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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하루가 짧다. 바쁜 것도 없는데 시간이 빨리 흐른다. 하루종일 꽃만 쳐다보고 있기도 시간이 모자란다. 올핸 유난히 봄이 달다. 그리고 길다. 4월 말에도 눈이 내렸던 때가 있어 4월은 여전히 추운 기억인데, 어느덧 산책하기 딱 좋은 4월이 되었다.

어떨 땐 실내보다 실외가 더 따뜻해 오전에 산책을 한다. 천지가 꽃이다. 울긋불긋 이렇게 많은 꽃들 중에 이름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꽃이라서 예쁘다. 언제부턴가 꽃이 좋아지고 있다. 

다른 꽃과 달리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고고한 목련은 베르테르의 편지처럼 언제나 아련하다. 꽃길로 수놓은 천변을 걷다 벤치에 앉아 살랑거리는 바람을 느낀다. 봄바람은 가을바람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봄바람의 감촉이 조금 더 부드럽다는 것.

가끔은 바람이 닿는 감촉에 감각을 잃을 때가 있는데 그땐 계절을 바꿔서 상상한다. 겨울을 마중하는 가을바람이 아닌 배웅하는 봄바람이라고.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계절 봄, 올해도 어김없이 그 봄이 찾아왔다.  

"요즘 누가 명함을 쓰나요"... 명함으로서의 책

책이 나왔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일부를 엮어 일자와 등급, 한 줄 평을 넣어 만든 생활기사 모음집에 소설 한 편을 추가했다. 나름 의미를 담고 싶어 표지 디자인은 조카에게 부탁했고, 추천사는 드라마 PD인 최윤석 작가의 찬스를 썼다.

사실, 책을 출간할 생각은 원래 1도 없었다. 책은 기획출판만이 책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서점을 투어하고 독립서적을 만들어 보자는 아주 작은 소망에서 시작된 작업은 정말 순식간에 결정되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추가적인 계기는 명함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너의 봄이 되고 싶다> 책표지, 사는이야기 모음집. 표지는 조카에게 부탁했고, 추천사는 KBS드라마피디 최윤석 작가님이 썼다. 타이틀은 책 속에 담긴 유일한 소설 제목이다.
<나는 너의 봄이 되고 싶다> 책표지, 사는이야기 모음집. 표지는 조카에게 부탁했고, 추천사는 KBS드라마피디 최윤석 작가님이 썼다. 타이틀은 책 속에 담긴 유일한 소설 제목이다. ⓒ 전미경
 
얼마 전 교육청 청렴 서포터스로 활동하게 되면서 첫 모임으로 점심 식사를 끝내고 헤어지려는데 사람들이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나에게도 명함을 달라기에 "저는 명함이 없어요"라고 했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아니오. 전 정말 명함이 없어요"라고 두 손을 저으며 강조했다. 

그러자 누군가 "요즘 누가 명함을 쓰나요"하면서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자기에 서로의 폰 번호를 나눴다. 명함을 받아도, 폰번호를 저장해도 나중에 연락을 하는 경우는 뜸하단 걸 알면서도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돌아섰다.      

'명함'이란 단어가 이렇게 필요한 적이 있었나 싶다. 나는 한 번도 명함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있어도 크게 사용한 적이 없다 보니 명함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는데 명함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인 것만은 분명하니 어떤 형태로든 명함이 있는 건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명함으로서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기자로 기사를 쓴 지가 2년 정도 됐으니 어느 정도 자신감 있게 '시민기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딱히 어떤 타이틀이 없어 가끔 그것만으론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책이 나오니까 굉장한 자신감이 생긴다. 없던 용기까지 마구 생겼다. 무모한 용기는 삶을 가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샘플 책을 손에 쥐자마자, 인근 기관에 전화를 걸어 생활기사 글쓰기 강의 제안을 했다. 다들 '생활기사'라는 말을 생소해했지만 설명을 들은 후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제안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프로그램 일정이 있어 당장은 어렵지만 차후 검토해 보겠다는 말을 덧붙였고, 나중엔 수강생이 모집되어야 운영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 정도쯤이야 당연한 수순이니 제안서를 보낸 것만으로 충분했다.       
 
 글쓰기의 즐거움(자료사진).
글쓰기의 즐거움(자료사진). ⓒ 픽사베이
 
탄력 받은 김에 한 초등학교에도 전화를 걸었다. 방과 후 수업으로 제안해볼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겠지만, 책 하나가 뭐라고 내게 이런 용기를 주는 것일까. 비록 자가 출간이지만 출간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누군가와 얘기를 할 때 이 책은 하나의 명함처럼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담당자들과 이야기할 때 책을 냈다고 하면 아, 하는 탄성음을 내며 '그럼 가능하겠네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별거 아니라고 해도 책을 낼 정도의 글을 모아 출간한 것은 멋진 도전이라고 했다. 극소심, 트리플 A형이자, MBTI도 내향인으로 나오는 내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강사 제안을 하고 있다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강사를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지인의 칭찬이 나를 춤추게 한 것도 있지만 알수록 재미있는 생활기사를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쓰고 싶은 이유가 컸다. 내가 사는 이곳에는 별다른 글쓰기 강좌가 없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수필가 지인에게 강사 제안을 해보라고도 했지만, 반응이 없어 내가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해 제안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내가 쓰고 있는 생활기사라는 장르로 말이다. 부족하지만 생활기사 불모지인 이곳에 생활 기사 쓰기 경험을 나눠주며 같이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야무진 목표도 가져본다.

며칠 전엔 내가 하는 글쓰기 모임의 한 회원인 K와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 출간된 책 얘기를 하는데, K 회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에도 느낀 건데요, 님은 책 얘기를 할 때 제일 재밌어하고 글 얘기를 할 때 신나있어요. 글에 진심인 거 같아요"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더 용감해졌는지 모른다. 

사실, 글을 써보니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과정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다. 그래서 새로운 목표에 과감히 도전하는 중인데 그런 계획들을 회원과 공유하니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회원 역시 나의 이런 도전에 자극이 된다고 했다. 무모한 도전이지만 기관 담당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기대에 여지를 주는 긍정적인 반응에 더 신이 났는지 모른다. 

책을 준비하면서 조카들과 지인들을 상대로 카톡을 보내 제목 투표를 한 적이 있는데, 가제목이었던 <알수록 재미있는 생활기사>보다 압도적으로 <나는 너의 봄이 되고 싶다>가 우세했다.

이유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따듯해서 좋다고 했다. 봄이 주는 느낌은 언제나 좋은가 보다. 고민 끝에 책 제목은 <나는 너의 봄이 되고 싶다>가 되었다. <나너봄> 은 생활기사가 아닌 책 속에 담긴 유일한 소설 제목이다. 내 마음속 손꼽게 좋아하는 글이기도 하고. 

독서광이자 까칠한 내 동생은 내가 낸 책 <나너봄>을 읽고 눈물이 났다며 소감을 전해왔다. 객관적인 평이라며, 글에 몰입감이 뛰어나 단숨에 읽었다며 앞으로는 소설도 써보라고 권했다. 평소 전화도 한 통 없는 동생인데 책 한 권이 동생과의 통화를 모처럼 길게 만들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라며, 뜻밖의 응원을 보내왔다. 책 향기가 마법을 부리는 듯했다.

유난히 화사한 어느 봄날, 누가 봐주지는 않지만 이름 없는 작가의 책이 나왔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누군가에겐 명함처럼 무기가 되어줄 책.

한편, 초등학교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오는 23일 계약서를 작성할 예정이니 준비 서류를 갖춰 방문해 달라는 안내다. 학기 초 정해져 있던 독서 활동이지만, 학기 때 반응을 보고 생활기사도 진행해 볼 수 있겠다는 말을 첨언했다.

생각지도 못한 삶의 방향점이 될 것 같다. 비록, 운 좋게 어떤 우연이 겹치긴 했어도 강사로 활동하게 될 것 같다. 이름 없는 꽃마저 예쁘게 보이게 하는 책 한 권의 향기. 올해의 봄이 유독 아름다운 이유다.       

#책#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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