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지난해 6월께 서울경찰청 산하 풍속수사대가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위치한 A유흥주점(룸살롱)을 단속했다. B관광호텔에서 영업해 온 A유흥주점은 관광호텔과 유착해 손님들에게 불법 성매매를 알선해 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유흥주점 측은 호텔과 바로 연결돼 있어서 경찰의 단속을 피해 성매매를 할 수 있고, 관광호텔 측은 그 대가로 매일 현금의 객실료를 챙겨왔다는 의혹이 그것이다.
한 달여 후인 7월 28일 YTN은 이러한 단속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단독]"호텔·유흥주점 유착 기업형 성매매"... 경찰수사 확대>라는 제목을 달고, 유흥주점 압수수색과 장부 확보, 직원 휴대전화 확보, 업주 입건 등의 내용을 담았다. 기사만 보면 경찰의 단속에는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한 바로는 기사 내용과 달리 경찰의 성과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경찰과 관광호텔·유흥주점의 유착 의혹 마저 제기되고 있다.
'기업형 유흥주점' 성업 중
1987년 개업한 B관광호텔은 삼성역과 선릉역 인근의 강남 요지다. 지상 5층에 지하 2층의 건물로 일반실과 특실을 모두 합쳐 약 60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관광진흥법상 관광호텔은 사업자의 관광호텔 사용 승인 신청, 관광숙박업 등록심의위원회의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등록된다. 이와 함께 관광호텔업은 음식·오락·휴양 등의 '부대시설'을 함께 갖출 수 있어 사업자가 유흥주점을 부대시설로 허가받아 운영할 수 있다.
B관광호텔이 임대해 준 A유흥주점은 지상 1층과 지하1~2층 등 세 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강남 유흥업계를 잘 아는 C씨는 "두 번 정도 사장과 상호가 바뀌었지만 20년 정도 된 오래된 술집"이라며 "현 사장이 10년 정도 운영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곳은 약 60여개의 룸을 보유하고 있고, 근무하는 여성 종업원들만 2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기업형 유흥주점이라고 할 만한 규모다. C씨는 "지금도 저녁 8시면 20명이 대기할 정도로 성업 중"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A유흥주점에서 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이곳은 현재 서울 강남 대치동의 D유흥주점과 함께 강남에서 잘 나가는 '2차 성매매 유흥주점'으로 유명하다. A유흥주점의 성매매는 외부 숙박업소에서가 아니라 B관광호텔의 실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객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강남 유흥업계를 잘 아는 E씨는 "서울 강남에서 관광호텔과 유흥주점이 유착해 성매매를 하는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라고 설명했다.
B관광호텔 계단마다 무인 자판기(키오스크)가 설치돼 있고, 이 무인 자판가를 통해 객실 카드(키)를 받는다. 관광호텔인데도 '무인 호텔'처럼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무인 자판기로 객실 카드를 받으려면 오직 현금만 사용할 수 있다. 현재는 무인 자판기에 현금 6만 원을 넣어야 객실 카드를 받아 객실에 들어갈 수 있다. 현금 6만 원은 당연히 손님의 술값에 포함된다.
"관광호텔 객실, 유흥주점 손님들 성매매 장소로만 이용"
관광호텔과 유흥주점의 유착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관광호텔로 등록했는데도 3~5층까지의 객실에 일반 손님은 받지 않고 A유흥주점의 2차 성매매 손님들만 받는다는 점이다. 관광호텔 등록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E씨는 "관광호텔이지만 유흥주점과 유착해 성매매 장소로만 사용하고 있다"라며 "관광호텔 측은 장부상으로는 낮에 일반 손님을 받은 것으로 해놓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관광호텔 주인도 객실이 모두 성매매 손님들에게만 제공되고 있음을 알고 있고, 5~6년 전에 단속을 당했는데도 계속해서 임대해 주고 있다"라며 "관광호텔이 사실상 A유흥주점의 불법 성매매를 묵인해 주고 있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호텔 계단에 설치된 무인 자판기에서 객실 카드를 뽑아 객실로 들어가기 때문에 2차 성매매 손님을 무인 호텔 숙박 손님으로 위장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C씨는 "성매매를 일반 숙박으로 위장하기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것도 관광호텔과 유흥주점의 유착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특히 객실 카드를 뽑는 무인 자판기는 오직 현금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관광호텔 측의 탈세도 가능하다. 지난해 경찰도 성매매뿐만 아니라 탈세 혐의까지 염두에 두고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B관광호텔 주인이 경찰의 단속 이후 임대계약을 해지하려고 해도 A유흥주점 측에서 '탈세로 신고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어서 임대계약도 해지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찰의 단속·방송보도에도 유흥주점 성업 중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찰(서울지방경찰청 산하 풍속수사대)은 지난해 6월께 B관광호텔과 A유흥주점의 기업형 성매매, 탈세 등에 범죄 혐의를 염두에 두고 압수수색에 나섰다. YTN도 "경찰은 주점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여 장부와 직원 휴대전화도 확보했다"라며 "알선 내역과 성 매수자 명단 등 성매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주점과 호텔의 유착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라고 경찰의 단속 현황을 보도했다.
하지만 경찰의 단속은 거의 빈손 수준이었다. A유흥주점 측은 단속 정보를 미리 알고 1주일 동안 영업을 안 하기도 했고 웨이터들의 핸드폰을 새로 만들고, 보조웨이터들만 영업하는 것처럼 꾸미는 등 경찰의 단속에 대비했다고 한다. E씨는 "경찰이 단속 나온 날, A유흥주점은 아예 문을 활짝 열어놓고 단속을 맞았다"라며 "손님은 안 받고, 보조 웨이터들이 술을 깔아 놓았는데, 경찰은 보조 웨이터들의 핸드폰을 압수했다, 이렇게 단속을 맞은 것처럼 가장한 거다"라고 전했다. 이는 경찰의 단속이 '알리바이용'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찰의 단속 이후에는 호텔에 암막 커튼을 치고 유흥주점 입구에서 영업부장들과 연결된 손님들만 철저하게 엄선해서 들여보내고 있다는 것. 이와 함께 112 신고로 인해 인근 지구대에서 점검을 나올 경우 웨이터들이 미리 정해놓은 암호를 정해 여성 종업원들을 대피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경찰의 압수수색과 방송사의 보도에도 A유흥주점에서는 지금도 하루에 150건 이상의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단속에도 A유흥주점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단속의 성과나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강남의 유흥업계에서는 경찰과 관광호텔·유흥주점의 유착을 의심하고 있다.
C씨는 "보통 방송사에서 보도하면 겁이 나서라도 문을 닫는데 이곳은 더 영업이 활성화됐다는 것이 문제다"라며 "그만큼 유착 시스템이 잘돼있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지난해 경찰의 단속 전에 'A유흥주점이 B관광호텔과 유착해서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들었다. 다만 관련 정보를 정리해 경찰 고위 간부에게 두 차례나 전달했는데, 다시 단속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정보를 쌓아가고 있고,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해당 유흥주점과 관광호텔은 유착을 통한 성매매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A유흥주점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기자가 지난 4월 11일 저녁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관광호텔은 불이 꺼져 있었고, A유흥주점 영업부장과 마담들만 호텔 밖에 나와 손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