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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나는 내풀책(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으로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한다. 하루는 수업 시간보다 40분 일찍 도착했는데 나보다 먼저 온 어르신이 계셨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냐고 물어봤다. 내가 친근해졌는지 '하소연 봇물'이 터졌다. 

"요새 스트레스로 3킬로 빠졌고 밤에 화장실 가느라 자꾸 깨요. 의사가 방광약을 줬는데 이번엔 변비가 생겼으요. 변비로 속 답답하지, 잠 못 자지, 그러니 수업 있는 날은 일찍 나와브러요... 다음엔 수면제 받아야 할라나." 
 
 약(자료사진).
약(자료사진). ⓒ 픽사베이
 
'어르신, 무조건 약만 받지는 마세요!'라고 말하려다, 삼켰다. 약을 자주 먹던 우리 엄마가 생각 나서다. 엄마는 절박뇨(요의가 느껴지면 잠시도 참을 수 없는 증상) 진단 뒤 처방을 받은 적이 있다. 

엄마가 받은 원래 처방전에는 '아세틸콜린'을 줄여서 방광수축을 줄이는 약이 있었다. 엄마는 약으로 절박뇨는 잡혔는데 변비가 생겼다며, 그 약을 받으러 병원에 다시 가야할지 고민했다.

노년의학과 정희원 교수의 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를 통해, 아세틸콜린 같은 어려운 단어를 배웠다. 그 단어의 끝은 '증상에 따라 처방받는 모든 약을 먹으면, 노인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였다. 

아세틸콜린이 줄어들면 인지기능, 장운동, 침 분비가 조금씩 떨어진다. 변비도 생긴다. 젊은 사람이야 주요 증상 개선 후 약을 끊으면 금방 회복되지만, 노인은 조금 다르다. 

아세틸콜린 부작용으로 약간 떨어진 인지기능은 치매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장운동 약화로 변비가 생기면 음식을 잘 못 먹고, 음식을 못 먹으면 근육이 줄어들고, 근육이 줄어들면 바깥출입이 어렵고, 바깥출입이 어려우면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악순환이다.

노년 치료는 증상 개선을 넘어 다른 약과 연관성까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하지만 정희원 교수 말로는 아직 한국의 의료 현실이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단다. 

"엄마,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지 말자. 절박뇨 약 때문에 변비 생긴 거 같거든. 차라리 절박뇨 약을 끊고 생활 습관을 바꿔보는 건 어때?" 

그래서 엄마는 약으로 해결하는 대신 생활습관을 바꿨다. 외출하는 날은 의식적으로 수분 섭취를 금하는 대신, 집에 있는 날은 물을 마음껏 마신다. 이것만 지켜도 절박뇨가 주는 불편함은 상당 부분 해결됐다. 

한파 뜨면 반은 결석, 한파 지나면 대상포진

글을 쓰겠다고 복지관에 오는 어르신은 인지, 신체 모두 꽤 건강하신 편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날씨에 전보다 더 민감해졌다.

날이 춥다는 한파주의보가 뜨면 반이 결석이고, 그게 두 번만 이어져도 전체 출석률이 확 떨어진다. 그래서 이제 겨울 수업은 잡지 않는다. 한파주의보가 지나가면 대상포진이 몇 명씩 나왔다. 성인 수업을 할 때는 한 번도 못 봤던 일이다. 

짧은 수업 시간에 인생을 풀다 보면 압축된 서사가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까지 불러온다. 그 끝은 거의 각종 만성질환이다.

익숙한 병원은 괜찮지만 처음 가는 큰 병원은 부담스럽다고, 그렇다고 자식을 부르기엔 더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결국 '혼자 버틴다'는 말도 자주 나온다. 어느 어르신은 가벼운 팔 골절인데 버티다가 철심 박는 수술을 하기도 했다. 일찍 갔으면 깁스로 끝날 일이었다고 한다.

수업에서 보면, 어르신들끼리는 서로 '병원 가봐요, 약 챙겨 먹어요'라는 말을 자주 주고받는다. 나는 조심히 약을 드시고, 복약 전에 여러 정보를 더 알아보라고, 조절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끼어들고 싶다가도 결국은 입을 꾹 다문다. 

엄마와 나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으며 서로 간에 신뢰가 있었고 그래서 대화가 잘 됐다. 수업으로 만난 어르신과는 그런 조절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결국 얘길 듣고 나는 '그러셨구나, 아이고, 어째요.' 같은 말만 한다. 

수면제를 고민했던 어르신의 자식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외국에 있다. 어르신 혼자 사신다고 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다. 정말 수면제를 처방받으시면 어쩌지, 그 수면제가 어르신을 더 기운 없게 만들면 어쩌지, 같은 답 없는 고민이다. 

다음 수업시간이 됐다. 그 어르신이 결석하셨다. 담당 간사님이 전화하셨는데 통화가 안 됐다고 하셨다. 덜컥 겁이 났다. 수면제가 과하게 일을 한 건 아닐까. 

걱정했던 어르신은 2주 후, 마지막 수업에 오셨다. 눈에 띄게 살이 더 빠지셨지만 그런 말은 일부러 하지 않고, 그냥 반갑게 맞이했다. 수업 시간에 딱히 뭘 쓰시지도, 다른 얘길 하시지도 않으셨다.

그랬어도 나는 그 어르신께 '옷이 화사해서 잘 어울려요, 오랜만에 오셨는데 표정이 더 좋아지셨어요' 등 쓸 수 있는 모든 칭찬 어휘를 동원했다. 어르신 입가에 떠 있는 조용한 미소는 어떤 말에도 변화가 없었다. 

수업은 끝났다. 그 뒤로는 어르신 소식도 들을 수 없다. 엄마랑 통화하는 날이면 꼭 그 어르신이 떠오른다. 그분에게 당도하지 않은 시간을 내가 미리 겁먹고 상상한 게 아니기를, 어떤 약이 그분의 시간을 소리 없이 갉아먹고 있지 않기를 저절로 바라게 된다. 

어르신들의 인생을 풀어드리는 일에 앞서, 그분들의 온전한 존재를 먼저 기도하는 날이 늘어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내인생풀면책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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