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정리법)에 나오는 법안 제1조(목적)다. 요약하면 진실규명, 화해, 통합 등이 진실화해위원회의 기본임무라는 것이다. 5월 26일은 진실화해위원회(2기)가 조사를 개시한 지 3년이 되는 해이자, 조사활동이 1년 가량 남는 해다.
이 시점에서 진실화해위원회가 기본법에 나타나 있듯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역할이 실제 화해와 통합에 얼마나 실질적 효과를 내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모든 조사범위를 살펴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기에, 이번에는 사례범위를 좁혀서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에서 다뤘던 사건들 중 '납북귀환어부 사건'과 '녹화공작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2022년 2월 22일 진실화해위원회는 '50여 년 전 발생한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대규모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진실화해위원회 2기 출범 후 첫 직권재심이자 1965년부터 1972년 사이의 납북귀환어부 982명(선박 109척)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조사결정이었다.
실제 최근 76차 전원위원회에서 춘곡호 등 납북귀환어부 피해사실을 진실 규명하는 등 납북귀환어부 사건과 관련한 피해사실을 밝혀내는데 굉장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1년여 동안 982명의 피해자를 직권조사할 것이기에 얼마나 더 많은 피해사실을 규명해 낼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현재까지의 조사에서 드러나는 아쉬움을 적어보고자 한다.
'사과' '피해·명예회복'은 얼마나 이뤄졌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를 진실규명할 때에는 항상 마지막에 권고사항을 기술하는데 납북귀환어부 사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건에서 동일한 내용의 권고를 기술한다.
'국가는 납북귀환어부들과 그 가족에게 사과'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또는 실질적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국가는 납북귀환어부들과 그 가족에게 사과하라'는 권고는 어떻게 됐을까? 과거 납북귀환어부들을 조사하고 기소 담당했던 곳은 지방검찰청, 지역 경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내무부 등이 꼽힌다. 물론 납북될 당시 북한 경비선으로부터 우리 어민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까지 묻는다면 해군 등 국방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매번 복사하듯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를 권고하지만, 정작 어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하고, 허위 사실로 기소한 검사가 책임 있는 공식사과를 했다는 보도를 접해보지 못했다.
또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하고 실질적 조치'를 권고한다.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적절하고 실질적 조치는 무엇일까? 대부분 피해자는 당시 수산업위반,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처벌을 받았다. 이러한 처벌의 내용은 당시 신문이나 방송에 노출돼 지역사회에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기록에 의해 보안관찰이라는 감시를 수십 년간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피해는 납북귀환어부 당사자에 머무르지 않고 자녀와 친인척으로 이어져 취업제한, 여행제한, 파혼 등 2, 3차 피해가 발생했다.
결국 이러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처벌의 내용을 무효화시키는 일, 즉 재심 등 사법적 회복이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납북귀환어부를 처벌하는 과정에 있었던 기관의 장들은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을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 당사자나 가족 등이 우리 사회에서 낙인찍힌 전과자, 또는 그 가족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내기 위해 실질적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언론을 통해 밝혀야 한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 하나 선행되고 있는 것이 있는가?
피해자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문을 가지고 스스로 법원에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40~50년 전에도 법을 알지 못해 피해를 당했던 어민들은, 여전히 변호사를 찾아 스스로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속초지청 등 일부 검찰청에서는 일부 피해자들에게 직권재심을 신청한다지만 그것도 같은 선박으로 납북됐던 피해자가 무죄를 입증 받은 경우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검찰과 법무부의 문제적 행위들
진실화해위원회가 아무리 불법수사, 허위사실 등을 밝혀내며 증거를 들이밀어도 결국 검찰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은 신뢰하지 않는 모양새다. 실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김춘삼씨가 2023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요구사항 중 하나로 '검찰의 사과'를 요청했다.
그러나 여전히 잘못된 기소의 책임을 가진 검찰의 대표는 사과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피해자들은 검찰총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사과는 재발 방지 약속의 징표다. 사과 없이는 재발 방지를 약속할 수 없고, 재발 방지 확신이 없는 국민은 결코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지난 4월 11일 해성호 납북귀한어부의 재심을 담당하고 있는 경주지청은 재심청구에 대한 의견서에 '적의 판단함이 상당'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즉 검찰의 재심청구 의견에 검찰 스스로의 구형이나 재심청구를 포기한 채 법원의 재량과 판단에 기댄 것이다.
이는 지난해 5월 이원석 검찰총장이 "제주4.3사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와 마찬가지로 납북귀환어부에 대해서도 고령인 점을 감안해 신속한 명예회복과 신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발언한 것과 맞지 않는 태도다. 이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과 권고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노력이 모든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등 인권침해 피해자들에게 다다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고 박홍수씨는 1968년 10월 무진호라는 선박에 승선해 조업 중 납북되었다가 3개월 만에 돌아와 검찰조사를 받고 돌아와 자택에서 사망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박씨의 죽음이 수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결정하고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의 조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진실규명 결정 이후로 국가로부터 어떠한 조치나 연락도 받은 바 없다고 했다. 오히려 고인과 함께 납북됐다가 돌아온 피해자들의 진실규명이 함께 밝혀졌음에도 백령도 등에 거주하는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나 가족에게 아무런 통지나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피해자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고 있지만, 피해자에게 아무런 통보나 알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피해자들이 어렵게 제기하는 소송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로 피해구제를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녹화공작 사업 피해자 이종명·박만규 목사에게 각각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한 중요한 판결이었다.
그러나 배상책임이 있는 정부는 사과나 배상에 대한 반성 없이 12월 14일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법무부는 이날 오후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국가배상 소송 항소 포기'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소위 '프락치 강요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대하여,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며 피해자들의 신속한 피해회복을 위해 항소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정작 이 소식을 알지 못했고, 그저 법무부의 항소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오전에 항소를 입장을 밝혔던 법무부가 오후에 철회하는 것은 피해자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얼마나 가볍고 무책임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심지어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부가 피해자들의 신속한 피해회복을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종명 목사는 일주일 전인 12월 6일 이미 세상을 떠났었다. 피해자에게 사과하긴커녕 '소멸시효 완성' 등을 주장하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와 같은 피해를 가한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지병인 우울증이 악화돼 세상을 떠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정부는 한 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사과 권고도, 법원의 책임 인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책임 있는 사과의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정부는 피해자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남은 소명
한편, 지난 5월 1968년 납북됐다가 귀환한 '보수호' 피해 유족 중 일부가 과거 납북귀환어부 사건으로 받았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청구를 제기했다. 보수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납북귀환어부 중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된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처벌의 무효를 다툴 수 없는 피해자가 상당하다.
특히 보수호, 창동호, 무진호 선박 등에서 함께 승선했던 선원 중 일부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기소유예 처분이나 벌금형 등 약식재판을 받은 피해자들은 재심신청을 하지 못해 피해를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함께 납북됐다가 돌아온 피해자들 중 일부에겐 무죄가 선고되고, 일부에겐 범죄혐의가 유지된다는 것은 법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당연히 무죄가 선고된 선박의 선원은 기소유예 처분 자체도 취소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피해자나 유족이 기소유예 처분 대상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처분 청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취소 대상자라 하더라도 취소청구를 해야 하는 절차를 일반인이 알기 쉽지 않다.
결국 진실화해위원회는 적극적으로 피해자 발굴과 안내를 해야 하며, 검찰은 이를 토대로 기소유예처분이나 약식재판 재심청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화해위원회의 남은 임기의 소명이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온 국가권력 재신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걸어온 지난 3년의 성과는 절대 작지 않다.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진실화해위원회 구성원들에게도 깊은 경의와 경외감을 가진다. 남은 1년은 지난 3년보다 더 어렵고 힘든 대내외적 환경에 놓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남은 1년을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바라보고 있는 피해자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피해자에게 실질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