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기자말] |
내풀책(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수업에서 옛날 사진을 갖고 와서 이야기를 했던 날이었다. 옛날 일을 떠올려 쓰라고 하면 어려우니 옛날 사진을 보며 묘사하기 수업을 했던 것이다.
늘 웃는 얼굴인 어르신은 유치원 졸업사진을 가져오셨다. 그 나이대 어르신들은 무표정으로 있으면 화난 것처럼 보이는 게 일반적인데 무표정일 때조차 옅은 미소가 있었다. 사진을 보고 내가 말했다.
"우와, 전 일곱 살 때 피아노가 멋져 보였거든요. 저희 엄마가 유치원이랑 피아노 둘다 하긴 돈 없대서 결국 유치원 중퇴됐어요. 어르신은 그 시절에 흔하지 않을 이야기가 있을 거 같은데요?"
나는 약간 호들갑을 떨었다. 어르신은 다른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내 말을 받아주지 않으셨다. 이상했지만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각자 사진을 보며 15분 간 글을 쓰셨다. 후에 보니 그 분이 쓰신 글은 아버지의 외도와 그로인한 어머니의 슬픔에 대한 짧은 글이었다. 한 마디로 유치원이 없는 유치원 글이었다.
'사진 묘사라는 수업 의도에서 너무 멀리 온 글'이라고 피드백을 드리기도 어려웠다. 급한 대로 이전 시간에 수업했던 핸드폰 기본 앱을 이용한 녹음법을 다시 복습했다. 글쓰기보다 마음쓰기가 먼저라고, 마음쓰기는 상대가 앞에 있다고 상상하고 주절주절 녹음하는 걸로도 될 때가 있다고, 쓰는 게 막히면 그렇게 해보시라고 하고 수업을 끝냈다. 등에 땀이 찼다.
며칠 후, 그 어르신에게서 정말 아버지에게 하소연 하듯 말을 늘어놓은 녹음 파일이 도착했다. 중간에 울먹이는 부분도 있었다. 파일과 함께 '막상 시작하니 봇물처럼 말이 터지네요. 해놓으니 시원한데 이것도 글이 될까요'라는 문자가 왔다.
막히면 녹음해 보라고 내가 말했지만 이정도 날것의 녹음이 올 줄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칭찬을 가득 퍼드렸다. 처음부터 훅 들어가서 대면하기 쉽지 않은데 대단한 일 하셨다고, 일단 글이 될지 여부는 나중이고 일단 다 풀어 보시라고, 그러다 혹시 좋았던 기억도 있으면 그것도 같이 하시라고 했다. 어르신은 좋은 기억은 절대 없다고 단호하게 자르셨고, 다음 파일은 오지 않았다. 당황한 내 마음을 들킨 거 같았다.
다음 시간, 어르신 표정이 다시 웃상으로 돌아왔다. 비록 녹음이지만 대놓고 말한 건 처음이라 하셨다. 아픈 기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쏟다보니 신기하게 잊고 있었던 소소한 추억이 떠올랐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바닷가를 산책하던 일, 무등 탔던 날을 글로 써오셨다. 좋은 기억 절대 없다던 며칠 전과 대조되는 모습이 신기했지만 이번에도 나는 그저 칭찬만 퍼 드렸다.
녹음 파일은 굳이 글로 남기고 싶지 않다 하셨다. 나는 일단 한번 보시라며 텍스트로 변환해서 정리한 프린트를 드렸다. 수업이 끝날 무렵, 어르신이 다시 프린트를 내밀었다.
"다시 보니 이정도는 살려도 좋을 거 같아요. 선생님 보시기엔 어때요?"
내가 드릴 건 오직 칭찬 뿐이었다. 이렇게 생생한 이야기가 들어가면 독자도 더 공감할 거라고, 그러면 사적인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했다. 어르신은 내 칭찬에 유치원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보이셨다.
어르신들 수업을 하다보면 내가 이분들께 드릴 수 있는 건 칭찬이 전부인 거 같다. 당장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일단 칭찬으로 시간을 버는 날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했던 칭찬도 결국 글쓰기 양분이 되어 돌아온다.
그럴 때마다 이 수업 제목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을 다시 새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풀면' 책 한 권이 나온다는 믿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나는 종종 '쓰면'으로 경로이탈을 한다. 다음에 또 경로이탈을 하면 웃상 어르신 유치원 졸업 사진을 꽉 붙들어야겠다.
그렇게 잘 돌아오다보면 시간 벌기 위해 하는 칭찬보다 진짜 감탄으로 나오는 칭찬이 더 많아질 거라 믿어본다. 내 인생 '푸는' 어르신들 덕에 수업 잘 '푸는' 기술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