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현재 검찰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은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송금한 '800만 달러'의 사용처를 다투는 사건이다. 검찰은 쌍방울그룹이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조성 지원(500만 달러)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북비용(300만 달러)을 대납해줬다고 보고 있다. 800만 달러가 모두 이재명 지사를 위해 대북송금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 지사를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수차례 소환조사했다.
하지만 최근 비영리 탐사보도매체인 <뉴스타파>가 입수해 연속보도한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800만 달러는 쌍방울그룹이 계열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대북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지불한 비용 중 일부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최소한 <뉴스타파>가 보도한 국정원(국가정보원)의 문건이 거의 일관되게 가리키는 것은 '이재명의 방북을 위한 대북송금'이 아니라 '쌍방울그룹의 주가조작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결과물은 현대아산그룹을 뛰어넘는 큰 합의 성과"
속옷 브랜드 '쌍방울 메리야스'와 '트라이(TRY)' 등으로 유명했던 쌍방울그룹은 IMF 외환위기 전후인 1997년 10월 자금난으로 부도를 맞았다. 이후 2002년 애드에셋(SWB홀딩스의 전신), 2004년 대한전선그룹, 2010년 레드티그리스에 인수됐다. 레드티그리스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2010~2021)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그룹을 인수한 이후 광림(특장차 제작), 나노스(바이오), 비비안(속옷), 아이오케이컴퍼니(연예기획사) 등을 인수하며 쌍방울의 규모를 키웠다(2013~2022)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김 전 회장은 남북관계가 좋았던 문재인 정부 시기(2018~2019) 대북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는 최근 <뉴스타파>가 입수해 보도한 '국정원 문건' 45건(2급 비밀문건+일반문건)과 국정원 블랙요원(신분을 위장해 공작하는 특수임무요원)의 비공개 법정증언, 핵심계열사(나노스)의 비공개 보고서에 의해서 '충분하게' 확인된다.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이 쌍방울그룹을 '제2의 현대아산'으로 키우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쌍방울그룹이 작성한 '나노스 IR 리포트'(2019년 1월 14일 최초 작성, 1월 29일 최종 수정)는 "나노스의 관계사인 쌍방울은 인도적인 지원 차원에서 북한에 1000만 달러에 이르는 내의 및 의료지원사업은 물론 또다른 관계사인 광림을 통해 건설장비 등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수년간 관계가 지속돼 왔다"라며 "이와 같은 지원과 협력을 통해 북한의 책임있는 대남사업 당국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의 협력사업 추진 중심 기업이 됐다"라고 밝혔다.
"나노스는 협력사업의 깊은 유대감을 통해 경제협력에 필요한 중요한 결과물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민간기업으로는 10여년 전 현대아산그룹을 제외하고 유일하며, 결과물은 현대아산그룹을 뛰어넘는 큰 합의 성과로 새로운 평화시대의 상징이자 남북관계 개선의 대표적인 기업이 된 것입니다."
이 비공개 보고서에는 "나노스는 이미 책임있는 북한 당국과 북한의 경제개방과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의미있는 합의에 이르렀다"라고 밝힌 대목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에 나오는 "경제협력에 필요한 중요한 결과물" "경제개방과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의미있는 합의"는 무엇일까?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 심양·단둥에서 총 여섯 차례 북한과 접촉"
쌍방울그룹은 북한과 2018년 11월 인도적 지원에 관한 실무협의, 2018년 12월 협력사업(지하자원, 도시개발, 재생에너지 사업권 등)에 관한 실무협의를 거쳐 2019년 1월 쌍방울그룹(나노스)과 아태위가 포괄합의서를 체결하고, 협약사업 실무부처 세부협의를 진행했다.
특히 '나노스 IR 리포트'의 '합의서 개요'에는 쌍방울그룹이 "희토류 탐사 및 채굴권 100조원 외 기타 지하자원 / 총 200조원"에 이르는 채굴권을 북한 측과 합의했다고 적시돼 있다. 이 보고서에는 쌍방울그룹과 북한이 2019년 1월까지 진행된 협의만 간략하게 나오지만, 2019년 10월 29일자 국정원 비밀문건에 따르면 이것보다 훨씬 많은 접촉과 협의가 진행됐다.
쌍방울그룹은 안부수 아태평화협의회(아태협) 회장의 중개로 2018년 11월께부터 북한의 아태위, 민경련(민족경제협력련합회)과 접촉했다. 아태위는 "조선노동당 산하 통일전선부 소속기관으로 남북간 민간교류와 경협업무의 집행기관"('나노스 IR 리포트')이다. 2007년 현대아산그룹의 협상 상대로서 금강산관광사업 주요계약 등을 주관했다. 박철(아태위 부위원장, 전 주유엔 북한 대표부), 김성혜(아태위 실장,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송명철(아태위 부실장) 등은 남한에도 널리 알려진 아태위 인사들이다. 경제협력기관인 민경련은 아태위가 관장하는 하부기관이다.
2019년 10월 29일자와 11월 28일자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쌍방울그룹과 북한(아태위, 민경련 등)은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중국 심양과 단둥 등에서 총 여섯 차례 접촉했다.
1차 접촉(1월 17일)에서는 쌍방울그룹이 1000만 달러의 내의 지원 의사를 전달했고, 대북사업 추진 합의서에도 서명했다. '대북사업 추진'과 관련, 국정원은 "태양광, 특장차, 쌍방울 훈춘공장 대북이전 등"으로 "추정"했다. 2차 접촉(5월 12일)에서는 '10월 말 내의 지원 추진' 합의서, 대북사업권과 사업주체를 명시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3차(7월 4일)와 4차 접촉(9월 28일)에서는 대북사업 추진을 위한 남측기업 간 투자그룹 구성, 공식 합의서 체결식 일정 등을 협의했다. 5차 접촉(11월 4일)에서는 쌍방울그룹 측이 쌍방울 훈춘공장에 북한 노동자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고, 6차 접촉(11월 27일)에서는 송명철 아태위 부실장을 만나 최고급 말안장을 전달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쌍방울그룹은 2차례의 대북사업 합의서 체결 사실을 통일부에 신고하지 않았다"라고 보고했다. 내의 지원사업만 통일부에 신고하고 1차와 2차 접촉 때 서명한 대북사업 합의서 체결은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문건에서 "철저한 비공개 下(하) 대북 경협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적었다. 특히 쌍방울그룹은 2019년 10월 23일 북한에 보낸 서신에서 "1월 합의서는 우리(남-북) 사이의 신뢰의 상징으로 남측 당국에 제출할 수 없다"라고 알렸다. 국정원의 판단처럼 쌍방울그룹은 "철저한 비공개 대북 경협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쌍방울그룹은 이렇게 북한과 접촉하는 동안 김형기 전 통일부차관(전 청와대 통일비서관), 김영수 전 현대아산 전략기획실장(전 국회 대변인), 안부수 아태협 회장 등 대북전문가들을 사내이사와 상임고문, 사외이사 등으로 영입했다. 이와 함께 정관의 신규사업목적에 '자원개발·광물성 제품 개발' 등을 추가했다.
대북사업 중재자인 안부수 회장과는 업무협약, 남북교류협력사업 강화 등을 위한 후원협약을 체결하고, 아태협의 사무실을 쌍방울그룹 본사(서울 동대문구 신당동)에 입주시켰다. 이는 당연히 대북사업을 위한 조치들이었다.
2020년 1월 31일자 국정원 문건에 따르면, 2차 접촉(5월 12일)에서는 대북사업권과 남북 사업주체를 명시한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추후에 대북사업의 피날레인 '공개 체결식'을 열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북한측이 합의서 공개 체결식을 계속 미루자 쌍방울그룹 측은 "평양 또는 제3국 개최"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2019년 10월).
이호남 "쌍방울, 계열사 주가 부양 수익금 일주일에 50억씩 전달하기로"
국정원 문건과 '나노스 IR 리포트'에는 "사업이행금" "사업(권) 권리금" "계약금" "이행보증금" "수익금" 등 자금과 관련된 민감한 단어들이 나온다. 먼저 '나노스 IR 리포트'에는 "사업이행금 1억불 지급"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2019년 10월 29일자 국정원 문건에 적힌 "사업권 권리금으로 1억 불 지급 약속"이라고 적시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2차 접촉에서 대북사업권과 남북 사업주체를 명시한 합의서에 서명했는데 '사업권 권리금' 혹은 '사업이행금'으로 1억 달러를 북한에 주기로 약속했다고 합의했다는 뜻으로 추정된다.
또 '나노스 IR 리포트'에는 "이행보증금" '500만 달러'를 북한에 지급한다는 대목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쌍방울 대북송금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조성 지원 용도로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줬다고 본 '500만 달러'와 같은 금액이다. 쌍방울그룹은 2019년 1월에 200만 달러를 먼저 지급하고, 2월에 나머지 300만 달러를 지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200만 달러는 약속한 대로 1월 23~24일에 송금했지만, 300만 달러는 4월 6일~11일에서야 송금했다.
"사업권 권리금 1억 불"과 "이행보증금 500만 달러"는 모두 쌍방울그룹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북한에 지급을 약속하거나 지급한 비용으로 추정된다. 북한으로부터 "대북사업권"을 확보받는 대가로 쌍방울그룹이 지급하려고 했던 '대북사업 비용'이라는 것이다.
쌍방울그룹과 북한 측은 2차 접촉(2019년 5월 12일)과 3차 접촉(7월 4일), 4차 접촉(9월 27일)에서 '합의서 공개 체결식'을 중요하게 논의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합의서 공개 체결식'은 계속 미뤄졌다. 그 과정에서 "(주)광림 샘플(20개)"라는 묘한 단어가 등장한다. 2019년 10월 29일자 국정원 문건에는 쌍방울그룹이 2019년 6월 7일과 9월 16일에 "(주)광림 샘플(20개)" 관련 협의를 위한 접촉을 제안하고, 이것을 전달하기 위한 면담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3차 접촉(7월 4일)과 4차 접촉(9월 27일)이 성사됐다.
국정원은 "(주)광림 샘플(20개)"를 "구체품목 미상"이라며 "현금"으로 추정했다. 이는 "합의서 공개 체결식"이 절박했던 쌍방울그룹 측이 조속한 "합의서 공개 체결식"을 열기 위해 북한 측에 약속한 자금으로 추정된다. <뉴스타파>도 "광림 샘플 20개는 쌍방울의 대북사업 진행과정 전체를 놓고 봤을 때 1차 협약식 및 2차 본계약 체결식에 이은 김성태의 평양 방문 및 합의서 체결식을 위해 쌍방울이 북측에 약속한 돈으로 추정된다"라고 분석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2020년 1월 31일자 국정원 문건에 나오는 "수익금"이라는 단어다. 이 문건에 따르면, 북한 정찰총국의 대남공작원인 이호남(본명은 리철, 1954년생)이 2019년 3월 경 대북사업가인 김아무개씨에게 이렇게 요청했다.
"대북사업으로 쌍방울 게열사 주가를 띄워주는 대가로 수익금 일부를 받기로 했다. 쌍방울이 수익금을 1주일에 50억 원씩 전달하도록 할테니 국내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해서 中(중) 선양으로 보내 달라."
국정원 문건이 적시한 대로 이호남의 발언을 해석하자면, 쌍방울그룹이 대북사업 합의서 체결 등을 통해 계열사의 주가를 띄워주는 대가로 북한 측에 "1주일에 50억 원씩"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만 국정원은 문건에서 수익금의 "총액"은 "미상"이라고 적었다. "수익금 50억 원"은 공교롭게도 검찰이 안부수 회장 공소장을 통해 김성혜 북한 통일전선부 책략실장 겸 아태위 실장이 요구했다고 적시한 북한의 스마트팜 개선 지원 비용 50억 원과 일치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호남으로부터 이것을 요청받은 대북사업가 김씨는 "만약 이런 내용들이 알려지면 국내 민간단체들의 대북사업이 다 틀어질 수 있다"라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이호남이 최근에도 나에게 '대북사업 과정에서 돈이 부족하면 쌍방울을 물주로 소개해주겠다'라고 언급했다"라고 국정원에 전했다.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추진을 맡은 계열사 나노스의 주가가 실제로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이다. 1월 24일 나노스의 주가는 5000원 선에서 9000원 선으로 약 2배 상승했다. 2019년 2월 1일자 국정원 문건에도 "나노스의 주가는 대북사업 기대감이 반영되어 1월 초 5000원선에서 1월 24일경 9000원선으로 수직상승"했다고 적혀 있다.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는 2023년 7월 4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비공개 증인신문에서 "쌍방울과 이호남의 주가조작 공모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라며 "국정원 직원이 전혀 근거없는 것을 보고서에 담을 순 없다. 쌍방울의 주가 부양 움직임과 가능성을 확인해서 2급 비밀문건(2019년 2월 1일자)을 만들었다"라고 증언했다.
김씨는 특히 이호남을 "2000년 후반부터 남한 기업인, 남한의 NGO 대북지원단체에서 뒷돈을 받아서 많이 상납했던 쪽으로 발달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증명하듯 김성태 전 회장이 북한에 건넨 800만 달러 중 100만 달러는 이호남에게 전달됐다. 이호남이 윗선에 상납을 해야 한다면서 김 전 회장에게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2019년 1월말께 쌍방울의 주가조작 가능성 파악
남한의 기업(쌍방울그룹)과 북한의 대남기구(아태위 등)가 대북사업 추진을 통한 주가조작을 공모했고, 그에 따른 수익금을 나눠 가지려고 한 움직임은 2019년 1월말께 국정원에 의해 파악됐다. 국정원 블랙요원인 김씨가 작성한 2019년 2월 1일자 국정원 2급 비밀문건 '009600종결 계획'을 보면 "협조자 주변인물의 주가조작 실행 가능성과 이에 따른 院(원) 연루설 가능성이 제기되었는 바"라고 적시돼 있다('협조자'와 '009600'은 안부수 회장을 가리킨다). 이 문건의 '5.종결사유'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ㅇ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김성태가 [지워진 부분] 이화영 부지사 및 009600을 앞세운 주가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한편 향후 當院 연루 의혹 제기 가능성 등 활용시 위협성 지적
김성태 전 회장이 이화영 경기도 부지사, 안부수 회장을 앞세워 주가조작을 하려고 했다는 가능성이 나오고 있고, 특히 이러한 주가조작 가능성에 국정원 연루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2019년 1월 30일 공식기구의 협의를 거쳐 "사실여부를 떠나 의혹 제기시 院(원)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사전 예방 차원"에서 8개월 동안 관리해온 협조자 안부수 회장과의 관계를 끝냈다.
국정원은 애초 안부수 회장을 협조자로 지정해 특별관리하며 북한 고위인사들(김영철, 김성혜, 이호남)의 동향 파악 등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김성태 전 회장이 이끄는 쌍방울그룹이 대북사업을 주가조작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하지만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중재자인 안부수 회장을 협조자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국정원은 자칫 쌍방울그룹의 주가조작 움직임에 연루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안부수 회장과의 협조자 관계를 종결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김성태 전 회장은 2010년 쌍방울그룹을 인수한 전후 주가조작으로 350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 등이 드러나 2018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혐의)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불법도박장 운영과 사채업 등으로 부를 쌓은 김 전 회장이 쌍방울그룹을 인수한 전후로 했던 주가조작을 통해 거액의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이미 경험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대북사업 추진을 통한 주가조작 시도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추진 중심기업 나노스의 지분 중 소액주주(11.18%)를 제외한 88.82%(광림, 베스트마스터1호, 쌍방울)가 쌍방울그룹 계열사(광림 48.36%, 쌍방울 17.27%)나 김 전 회장이 만든 투자조합(베스트마스터1호 23.19%)의 소유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북사업 추진을 통한 주가조작에 성공할 경우 그 막대한 차익을 '누가' 가져갈지 짐작되기 때문이다.
다시 이런 '주식 맛'을 경험하고 싶었는지 김성태 전 회장은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을 적극 추진했고, 그 과정에 상당히 깊숙히 관여했다. 안부수 회장은 2018년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중국 심양에서 김성혜 아태위 실장, 박철 아태위 부실장, 박희철 주심양 영사 등과 접촉했는데 그때 김 전 회장을 처음 데려가 김성혜 실장과 이호남에게 소개했다. 김 전 회장은 이로부터 한달 뒤인 12월 29일 중국 단둥에서도 안부수 회장과 함께 다시 김성혜 실장을 만났다.
하지만 국정원 협조자였던 안부수 회장은 이러한 사실을 국정원에 보고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국정원의 2급 비밀문건(2019년 2월 1일자)을 작성한 국정원 블랙요원 김씨는 비공개 증인신문(2023년 6월 20일)에서 "안부수가 고의로 김성태와의 동행을 보고하지 않았다"라고 증언했다.
검찰, 1년 전 국정원 문건 45건 확보했지만... 왜 수사 안 했나
기자는 쌍방울그룹의 대북사업 추진 과정, 북한과의 주가조작 공모와 수익금 배분 등을 적시한 국정원 문건을 보면서 1997년 대선 직전에 일어난 '총풍(銃風)사건'이 떠올랐다.
1997년 12월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측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총풍사건 3인방')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아태위 인사를 만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기소된 사건을 가리킨다. 만약 국정원 문건에 나온 내용대로 쌍방울그룹과 북한 측이 '주가조작'을 공모했다면, 이것은 '주풍(株風)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검찰은 쌍방울그룹의 주가조작 가능성이 담긴 국정원 문건을 1년 전인 2023년 5~6월 국정원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다. 여기에는 쌍방울그룹과 북한의 주가조작 공모, 수익금 배분 등이 적시된 문건을 포함해 2급 비밀문건이 3건이나 된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에서 근무한 한 인사는 "탑 시크릿(Top Secret)인 1급 비밀은 많지 않고, 2급 비밀이라면 거의 최고 문서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검찰은 '주풍사건'이 될 수도 있었던 쌍방울그룹의 주가조작 움직임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검찰이 '선택적 수사'라는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한 것인데, 이는 쌍방울 대북송금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정치적 기획수사'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2급 비밀문건 3건을 포함해 45건의 국정원 문건은 검찰정권의 중심축인 윤석열 검찰에 묻고 있다. 그 문건들이 가리키는 쌍방울그룹의 주가조작 움직임은 왜 수사하지 않았느냐고. 검찰(수원지검)이 "국정원 문건에는 불법 대북송금 경위 등에 대한 많은 내용이 들어있는데, 뉴스타파와 민주당에서는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나노스 주가와 관련된 일부 내용만을 발췌하여 언급함으로써 실체를 왜곡하는 것으로 매우 부당하다"(5월 22일)라고 반박해도 이 질문은 변하지 않는다.
검찰이 뒤늦게나마 이것을 수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뉴스타파>도 "주가조작의 실체가 있는지 추가 수사를 벌일 경우 북으로 건너간 800만 달러의 성격이 뒤집힐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이것을 계속 은폐한다면 새로 구성된 22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문건을 작성한 요원들을 불러 비공개 증언이라도 반드시 청취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문재인 정부 국정원에도 의심은 남는다. 왜 <뉴스타파>가 보도한 국정원 문건을 생산한 문재인 정부 국정원은 쌍방울그룹의 주가조작 움직임과 불법 대북송금, 김성태 전 회장의 불법적 대북접촉 등을 검찰에 넘기거나 수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당시 김 전 회장과 쌍방울그룹 등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지금의 대북송금사건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앞서 언급한 전직 국정원 인사는 "쌍방울그룹이 대북사업을 한다는 정도만 들었고, 9.19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됐다가 닫혔기 때문에 대북사업이나 경협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었다"라며 "돈이 건너간 것을 국정원이 못 잡았지만, 쌍방울그룹이 주가조작을 한 것은 맞다고 본다"라고만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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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정원 요원 법정 증언 "쌍방울 자금, 북미회담 거마비 가능성" https://omn.kr/28u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