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현재의 부담을 미래에 지우는 방식으로 설계된 현행 연금제도는 경제성장 둔화와 출산률 저하 속에서 파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개혁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선 받을 수 없는 연금을 왜 내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연금이 장기적으로 세대갈등의 도화선이 되리란 분석에도 설득력이 있다.
복지정책을 연구해온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출산률과 경제성장률을 고려할 때 2041년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이 17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1999년 이후 2041년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기금은 쌓여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공단의 성공적 자금운용도 기금을 효과적으로 불려낼 수 있다. 그 정점이 지금으로부터 채 20년이 남지 않은 2041년이다.
양 교수는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57년 기금은 완전히 고갈된다고 경고한다. 그뿐인가, 그해에만 124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평가한다. 2088년엔 수입 337조원, 지출 1120조원으로 적자만 783조원에 이르게 된다. 그것도 그때까지 연금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코앞 다가온 복지대란
소위 전문가들에게 한국사회에 당면한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를 이야기한다. 이 같은 분석엔 상당한 일리가 있다. 한국 인구구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놀랄 만한 속도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시민임에 기초한다면 이 사회의 안정적 존속이 위협받는 긴급상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70%대인 생산연령 인구는 50년 뒤 5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67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46.5%로 절반에 육박할 정도가 된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인구수는 2017년 37명에서 2067년 120명으로 급증한다. 국민 한 명이 한 명 이상을 부양해야 하는 때가 멀지 않은 시대에 열리는 것이다. 좌와 우로, 남자와 여자로, 첨예하게 갈라선 대한민국이 종국엔 세대갈등으로 찢어질 것이 명약관화다.
기울어가는 인구구조를 지탱할 큰 힘은 경제에 있다.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이 이룩한 발전은 수많은 갈등의 씨앗을 억눌러왔다. 그러나 한국의 고성장 시대는 급속히 저물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은 매해 예상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한동안은 1%대 저성장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갈등을 억제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는 극심한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복지는 현대 국가를 읽는 주요한 지표다. 치안부터 국방, 소방, 교통, 의료 등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서비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개중 사회안전망 기능을 담당하는 복지는 사회의 지속과 안전에 기여한다. 한국은 공적 의료보험제도를 통해 질병에 걸린 이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한다.
연금제도를 통해 100세 시대가 열린 노령인구가 극단적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 설계에 구멍이 적지 않아 벌써부터 경고음이 들려오는 실정이다. 부담은 후세대에게 지워놓고서 무너져가는 인구구조에 두 손 놓고 있는 게 현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은 638.5조 원에 달한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에 따르면, 이 적립금은 2041년 최대 1,778조 원까지 지속적으로 불어난다. 그러나 1999년 전국민연금시대를 연 이래 42년 동안 쌓여만 가던 연기금은 2042년부터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불과 15년 후인 2057년에는 기금이 모두 고갈되고, 이것도 모자라 당해 년에만 124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이때부터 명실공히 부과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금이 다 사라지고 없으니, 그해그해 필요한 연금지출 비용을 모두 보험료를 인상해 충당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보험료를 필요한 만큼 인상하지 못하면, 2088년에는 수입 337조, 지출 1,120조로 한 해 적자만 78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147, 148p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양재진의 <복지의 원리>는 한국 복지 전반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이다. 의료와 연금, 기본소득 등 여러 복지부문과 현안을 둘러보고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톺아본다. 인기영합의 대통령제와 승자독식의 의회 선거제도, 기획재정부가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한국의 정치 및 행정체계가 위기에 대응하는 급속한 복지확대를 전개하기 어렵단 점을 설명하며 한국이 작은 복지국가에 해당한다는 점을 내보인다.
각종 연금과 의료를 포함한 한국의 사회지출은 OECD 가입국 최저치인 8.99%에 그친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지급과 의료비 보조 같은 지출은 노령인구 급증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 예상된다. 생산가능인구는 갈수록 줄고 지출은 느는 와중에 개인의 부담을 늘릴 수 없는 경직된 구조가 위기를 키운다는 분석이다.
한 가정이 생산하는 후 세대 인구가 1.0명에 이르렀다 해서 온 사회가 경고음을 울렸던 유럽과 달리 한국은 0.6명대로 떨어지기까지 이렇다 할 타개책을 찾지 못했다. 복지를 논하는 이들은 왜란이 지척에 다가왔음을 알리던 통신사의 심정으로 정부와 국회가 나서 대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국민 중 복지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진 이는 많지 않으니, 이것이 인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국회가 복지문제를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책이 이야기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위기가 닥쳐오기 전에 국민들의 부담을 선진국가 수준으로 인상해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증세 등의 인기영합 정책만으론 닥쳐오는 위기를 막아낼 수 없음이 명백하다. 보편적 증세와 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통해 생산가능인구 급감과 부양인구 급증에 대비한 합리적인 복지설계를 새로이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 아닐까. 복지가 가져오는 위기와 코앞까지 닥쳐온 지금이다. 출산률은 무너지고 고령화는 심화되며 세대 간 갈등은 격화될 조짐이 일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은 복지를 더욱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복지에 대한 혐오 없이, 허점 많은 복지제도가 낳은 문제를 수습할 수 있다. <복지의 원리>는 그 인도자로서 충실한 저작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