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긍정적인 편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같은 일이라도 좋게 생각해야 좋아진다"라는 글을 보고 '음, 이 글쓴이는 정말 긍정적이군'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수업을 어르신들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수업이든 공통으로 나오는 글이 있다. 누구에게나 좋은 말이지만 누구도 읽고 싶지 않은, 위와 같은 저런 글이다.
어르신들과 함께 '내 장점 쓰기'를 했던 날이었다. 나는 장점을 뒷받침 해 줄 일상 이야기, 사례를 몇 줄 덧붙여야지 장점이 진짜 장점으로 읽힌다고 강조했다. 내 강조가 별로 설득력이 없었을까. 긍정적인 어르신의 글이 저렇게 나와버렸다.
"실제 생활 속에서 긍정적 마음이 나왔을 때가 있을까요? 실은 아까 쉬는 시간에 이미 말씀 하셨는데"라고 내가 물었다. 어르신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이 수업을 했던 복지관은 언덕배기에 있다. 은은한 오르막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50미터는 숨이 깔딱이는 '깔딱 고개'라는 말이 나올만큼 가파르다. 40대인 나도 처음에는 여기서 헉헉거릴 정도다. 긍정적 어르신은 무릎 수술 후 지팡이에 의지해서 이 깔딱 고개를 건너신다.
어르신들의 미소, 탄성... 글쓰기가 나아진다는 신호
비슷한 연령대 어르신 보행 속도의 절반도 안 나오는지라, 아예 일찍 출발하신다고 했다. 수술은 잘 됐지만 재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다시 나빠진다는 말에 헬스도 매일 하신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수술한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재활을 열심히 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 말에 어르신의 동그란 눈이 가느다란 초승달로 휘어지며 미소가 나왔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읽듯이 줄줄 읊으셨고 나는 재빨리 받아적었다.
"나는 긍정적인 편이다. 무릎 수술 후 이제 끝났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아니다. 수술 후 근력을 키우면 보행이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우리 몸의 힘은 하체에 70프로가 있다고 한다.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근육이 중요하다.
매일 헬스를 하면서 그걸 키우려고 노력한다. 요새는 지팡이 없이 다니는 사람만 눈에 띈다. 언젠가 나도 보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간절한 희망으로 산다."
타이핑 하는 나도, 다른 어르신들도 듣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더이상 설명하고 덧붙일 말도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가 터져나왔다.
장점을 쓰자고 하면 간혹, 어떤 여자 어르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겐 장점이 없다고 하신다. 꼭 여자 어르신들만 난감해 하신다. 그럴 때 쓰는 치트키는 요리다. 밀키트나 배달음식이 없던 시절을 지나오신 분들이라, 요리만큼은 대부분 중간 이상이기 때문이다.
"아까 나온 운동처럼,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따로 있으실텐데요?"라고 내가 물어봤다. 어르신은 귀여운 벙거지 모자를 양쪽으로 푹 눌러쓰며 '그냥 애들이 잘 먹어줘서…'라고만 하시다가 낮고 작게 '어?' 하는 탄성을 지르셨다. 그 탄성이 어떤 신호가 된다는 것을 나도 이제는 안다.
"나는 요리를 잘한다. 우리 애들은 배달 음식보다 내가 직접 해주는 음식을 좋아한다. 냉이 된장무침, 씀바귀, 세발나물 같은 반찬을 잘 먹는다. 시골에 산 적도 없는데 시골 음식을 좋아하는 거 보면, 내가 요리를 잘했다는 뜻 아닐까. 아이들은 내게 시골밥상 음식점을 내보자고도 한다."
두번째 박수가 나왔다. 여기서는 어떤 부분이 요리라는 장점을 뒷받침 해주고 있냐고 질문했더니 '냉이, 씀바귀, 세발나물'이라는 합창이 나온다. 그간의 수업이 헛되지 않았구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글쓰기가 북돋아주는 자기 효능감을 발견한다. 자신에게는 장점이 없는 줄 알았는데 쓰면서 장점을 발견하고는 한다. 듣기엔 좋은 말이었지만 별로 와닿지는 못했던 장점들, 그런데 그걸 글로 쓰고 옮기는 과정에서 누구나 고개 끄덕일 장면으로 선명해진다.
이쯤이면 어르신 정서복지 차원, 정신건강 증진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서 글쓰기 수업을 널리 보급해야 하지 않을까. 노인 글쓰기 수업 의무화는 어떠려나. 다음 수업이 벌써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