 격차로 여야가 번갈아 의석을 가져갔지만, 최근 두 차례 선거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 대선을 보면 투표한 유권자의 59.26%가 당시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고,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무려 66.34%가 박형준 후보를 밀어줬다. 그야말로 여당의 텃밭이다. 그런데도 정권심판 바람과 노 후보가 다진 표심이 합쳐지면서 구도가 변했다.
이러한 접전 탓에 김 후보는 본선 초반 윤재옥 중앙당 공동선대위원장의 지원을 받는 등 상대에게 공세를 퍼붓는 중이다. 힘 있는 여당 후보론 제시 말고도 진보당을 향한 색깔론을 들이밀거나 이재명·조국 대표를 싸잡아 비판하는 방식으로 선거전략을 수립했다. 유세가 끝나면 읍소를 위한 큰절까지 등장했다. 김 후보는 "반드시 연제를 사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민주-진보 단일후보를 내건 노 후보는 봉하마을로 달려가는 등 민주당 지지층 다잡기부터 나섰다. 그는 참배가 끝난 뒤 "노무현 정신은 우리의 좌표"란 글도 썼다. 공동선대위를 꾸리며 캠프 규모도 키웠고, 선거운동복 등을 전부 파란색·하늘색으로 선택해 변화를 시도했다. '파란'을 일으켜 12년 만인 지역의 야권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겠단 뜻이다.
[관련기사] 합쳐진 부산 남구 대혼전... "정부 속터져" "야당 국정 발목" https://omn.kr/27z4q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는 지난 18일~19일 연제구 만 18세 유권자 50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조사 방법은 무선 자동응답(ARS),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