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300명의 당선인들은 5월 30일부터 각자의 화두와 과제를 가지고 임기를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선인들을 만나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인 저출생, 노동시간 단축, 대화정치 복원, 서민경제, 지역소멸 대응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묻고 들었습니다.[편집자말] |
"빼도 박도 못한 '폴리페서(Polifessor,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가 됐다."
24일 서울시 마포구 사단법인 '외교광장'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준형 조국혁신당 당선인(비례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폴리페서를 ▲전문성을 갖고 자문하거나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과 ▲실제 정치를 하는 사람 두 가지로 정의해왔다. 또 수십년간 학자로 살았고, 국립외교원장이란 역할 또한 전문성을 토대로 한 일이기에 자신은 '첫 번째'에 해당한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만에 확 달라졌다.
김 당선인은 "평생 '까칠한 학자'로 말하던 사람이 '안녕하십니까! 비례대표 9번 조국혁신당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쑥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지역 연고 탓에 떠맡은 영남권 유세도 만만찮았다. 누군가는 어깨를 툭 치고 갔고, 뒤에서 욕설도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익숙해지니까 괜찮았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잠꼬대로 구호를 외칠 정도로 선거운동에 몰입했다. 이유는 딱 하나, "대한민국에는 외교가 없고, 윤석열 정권에는 외교부가 없다"는 두려움이 컸다.
김 당선인은 "위기감을 많이 느꼈다"며 "이런 저런 걱정으로 턱관절이 아프고, 자다가 오한이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2월말 조국 대표가 처음 제안했을 때는 거절했다. 하지만 '외교는 무너지면 복구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사람들의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3월 3일, 그의 연락을 받은 조 대표는 "그럴 줄 알고 자리를 비웠다"고 화답했고, 이틀 뒤 인재영입식이 열렸다. 이제 그의 명함에는 '국회의원 당선인'이 쓰여있다.
"아직도 얼떨떨... 다리 불살랐으니 뭐라도 할 것"
- 지난해 말 정년보다 5년 빨리 한동대 교수를 그만둘 당시엔 출마 계획이 없었나.
"조기은퇴는 사실 '외교광장' 때문이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전공자 네 명이 한반도를 입체적으로 볼 스터디 그룹을 7년간 해오다가 2022년 12월 사단법인으로 공식 발족했다. 국립외교원장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선생으로서 회의가 생겼다. 과감하게 관뒀다. 선거 때문이었으면 (의원이) 되고나서 관둬도 됐다. 돌아보면 점점 (외교) 현장으로 다가가고 있더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아직도 얼떨떨하고 하루에도 별 생각이 다 드는데, 다리를 불살랐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
- 민주당에서도 활동했지만 조국혁신당의 '쇄빙선이 되겠다'는 말이 본인 색깔에 맞았다고 밝혀왔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여겼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민주당은 이념 지형이 굉장히 넓지 않나. 조국혁신당은 좀더 가볍게, 진보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쇄빙선'이란 표현에 그 의미가 담겼다. 또 시간이 많지 않다고 봤다. 일단 비례대표로, 한다면 4년 안에 승부수를 던지는 게 가장 맞겠더라. 제가 쇄빙선이란 말에 '구명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외교가 망가지고 있으니까. 지난 2년 동안 우리나라 외교는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 '조국혁신당은 조국이 없다면 존립불가능하지 않겠나'란 시선이 있다.
"저 역시 고민했다. '당 이름에 사람 이름을 써도 되나'도 싶었다. 그런데 '사람(曺國)'이 아닌 '우리나라(祖國)'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지 않나. 또 많은 사람들은 (조국혁신당의 창당이 조국 개인의) 복수라고 말하지만, 개인에서 시작해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사회적 의미가 담기면 복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국혁신당은 이미 조 대표 개인 차원을 넘었다. 그가 사법처리되면 아무래도 (당세가) 약해지겠지만, 우리가 사라지진 않을 거다"
- 민주당과 합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합당하면 안 들어간다' 했고, 조 대표 또한 확고하다. 가능성은 없다."
"외교 아닌 전쟁하는 윤 대통령... 처음 본다"
- 턱관절이 아플 정도로 현재 외교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선 외교 자체만이 아니라 이원모 전 비서관 배우자의 나토 순방 동행, 김건희 여사 트위터 대응, '바이든-날리면' 사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대사 임명 등 비본질적 사안으로도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비본질적인 것들도 '본질'하고 연결된다. '날리면'부터 조문외교, 이종섭 이런 것들이 계속 터지는데 외교부는 원래 이런 문제에 '도사'다. 하지만 지금은 왜 그럴까. 외교부에 일부 책임이 있다. 직을 걸고 대통령한테, 안보실에 얘기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무조건 하라'고 하니까 미국 갔을 때 조 바이든 대통령을 졸졸 따라가 서서 몇 마디 하는 걸 회담으로 만들어낼 정도로 무리수를 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외교부가 낸 의견이 자꾸 거부당하면 입을 다물게 돼있다. 다른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 '퍼주기 외교'도 꾸준히 비판해왔는데.
"미중 전략경쟁 시대다. 전 세계가 그 사이에 끼어 있고, 전적으로 진영을 선택할지 아니면 양국 사이에서 자율성을 가지면서 자기 걸 챙길지가 중요한 선택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보수는 이 프레임을 '친중'으로 봤다. 문재인 정부가 친중, 친북, 반일, 반미 프레임으로 공격받은 데에서 자연스레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나. 친미, 친일, 반북, 반중.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철저히 미국과 일본 위주의 외교를 했다.
그게 맞았나. 한중 관계? 나빠졌다. 한러 관계? 나빠졌다. 남북 관계? 망가졌다. 윤 대통령은 외교가 아니라 전쟁을 하고 있다. 철저한 진영외교 결과 우리나라가 중요한 의제를 갖고 심각하게 외교하는 나라가 미국과 일본 외에는 없다. 두 나라에게 한국은 심하게 얘기하면 '호구'다. 누구든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지만, 누가 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133조 원 정도 미국에 투자했는데 우리의 반대급부는 없다.
(현재 한국 외교의) 의제는 '한미일 안보협력' 외에는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다. 향후 30년 간 미중 경쟁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두 가지 더 있다. 기후위기랑 글로벌 사우스(전략적 가치가 큰 동남아·남미·아프리카 등 저위도 국가). 세계가 양극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큰 형태의 제3그룹이 생기는 중이고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라는 세 대륙에 걸친 국가를 누가 선점하냐로 연결된다. 인도가 가장 잘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기후 의제도 없고, 글로벌 사우스도 없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처럼, 글로벌 사우스란 말조차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 정부는 팔레스타인 UN 가입 권고 안보리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일을 '글로벌 사우스 가교 역할 시도'로 자평하는 모습이다.
"팔레스타인 건은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침소봉대하면 무리수다. 이걸 계기로 일본과 미국 편향에서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게 가지 않을 거다."
-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 기조로, 안보실 중심의 외교를 하고 있다는 것 말고 또 다른 '외교 파탄' 원인은 없을까.
"윤 대통령의 세계관이다. 보통 후보 때 가장 강성이고 대통령이 되면 중간으로 약간씩 수렴한다. 정부를 운영하는 일은 지지자를 집결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나. 그런데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보다 더 오른쪽으로 갔다. 처음 본다. 검사/피의자처럼 세계관 자체가 적군/아군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를 용서할 수 없고, 미국·일본과 단단해져야 한국이 산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갈수록 난제 쌓이는데... "한국, 국제 변화 못 읽고 있어"
- 중동 상황도 심상치 않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단지 원유가격이나 물가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을 텐데 우리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며 대응하겠다'는 수준의 대통령 메시지만 나왔다.
"우리는 한미일 진영화 외에는 의제가 불분명하다. 미국이 5년, 10년 안에 이걸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당장 약간 손해가 있더라도 이 대외정책 비전은 맞다. 그런데 30년 내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거다. 그러면 선택지를 많이 마련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플레이어(player)로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다른 나라와 만나려면 뭔가 키(key)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지난해 순방 대부분은 큰 이슈가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제 질서의 변화를 전혀 못 읽고 있다."
- 그래서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 못한 일을 "'눈 떠보니 후진국'이 현실로(4월 20일 논평)"라고 판단했나.
"심각한 일이다. 맥락을 봐야 한다. 회원국이 아니니 빠질 순 있다. 그런데 정부가 'G7 플러스'를 내세우며 공들여왔다고 하지 않았나? 앞뒤가 안 맞는다. 더군다나 글로벌 사우스가 주요 의제면 우리가 대비하고 (초청받아서) 갔어야 했다. 2030엑스포 유치도 글로벌 사우스 표가 다 사우디아라비아한테로 가서 졌는데, 엑스포부터 G7까지 글로벌 사우스 문제에서 우리가 배제되고 있다."
-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는 미국 대선도 다가오고 있다.
"아직 누가 확실하게 우세하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면 바뀔 가능성이 있는 건데, 바뀌면 어떻게 할 건가. 상대적으로 점잖은 바이든보다 트럼프는 대놓고 '돈 내라'고 요구할 텐데 맞설 수 있을까? 상상이 안 간다. 바이든이라면 지금과 비슷하겠으나 그건 괜찮나? 한미일이 동등한 동맹이 아니라 서열이 정해지고 있다. 누가 봐도 미국이 보스고, 일본이 중간보스, 그 다음이 우리다. 이렇게 계속 가는 것도 문제가 많다."
- 바이든 행정부도 그렇고 트럼프 쪽도 최근 북의 비핵화보다는 핵군축으로 대북 기조를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움직임이 있다.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대북 문제에 있어서 강경일변도에, 핵 무장까지 말했던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하되 중간단계로 군축 또는 군비제한 하자는 주장이 과거부터 있었는데 '이러면 비핵화 포기 아니냐, 핵 국가 대 핵 국가로 말려든다'는 반대 논리가 강해서 사실 소수의견이었다. 요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전쟁을 불사하지 않는 이상 북한은 핵을 포기할 리가 없으니 당장 핵 위험을 줄이는 걸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론'인 셈이다.
물론 또 '북핵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다만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핵 군축론 주장이 나왔으니 다행이랄까. 조심스럽지만,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장기목표를 두고 확고한 일치와 동의만 있다면 핵군축으로 가는 게 맞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다른 방법이 없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미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하지 않았나."
- 동북아 문제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 외교의 가장 빛난 순간은 1998~2000년이다. 미국을 설득해 '페리 프로세스(대북 포용을 기조로 한 클린턴 행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3단계 방안)'로 가고, 정상회담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조명록 북한 차수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부 장관의 교환방문까지 갔다. 또 한미동맹을 근본으로 하되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지정학적 고차방정식을 풀어냈다. 국익을 위해선 치밀한 외교를 해야 한다."
'정치인 김준형'의 실천법
- 과제가 잔뜩인데, 한달 뒤 22대 국회가 열리면 가장 주력하려는 활동은 무엇인가.
"외교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영역이기 때문에 '집권하지 않으면서 외교를 뭘 할 수 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중 관계는 민생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고, 일본과 동맹 맺는 일도 국민 생활과 연결되고, 대북 관계는 내 아들 군대 보내는 문제와 연결된다. 여기에 대해서 (국회가 대통령을) 압박해야 한다.
예를 들면, 1호로 '대만 유사시 우리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전직 장성이나 공화당 의원들은 '대만 유사시 한국과 일본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슬슬 도발하고 있다. 이게 맞나? 당연히 아니다. 우리도 전쟁 중인데 무슨 (병력을) 빼가나. 대통령이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하는데 미국에서 야단 날까봐 못하지 않나. 그러면 국회 결의안으로 내는 거다. 결의안은 (의석 수가 다수인) 야당이 통과시킬 수 있다.
또 우리가 살상무기를 우회지원하는 게 기정사실이다. 저는 우회지원이라도 살상무기를 공급할 때는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안을 2호로 준비 중이다. 미국은 국무장관, 한국으로는 안보실장이 여야 의원을 만나서 정례적으로 설명하고 협조도 구하는데 한국은 문제 터지고 나면 국회 외통위에 얘기하는 정도다. 쉽진 않겠지만, 이런 문제에 있어서 국회의 역할을 끌어올려야 한다."
- 학자 김준형은 '함께 살 수 있는 외교, 창의적으로 선도하는 외교'를 말해왔다. 정치인 김준형은 이를 어떻게 실천할 건가.
"많은 나라들이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 한류만이 아니다. 후배 제자 중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를 포함해서 중앙아시아에서 오는 이들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다.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 또 외교광장과 일본·미국·중국의 진보적 그룹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는데, 국회에서도 이 작업을 계속 하려고 한다. 새로운 (외교)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진보 대통령이 해도 한미동맹 흔들릴 것 없다'는 얘기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나와야 한다."
- 그 원대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3년은 너무 길다'는 생각인가.
"진짜, 진짜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