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300명의 당선인들은 5월 30일부터 각자의 화두와 과제를 가지고 임기를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선인들을 만나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인 저출생, 노동시간 단축, 대화정치 복원, 서민경제, 지역소멸 대응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묻고 들었습니다.[편집자말] |
8년 전, 3367표 차이로 졌다. 4년 전에는 2624표로 격차를 좁혔지만 또 패배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2780표 차 신승.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충남 공주·부여·청양)은 "기자들이 '왜 안 웃나'라고 물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전국이 파란색으로 물든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민주당이 이 정도로 잘했을까? 성과를 못 내면 다음엔 우리가 심판받겠구나'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당선이 기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보다 절실했던 그였다. 19대 총선 당시 공주 단일 선거구에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박 당선인은 20대 총선에선 부여와 청양까지 누벼야 했다. 워낙 보수세가 강한 곳들이라 모두가 그의 낙선을 예상했다. 그럼에도 박 당선인은 "'절대 지치지 않겠다. 반드시 이 지역에 민주당 깃발을 꽂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키게 돼서 기뻤다"고 말했다.
'근면성실'말고 다른 비결은 없었다. 초선 시절 매일 고속버스로 출퇴근했던 것처럼 지금도 박 당선인은 지역에 상주한다. 19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역시 그의 동선을 고려해 서울역에서 이뤄졌다. '지역구 관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공주와 부여, 청양은 모두 농촌지역이자 행정안전부가 정한 인구감소지역이다. 주민들은 박 당선인에게 '우리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만큼 지역의 문제가 절실하기 때문에 그는 지역에 밀착해 한 마디라도 더 듣고,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고 한다.
'출산장려시범지역'이란 공약도 그렇게 나왔다. 아직 구체적인 상은 잡히지 않았지만, 박 당선인은 "가장 심각한 인구감소지역의 국회의원으로서 그냥 평범한 얘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걸로 매니페스토(공약 이행 평가) 빵점 맞을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위기"라고 했다. 이미 무너져버린 농촌에는 농사 지을 사람조차 없다. 그는 "정부가 너무 안이하다"고, 국가 존속 여부가 위기인 상황에서 기획재정부가 여전히 "경제 논리만" 따진다고 답답해했다.
박 당선인은 22대 국회에서 지방소멸뿐 아니라 정치 복원에도 천착할 생각이다. 그는 국회의원 외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첫 대변인과 마지막 국민소통수석비서관, 문희상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풍부한 정치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진짜 정치'의 중요성을 아는 인물이다. 다만 박 당선인은 정치 복원의 출발점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이날 들려온 영수회담 소식을 두고도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충청 민심도 요동 칠 준비... '정말 못 살겠다'더라"
- 선거 후 여러 언론에 '충청도 특유의 속내를 말하지 않는 문화가 있음에도 이번은 달랐다'고 얘기했다. 도대체 어떤 분위기였나.
"초창기에는 의례적 덕담이었다. 한 달쯤 지나니까 지역 구분 없이 '수현아, 너 이번에 꼭 돼야 한다'더니,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무렵에는 '제발 당선해서 우리 좀 살려줘야 쓰겄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20년 만에 처음 봤다. 충청도 민심이 요동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는 심판 선거가 맞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의혹과 주가조작 의혹)를 심판한 건 아니다. 무능한 정치가 가져온 민생파탄 심판이다.
특히 충남은 농도이고, 공주·부여·청양은 농촌도시다. 그런데 쌀값이 폭락하고 돼지, 소, 양송이 가격이 폭락할 때 정부여당이 낸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적어도 메시지는 즉각 냈는데 윤석열 정부는 아예 무관심하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남은 건 분노뿐이었다. '이런 정부는 처음 봤다. 정말 못 살겠다'라는."
- 그 분노가 범야권 192석란 총선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총선 후 첫 육성 메시지에서 '나는 열심히 했지만 국민이 체감 못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식으로 나왔고 4시간 뒤 '고위관계자'발로 '비공개 사과'가 알려졌다. 청와대 대변인 경험에 비춰볼 때 어떻게 봤나.
"전혀 이해가 안 되니까 질문하는 것 아닌가(웃음). 총선 결과 다음날 이관섭 비서실장이 처음 입장을 표명했던 것부터 말이 안 됐다. 그 자체가 대통령실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방증이다. 이 정도 참패할 민심이면 심각한 고민 끝에 대통령이 직접 말해야 한다. 게다가 내용도 너무 성의 없는 56자였다. 그게 무슨 메시지인가.
윤 대통령의 메시지도 순서와 시기, 내용 모두 엉망이었다. 당연히 기자실을 찾아서 입장을 밝히고 국민을 대신해 묻는 기자들 질문에 답해야 했다. 일방적 홍보에 불과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했다는 것도 잘못인데, 그 반응이 안 좋으니까 대통령실 관계자가 '비공개 회의에서 사과했다'고 전한다? 코미디다. 여전히 국민에게 심판 받았다는 것도, 왜 심판 받았는지도 모르고 있다."
- 용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오직 대통령만 있다. 여당에서도 '한 사람만 변하면 된다'는 자조가 나오는 것 아닌가. 여기 참모라고 왜 고언을 안 하겠나. 결국 대통령이 다 결정하는 거다."
- 그래도 좀전에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통화했고, 다음주 중으로 만난다는 속보가 떴다.
"제발 좋은 신호가 되길 바란다. 총선 결과와 총선 후 메시지에 대한 싸늘한 여론에 등 떠밀려 이재명 대표를 형식상 만나고자 한다면 더 큰 저항에 부딪친다. 정말 국정 운영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야당 대표에게 설명하고, 총선 민심이 반영된 야당 대표의 의견을 정중하게 경청하고 수용하길 바란다."
"수도권은 터져 죽고, 비수도권은 말라죽어... 균형 잡자"
- 지역 주민들이 '살려달라'고 말한 데에는 공주·부여·청양이 '소멸' 위기에 놓인 곳이라는 이유도 있을 듯하다.
"이번에 출마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대목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너 저출생 문제 해결할 수 있어?'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뻔뻔하게 출마하려고?' 제일 괴로운 질문이었다.
충남 내 또다른 복합선거구인 보령·서천은 한 곳만 인구감소지역인데, 제 지역구는 세 곳 전부 해당한다. 부여는 2023년 한 해 태어난 신생아가 103명, 돌아가신 분들이 1075명이다. 이걸 어떻게 하나. 고령화 비율(65세 이상 인구 비율)도 부여와 청양은 대략 39%, 공주는 30% 정도다. 그러니 '충청권 메가시티' 이런 말을 한들 뭐하겠나. 농촌이 무너져서 농사지을 사람도 없는데."
- 그래서 '출산장려시범지역'을 얘기하는가.
"말을 해놓고도 큰 부담이다. 가장 심각한 인구감소지역의 국회의원으로서 그냥 평범한 얘기를 할 수 없다. 출산 장려금을 많이 주자는 차원은 아니다. 무엇이든 종합대책이 돼야 한다. 이걸로 매니페스토 빵점 맞을 수 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위기다. 여야를 떠나서 정부와 진짜 제대로 대화를 해봐야 한다."
- 문재인 정부가 나름 애썼지만, 그때도 지방소멸은 계속 진행돼서 이 상황에 이른 것 아닌가.
"저 역시 성찰적 의미에서 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다른 현안에 집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정말 아쉽고 안타깝고 반성한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그냥 제가 앉아서 써도 될 만한 내용들이더라. 정부와 기획재정부의 시각이 너무 안이하다. 특히 기재부는 너무 경제 논리만 따진다. 이대로면 대한민국 군대 (병력 50만 명 선) 유지가 안 된다는데 어떻게 할 건가.
근본적으로 '수도권 규제'로 돌아가야 한다. 수도권이 손해 보라는 뜻이 아니다. 지방이 소멸하면 수도권인들 온전할까. 안방 아랫목은 절절 끓어서 장판이 시커멓게 타는데 윗목은 물이 꽁꽁 얼 정도로 한 공간 안에서 차이가 나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건강하겠나."
- 어떤 '수도권 규제'가 필요할까.
"하나로만 얘기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는 수도권 소재 기업들이 정말 앞다퉈 이전해갈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적극적인 국토균형발전 추진으로) 지방에 희망이 있어서 수도권 기업들이 수백 개씩 내려왔다. 그 정도는 돼야 지방소멸을 막을 것 아닌가."
- 총선 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 세종시 완전 이전'을 약속했다.
"국민의힘이 20년 동안 발목 잡거나 지연책으로 일관해온 정책을 선거에 임박해서, '당론 수렴'이란 절차도 없이 갑자기 발표해서 믿는 사람은 없지만, 저는 '잘했다'고 칭찬했다. 반드시 22대 국회에서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그런데 세종시에 국회가 다 내려오고 행정수도가 완성되더라도 다른 지역에 변화가 있을까? 어느 지방이든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 가령 GTX사업은 수도권을 더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정책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수도권 규제정책이나 지방분산 정책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수도권은 과밀해서 터져 죽고, 비수도권은 말라죽겠는 것 아닌가. 균형을 잡아서 숨 좀 쉬고 살자. 또 전국을 거점별로 나눠서 발전시키는 '메가시티' 전략은 여전히 아주 유효하다. 기본 출발은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광역교통망 구축이다. 수도권에서도 광역교통 개선책이 시행 중이지만 메가시티를 추진한다면 지방에서도 교통망 구축을 당연히 해야 한다."
"윤 대통령, 민심 잘 읽어야... '걸림돌'부터 치우길"
- 지방소멸도 결국 국민 삶의 문제다. 선거 과정에서 대파값 등 경제, 물가 이슈가 떠오른 것처럼 국민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 또한 민생 회복인데, 22대 국회가 무엇부터 해야 할까.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 상병 특검, 이재명·조국 대표와의 회담, 윤석열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와 국정 운영 방향 전환, 김건희 여사 소환 수사. 이건 최소한이다. 이 걸림돌들을 반드시 치워야 22대 국회가 민생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공간이 된다. 아니면 야당은 총선에 반영된 민의를 받들어서 '심판' 기조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선거가 곧 있다(5월 3일). 윤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서 국정 운영 방향 기조, 앞서 언급한 문제들의 해결 실마리를 보여주지 않으면 민주당에는 굉장히 선명한, 강성 원내지도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그게 총선에 드러난 민의다. 국회 운영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윤 대통령과 여당이 민심을 잘 읽어야 한다."
- 정치가 대결 일변도로 흐르면서 긴요한 과제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들도 커지고 있긴 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소위 '극렬 지지층'이 정치 양극화에 굉장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극렬 지지층의 등장은 어떤 면에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이 에너지가 정치에 순기능을 하도록 어떻게 잘 반영할 것인가는 정치권의 몫이다. 다들 정치 뉴스만 나오면 보기 싫어서 TV를 꺼버린다더라. 22대 국회는 국민들이 정치 뉴스가 궁금해 TV를 켜는 시대이길 희망한다. 저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 지방소멸뿐 아니라 인구위기, 기후위기 등 한국 사회의 복합위기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정치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간단하다. 대통령과 여당에게 달려 있다. 야당은 선거에서 이겼으니 민심에 부응해야 하지 않나. 그러면 야당이 대화에 나서려고 해도 (국민적 의혹 해소, 국정 운영 기조 전환 등) 전제조건들이 이뤄져야지, 그게 하나도 안 됐는데 '대화하겠다'는 야당을 누가 지지할까. 또 아무리 야당이 다수당이어도 국정 전체의 책임은 여당에 있다. '(야당이) 발목 잡는다'란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발목만 내밀지 말고 제발 좀 손목을 내밀어 달라. 그러면 우리가 손목을 잡지, 발목을 잡겠나."
- 다른 인터뷰에서 '범야권 압승에 조국혁신당 영향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앞으로 조국혁신당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
"합당은 안 된다. 선별적 연대와 선명성 경쟁을 해야 한다. 개혁과제는 민주당이 가지고 가야 할 주제이지만, 민주당은 수권정당이기 때문에 모든 개혁과제에 선명하고 기민할 수 없다. 민주당이 그 한계에 부딪칠 때 조국혁신당이 강한 선명성을 갖고 속도를 내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서로의 역할이 있다. 한편 민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여당과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는 연대세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