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나체 상태로 자전거를 타다 형사 입건돼 논란이 됐던 외국인 유학생 A씨가 사건 발생 이튿날인 지난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중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A씨는 우울증 치료를 받은 바 있었고, "최근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A씨와 같은 방을 사용하던 룸메이트들에게 학생의 정신질환 증상을 알리면서 분리조치하겠다는 공지를 냈고, A씨가 정상적인 학업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라 보고 본국으로 귀국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27일 사건이 발생한 대학에서 A씨에 대한 추모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해당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200여 명은 주최 측이 마련한 '대학 내 정신건강 인식에 대한 구조적 변화 요구'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에 참여한 후, 학내에서 침묵 행진을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우리가 사랑한 친구를 추모한다'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A씨의 연구실을 향해 걸었으며, 모 공학관 앞에서 1분간 묵념을 올렸다.
"학생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한 학교의 실질적 대응 부족해"
집회 참석자들은 "(이번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유학생과 연구자들이 업무 전반에 걸쳐 직면하는 극심한 연구 압력과 가혹한 태도에 있다"면서 "많은 연구실들이 연속적으로 운영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회의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주말에도 쉴 수 없다. 미래의 비극을 예방하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은 개별적인 사건이라 할 수 없다. 지난 2년 동안 학내에서 발생한 자살 건수가 실로 충격적이고 우려스럽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투명한 조사와, 관계 기관들의 역할과 대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B씨는 "지난 2년간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벌써 두 번째 죽음을 마주했다"며 "그러나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한 학교의 실질적 대응은 부족했다. 연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학생 700여 명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를 통해 이번 추모 집회를 준비하게 됐다"고 했다.
추모 발언에 나선 브라질에서 온 유학생 C씨는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아주 어렸고 학교나 이 나라에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면서 "모든 개인에게는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는 그것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에게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유학생 D씨는 "그는 무척이나 성실한 학생이었다"며 "그는 이 나라에서도, 그의 나라에서도 늘 성실했다. 그렇지만 어느 날부터 너무 힘들고, 더 이상의 압력을 견디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은 층에 위치한 연구실 소속인 유학생 E씨는 "그는 나와 같은 층에 있는 연구실을 썼는데, 어떤 날에 새벽 2시, 3시까지 일을 하고 연구실을 나왔음에도 그는 연구실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며 "그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어려움에 처한 학생 찾고, 개입할 방안 강구해야"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학생들이 학생에 대한 차별, 괴롭힘, 과도한 업무 부여 및 인권침해 사건을 안전하게 신고할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독립 업무 기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출신 국가 및 정치적 신념에 따른 차별을 방지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와 가혹한 대우를 가하는 교수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며, 그들이 다양한 배경, 업무 환경, 문화적 맥락을 지닌 학생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관련 교육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학생을 더 잘 식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위기 개입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했다.
A씨의 죽음 이후 지역사회에서는 지역의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신과적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자살예방센터 김도연 상임팀장은 사건 직후 KBS와의 인터뷰에서 "유학생들을 위한 정신과적 문제나 자살 관련 촘촘한 내부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사실 내부 매뉴얼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