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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 ⓒ elements.envato
 
얼마전 한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 때아닌 '생수 논쟁'이 불거졌다. 라면을 끓일 때 수돗물을 쓰는지, 생수를 쓰는지에 따라 출연자들 간에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이 짧은 클립 영상은 금세 '1만뷰'를 기록했고 많은 시청자들 역시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쟁점은 다름아닌 '찝찝함'이었다. 끓여먹을 때에는 수돗물도 괜찮지 않느냐는 입장과 그래도 찝찝하지 않느냐는 입장의 충돌이었다. 이러한 화제의 배경에는 현재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수돗물에 대한 관점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과연 수돗물을 얼마나 마시고 있을까?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단 7.2%의 국민들만이 수돗물을 '그대로 먹거나 냉장보관해서' 식수로 활용하고 있었다('2017 수돗물 먹는 실태조사', 수돗물홍보협의회⋅수돗물시민네트워크). 2013년 OECD 국가별 수돗물 음용률 통계에서 조사된 수치(5%)보다는 소폭 증가했지만 OECD 평균 음용률이 51%라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저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수돗물이 자리를 잃어가는 동안 플라스틱 생수의 자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국내에서만 연간 56억개가 소비된다는 플라스틱 생수는 폐기물 그 자체만으로 오랫동안 썩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는 등 생태계 환경을 위협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의 탄소 발자국을 추산할 때 페트병 1병당 1/3 용량의 석유가 사용된다고 볼 수 있으며, 생수 속에서 다량의 미세플라스틱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어 인류와 환경에의 피해는 그 이상으로 막심하다. 

생수 기업들의 무분별한 마케팅 속 질주하는 생수 소비를 멈춰세우기 위해, 한국 사회는 '찝찝함'의 벽을 넘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수돗물은 2024년 기준 세계 표준 권고량을 한참 웃도는 231가지 수질 검사를 통해 품질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3년 세계 물맛대회에서는 세계 7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 품질과 국민 인식, 그 사이의 머나먼 간극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해소해 나가야 할까?

생수 소비 많은 기차역과 지하철역에 공공 음수대 확충 요구
 
 야외에 설치된 공공 음수대를 이용하는 모습
야외에 설치된 공공 음수대를 이용하는 모습 ⓒ 여성환경연대

여성환경연대는 집 밖에서의 생수 소비 실태에 주목하여, 2023년 수도권 생활권자를 대상으로 '다중이용시설과 공공장소에서의 식수 접근권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들은 공원 등 나들이 시(26.0%), 야외길거리(24.1%), 기차역 혹은 터미널(19.4%)에서 생수를 주로 구입하게 된다고 응답했다(관련 기사  : 시민 10명 중 7명이 음수대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 omn.kr/25vfk).
 주요 생수 구입 장소(다중이용시설과 공공장소에서의 식수 접근권 실태조사)
주요 생수 구입 장소(다중이용시설과 공공장소에서의 식수 접근권 실태조사) ⓒ 여성환경연대
 
바로 이러한 장소에 공공 음수대가 마련되어 적극적으로 장려된다면, 불필요한 플라스틱 생수 소비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제도적 여건이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2022년 서울시내를 기준으로 전체 2만 6천여대의 음수대 중 2만 3천여대(87%)가 교육시설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기차역에는 단 1대의 음수대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지난 10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환경연대는 주요 '기차역'과 야외길거리로부터 접근성이 높은 '지하철역'에 공공 음수대의 설치와 철저한 관리를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을 한 달여간 진행했다. 총 828명의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모았다. 

이에 따라 여성환경연대는 서울시내 음수대 설치 주체인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현재 '서울아리수본부')와 기차역 운영 기관인 코레일, 서울 지하철역사 운영 기관인 서울교통공사에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하며 공공 음수대의 설치를 요구하고 추후 계획을 요청하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음수대 설치 어려워… 이유는?

그 결과,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신규 음수대 설치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갈 것"이며, "서울교통공사 등과도 협조체계를 구축하여" 설치 확대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실제 음수대가 설치될 경우 유지 및 관리 담당 주체가 되는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는 여러가지 사유를 근거로 설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코레일의 경우 "공공 음수대 설치가 운영에 대한 부담과 위험은 크고 실제적인 효과는 적을 것으로 판단되어 수용이 불가함"을 알려왔으며,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이미 철거된 사례를 예로 들며 추후에도 음수대 설치 계획이 없음을 밝혀 왔다. 

코레일이 제시한 설치 불가 사유는 다음과 같다. ①수돗물에 대한 인식과 이용의사는 저조하고 생수 구입 이용 문화 정착 ②과거 일부역에서 공공 음수대 설치하였다가 수질관리 문제로 철거 ③공공음수대에서 제공한 물 섭취 후 건강 이상 발생 시 책임 문제 발생 우려 ④현재 일부 역사 맞이방 또는 수유방에 정수기 혹은 생수기 설치 운영 중 ⑤공공음수대 설치시 수질관리 등 관리인력 및 관리비용 발생 등이다. 서울교통공사 또한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코레일에서 정부 공공 정책으로서 운영되는 공공 음수대의 품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은 그자체로 모순적이다(③).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수돗물 음용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국가 정책 기조에도 위배되며(①),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에 설치된 음수대가 그 대안이 될 수는 없다(④). 과거 철거된 사례가 있다면 더욱이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개선하여 우수한 서비스 제공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며, 여느 시설물과 같이 예산과 인력을 들여 관리해야할 문제라고 볼 수 있다(②,⑤).

다중이용시설과 공공장소에서 공공 음수대 이용을 통해 시민들은 수돗물을 새롭게 경험하고 플라스틱 생수 소비 저감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 특히 서울역과 같은 주요 기차역과 터미널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물을 떠마실 수 있는 공공 음수대가 반드시 설치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상수도사업본부에서는 음수대 설치 확충 뿐 아니라, 설치 후에도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운영주체와의 협력 강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플라스틱 생수가 아닌 수돗물 먹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정부 기관의 적극적인 홍보와 더불어 제도적 마련이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여성환경연대는 공공 음수대 제도를 이용자 시민의 관점에서 개선하고 이용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오는 5월 24일까지 공공 음수대 모니터링단 <물찾았단>을 모집하고 있다. 서울지역 제로웨이스트샵 5곳과 협업해 50명의 시민들을 모집하며, 자세한 사항은 여성환경연대 홈페이지 및 신청링크(bit.ly/24waterfinde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공 음수대 모니터링단 <물찾았단> 모집 포스터
공공 음수대 모니터링단 <물찾았단> 모집 포스터 ⓒ 여성환경연대
 
※ 여성환경연대는 살아있는 물을 뜻하는 '생수(生水)'라는 표현을 지양합니다. 병입수, 먹는 샘물 등의 중립적인 언어로 대체 가능하지만, 캠페인을 모두의 일상 가까이에서 확산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사용한 표현임을 안내드립니다. 

#플라스틱생수#공공음수대#음수대#저스트워터#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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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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