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선거 전후 언론보도와 사회 의제를 짚어보는 총선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시민이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를 얻어 현명한 주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하길 바라며, 열세 번째로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기자말] |
며칠 전 '100분 토론'에서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젊은이가 망친 나라 노인이 구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황당무계한 소리지만 여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70%에 육박한다. 이들은 투표 참여율도 높다. 게다가 올해 선거는 60대 이상 유권자들이 2030 세대 유권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흔히 "투표를 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지만 결국 누가 더 열심히 투표소에 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김진의 표현에 따르면 노인들은 나라를 구하러 투표소에 가는데 젊은이들은 관심이 덜한 상황이다.
우리는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2030 세대의 높은 무당층 비율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비롯해 주류 정치 전반에 대한 강한 불신은 부정할 수 없는 큰 흐름이다.
이 글에서는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별 정치적 성향의 차이를 짚어 보고 총선 이후 정치적 과제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질문] 왜 4050 세대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나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지금의 40대는 첫 투표를 김대중이나 노무현으로 시작했고 계속해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많다. 효순이‧미선이 사건(2002년)부터 시작해 노무현 탄핵(2004년)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2008년), 노무현의 자살(2009년), 박근혜 탄핵(2016년)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의 촛불 집회를 경험한 세대다.
이들은 12년 전 박근혜가 당선됐을 때 30대였고 22년 전 노무현이 당선됐을 때는 20대였다. 이때 모두 이 세대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가장 높았다. 그러니까 지금의 40대는 20년 이상 60% 안팎의 민주당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질문] 나이가 들면 국민의힘을 지지하게 되는 건가
60대 이상 유권자 층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은 건 이들이 나이가 들어 그렇다기보다는 원래 보수 정당 지지율이 높았던 세대라고 보는 게 맞다. 지금의 60대는 노무현 당선 때 40대였고 박근혜 당선 때는 50대였다. 12년 전 당시 50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63%였다. 이들이 60대가 돼서 윤석열 지지율이 67%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세 번째 질문: 386 세대는 보수화된 건가
한때 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386세대는 올해 55~64세가 됐다. 지난 총선 출구 조사 기준으로 보면 50대의 49%가 민주당을 찍었고 42%가 미래통합당을 찍었다. 386이 50대가 되면서 기득권 집단에 편입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여전히 민주당 성향이 강하다.
다만 올해 여론 조사 흐름을 보면 민주당 공천 파동 때 50대가 먼저 흔들렸다. 민주당 공천이 끝나고 '런종섭' 사태 이후 다시 민주당으로 결집하는 분위기다.
[네 번째 질문] 지금의 4050 세대가 나이가 들어도 정치적 지향이 그대로일까
20년 전 노무현 당선의 주력이었던 2030 세대가 4050 세대가 됐다. 지난 20여 년의 데이터를 보면 이들이 국민의힘 지지자들로 돌아설 가능성은 작다. 특정 정당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적 DNA에 가깝다고 본다. 일부는 386 세대처럼 보수 성향으로 돌아서기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60대 이상에서도 민주당 성향 비율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다섯 번째 질문] 2030세대에서 무당층 비율이 높은 이유는
2030세대 중 무당층이 많은 이유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큰 차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4050 세대와 비교하면 2030 세대는 조국혁신당 지지율도 낮다.
눈여겨 볼 부분은 남녀 성별 차이다. 갤럽 조사에서 비례 정당 투표 의향을 물었더니 20대(18~29세) 여성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11%밖에 안 되는데 20대 남성은 25%나 된다. 민주당+조국혁신당 지지율은 20대 여성이 47%인데 20대 남성은 26%에 그쳤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으로(59%) 윤석열을 지지했던 이대남(20대 남성)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 총선에서는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는 게 맞다.
젠더 갈등을 부추겨 윤석열에게 이대남 표를 몰아줬던 이준석의 개혁신당은 20대와 30대 남성에서 12% 수준의 지지율에 그치고 있다(2024년 3월 넷째주 갤럽 여론조사,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응답률: 15.4%.,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030 세대를 끌어안을 공약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국가 장학금을 확대하겠다고 했고 민주당은 게임 중독 근거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민주당이 비동의 강간죄 공약을 내놓았다가 폐기한 것도 이른바 이대남의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권 심판론이 빠뜨리고 있는 것
누군가는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이 정권 심판론이라 말할 것이다. 3년은 너무 길고 한때 '눈 떠보니 선진국'이었던 국가의 몰락과 정부의 부재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올랐고 성장 동력은 꺾였다.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공정과 원칙, 정의, 사회적 연대의 가치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양평 고속도로 의혹과 디올 백 논란,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갈등, '런종섭' 사태를 거쳐 우리는 여기에 와 있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저지르고 수습을 못하고 있는 사안이다.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는 건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와 합당한 처벌 없이는 한국 사회가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렵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정권 심판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너무나도 중요해서 다른 의제와 토론이 모두 지루해 보일 정도다.
그러나 2030 세대의 높은 무당층 비율은 이들에게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이 정권 심판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단순히 2030 세대의 보수화로 설명할 수 없는 뿌리 깊은 정치 불신과 냉소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세대별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과 정치적 효능감이다. 1000만 명이 촛불을 들었지만 5년 뒤 윤석열 정부의 탄생을 지켜봐야 했고 '눈 떠보니 후진국'이 돼 있다. 나라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투표를 하려면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이 정권 심판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정권 심판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슬로우뉴스,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 홈페이지(www.2024act.net)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