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통해 글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전만 해도 글로 어떻게 먹고 사냐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이제 웹소설 작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면 "그럼 돈 잘 벌겠네?"라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웹소설 작가가 그저 취미로 끼적이는 행위가 아니라 어엿한 직업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2020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취업 준비생 신분이었던 나는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인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웹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이전부터 웹소설의 열혈 독자였던데다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행으로 웹소설 시장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취업 준비생이자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던 나는 오전에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글 얼개를 작성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채용 공고가 올라오기 전에 자격증을 취득하여 공백기가 생겼고,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약 6개월 공백기를 활용하여 원고를 완성했다. 매일 떨리는 손으로 메일함을 확인하며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끝에 웹소설 작가로서 첫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관련 기사:
직장인의 웹소설 작가 도전기... 이 정도 법니다 https://omn.kr/28tzb ).
채용 시장이 다시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한 2022년 하반기까지는 전업 웹소설 작가로 지낸 셈이었다. 반년간 비정규직 프리랜서로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장점들과 단점들, 그리고 직장과 웹소설을 병행하는 현재의 노동기를 연재 기사로서 기록하고자 한다.
어제는 집에서, 오늘은 카페에서
내 경험에 한정한 것이지만, 비정규직 프리랜서, 즉 웹소설 작가로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점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문득 디저트가 먹고 싶어지면 지금 당장이라도 카페로 가서 글을 쓸 수 있었고, 다음날 가족들과의 '호캉스(호텔+바캉스)'가 예정돼 있어도 일정을 따로 조율할 필요가 없었다. 일상 자체가 꽤 낭만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담당자에게 수정본을 보내야 하는 날이 아니라면 오늘이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매일 노트북 속 활자만 보고 살았다. 활자만 보고 살았다고 해서 바빴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단행본 형식의 완성된 원고로 계약했기에 마감 기한이 따로 없었다.
정확히는 담당자가 마감 기한을 정해주지 않았기에, 내가 스스로 정한 날짜에 수정본을 넘기지 못한다면 또 다른 날짜로 정하면 그만이었다. 당연히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 중간에 사정이 생겨도 노트북과 한글 어플만 있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웹소설 작가는 어떻게 일할까 묻는다면
당시 별다른 일이 없다면 보통 오전 11시에 노트북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프리랜서가 되면서 날짜 감각이 거의 없어졌으므로 여유롭게 정해 놓은 마감 기한을 예의상 확인한 다음, 어제 수정하다가 만 부분을 키워드로 찾아 수정을 이어간다.
오후 1시에서 2시 즈음 점심 식사를 한 후, 또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놀랍게도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의외로 백지에다 글을 쓰는 것보다 미리 써 둔 글을 수정하는 작업이 2배 이상 오래 걸렸다. 바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른데, 현재의 내가 6개월 전의 내게 맞춰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혹자는 내가 '웹소설 작가'라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웹소설 그거, 그냥 자판만 좀 두드리면 되는 거 아니야?"
맞다. 특히 2만 자 이상 4만 자 이하의 초단편은 손이 가는 대로 집필하여 출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5만 자 이상의 중장편으로 넘어가려면 일정한 계획서를 갖추어서 집필해야 할 것 같아 인터넷을 뒤적였다. 그러다 다른 작가들의 블로그에서 공동적으로 등장하는 '트리트먼트'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트리트먼트'란 각 회차별로 에피소드를 간단히 정리해 놓은 것을 말한다. 웹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기승전결이라는 커다란 덩어리로 정리한 시놉시스의 세부 카테고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나는 로맨스판타지, 현대로맨스, 판타지, 무협, 라이트노벨 등으로 분류되는 웹소설 장르 중 로맨스판타지 작품을 주로 출간했는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설정이 촘촘하지 않은 편이라 트리트먼트를 따로 작성하지 않았다. 시놉시스도 각 출판사의 양식에 따라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는 정도로만 작성했을 뿐, 집필용으로 따로 작성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내용과 분량에 따라 각자 맞는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마치 프리랜서의 시간 활용법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글을 쓰고 수정할까? 답은 "그냥 쭉 쓴다"이다. 내용의 기승전결, 캐릭터별 성격, 작품의 세부적인 설정들은 머릿속에 넣어 두고 그때그때 꺼내서 쭉 쓴다.
이렇게 뭐든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다. 바로 담당자의 피드백이다. 피드백을 메일로 쭉 써서 보내주기보다는 내 원고에 메모장 기능으로 코멘트를 달거나 빨간색 글씨로 수정할 부분을 표시해 준다. 물론 사회적인 물의(마약, 성매매 등)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면 담당자도 웬만해서는 작가 의견을 따라주는 편이다.
수정 과정도 의외로 간단하다. 예를 들어 "꽃을 하나 따서"라는 문장을 "꽃을 하나만 따서"라고 수정할지 한참을 고민하느라 한 시간은 거뜬히 보내기도 한다. 사소한 단어 하나, 음절 하나만으로도 뉘앙스가 달라지므로 어떤 단어와 음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의도가 다르게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캐릭터의 심리를 이전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심리 묘사를 추가하면서 글을 완성시켜 나가기도 한다.
직장과 웹소설을 병행하게 된 지금은 나름대로 요령이 생겨서 추후 수정하게 될 요소를 최대한 줄이며 집필하고 있다. 비정규직 프리랜서로서의 노동기와 앞으로 나올 N잡러로서의 노동기가, '노동으로서의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