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동안 당만 보고 찍었죠. 근데 이번엔 다를 거예요, 달라."
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 쪽에서 만난 모녀는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에 응했다. 이날 50대 최아무개씨는 반려견을 이끌고 의과대학 2학년 학생인 딸과 함께 산책하러 가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최근 쟁점 사안인 의과대학 증원 문제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루 전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를 지켜봤다던 최씨는 "해법은 없고 기존 입장과 똑같았다"라며 뿔난 마음을 다독였다. 20대 의대생 딸은 휴학계를 내며 정부에 저항 중이다. 최씨는 직전 선거까지 보수정당에 표를 던져왔다. 하지만 이번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는 "그동안 국민의힘이었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다"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여론조사 결과가 왜 이래? 해운대갑에 부는 바람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해운대갑도 야당이 외치는 정권심판의 바람에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이 짙어지면서 과거와는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즐비한 고층 빌딩·아파트에 그동안 보수정당이 의석을 넘겨준 적이 없어 서울 강남과 유사하단 평가를 받지만, 흔들리는 민심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씨와 같은 이들까지 등을 돌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달 25일 공표된 KBS부산·국제신문-한국리서치 여론조사(3월 21~24일 해운대갑 만 18세 이상 500명 대상, 전화면접,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심위 누리집 참조)에서 해운대갑 선거는 홍순헌 더불어민주당 후보 43%, 주진우 국민의힘 후보 39%로 박빙 구도였다. 해운대갑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은 지난 21대 선거에선 절대 볼 수 없던 풍경이다.
당시 하태경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는 두 번의 여론조사 모두 두 자릿수 격차로 민주당 후보를 따돌렸고, 실제 개표에서도 22.09%P 차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지방선거 또한 마찬가지다. 해운대 갑·을을 합친 결과이지만, 이 지역은 압도적 지지로 윤석열 대통령과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번 KBS부산·국제신문-한국리서치 조사만 놓고 보면 후보 간 대결뿐만 아니라 정권안정론(45%)-심판론(50%), 국정운영 긍정(38%)-부정(58%) 평가에서 의견이 나뉘거나 여당에 불리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보수세가 강한 지역에 일부 균열 조짐이 생긴 것이다.
센텀시티에서 기자와 얘기를 나눈 김영호(61)씨의 말은 여당의 처지에서 뼈아프다. 김씨는 "고물가로 윤 대통령을 비난하면 주변에서 성질을 냈는데, 요즘은 오히려 동조하는 장면을 많이 본다. 무조건 보수텃밭이란 건 옛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잘하던 하태경이 날리고, 참모를 내려보내면서 뭔가 이상해졌다"며 부정적 분위기를 알렸다.
그동안 해운대갑은 3선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지역구였다. 당내 중진 쇄신 요구에 그는 선제적으로 방향을 틀어 서울 중·성동을로 선거구를 옮겼다. 이후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이러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빈자리를 메운 이가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을 지낸 주진우 후보다. 정치에 뛰어들자마자 그는 전략 공천됐다.
"정권 실세 더 좋아" vs. "야당 당선으로 정신 차려야"
정치 경험이나 지역 연고가 부족하다는 꼬리표가 붙지만, 여당 지지자들은 대통령 측근을 반겼다. 달맞이길에 사는 강아무개(72)씨는 주 후보 지지 의사가 분명했다. 그는 "검사라 정직해 보인다"라고 했다. 일각의 '찐윤' 지적에도 "대통령과 가까운 건 전혀 단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인근 빌라촌의 정상호(46)씨도 이에 동조했다. 정씨는 "특별히 문제 된 게 없잖느냐. 정권 실세가 오면 지역발전에 더 좋다"라고 응수했다.
반면 야당 지지자들은 홍 후보가 적임자라고 맞섰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얘기를 나눈 박민정(39)씨는 "대통령이 너무 일방적이다. 홍 후보같이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 더 많이 돼야 정신 차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상인인 송아무개(57)씨는 "낙하산 말고 주민들에겐 해운대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표시했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여론 속에 지지하는 곳이 없는 이들은 고민에 빠졌다. 무선이어폰을 낀 채 해운대해수욕장을 뛰던 권영달(28)씨는 전형적인 무당층이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어떻게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동안 마음 가는 대로 아무나 찍어왔다는 권씨는 그래도 이번엔 꼼꼼히 판단하겠다는 태도다. 뉴스가 하도 시끄러워 최대한 후보, 정당을 살펴보겠단 것이다.
여야 선대위는 이들의 표심을 잡으려 적극적으로 화젯거리를 만들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본선 이튿날 바로 해운대를 찾아 지원유세를 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부산 경합지역 7곳을 경유했는데, 해운대에서 긴 시간을 소요하며 공을 들였다. 그는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을 내밀며 야당 대표를 깎아내리고, 반대로 "정말 유능한 사람"이라며 주 후보를 추켜세웠다.
야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같은 날 유튜브 라이브로 원격 지원했다. 이 대표는 정권심판 호소는 물론 홍 후보의 기초단체장 시절 공약이행률이 98.7%에 달한단 점을 부각하며 인물론을 동시에 띄웠다. 3일에는 김부겸 선대위원장도 지원에 나선다. 여론조사 결과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반전을 노리는 모양새다.
22대 해운대갑 총선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그 시간은 불과 8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날 저녁 민심 취재의 마지막에 마주친 다른 60대 유권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기자 양반, 지금 서로 다 자기가 유리하다 말해도 결국 깨봐야 압니다."
투표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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