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도마뱀이다!"
지난 주말, 낙동강 현장조사에서 정말 오랜만에 도마뱀을 만났다. 너무 반가워 가만히 서 있는 녀석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온몸에 검은 반점이 있는 특이한 친구였다. 녀석은 표범장지뱀이었다.
표범장지뱀은 4대강사업 초기 남한강 도리섬 부근에서 발견됐는데, 모습 때문에 존재 자체로 화제가 됐다. 그만큼 만나기 쉽지 않은 녀석으로, 환경부는 표범장지뱀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근데 이날 30분 동안 표범장지뱀을 10개체나 만난 것이다. 만날 때마다 한참을 관찰한 것을 감안하면, 이곳을 표범장지뱀의 집단 서식처라 봐도 무방해 보였다. 이쯤에서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한상훈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나라에는 서식하고 있는 장지뱀 가운데 특이한 환경에서만 생활하는 장지뱀이 있다. 마치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만 생활하는 파충류로 몸에 있는 무늬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모래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표범장지뱀이다.
몸과 네발에 걸쳐 나 있는 반점 무늬는 마치 표범의 털가죽 무늬와 같다고 하여 '표범장지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표범문양(무늬)이라는 뜻의 표문도마뱀(북한에서는 남한과 달리 장지뱀을 도마뱀이라 부르고 도마뱀을 미끈도마뱀이라 부른다)이라 한다.
속명의 'Eremias'는 '정지'라는 뜻을, 종소명의 'argus'는 '백개의 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다. 즉 '백개의 눈을 지닌 움직임이 조용한 파충류'라는 학명을 지녔다."
즉, 이곳에서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의 은둔자' 표범장지뱀이 대거 출몰한 것이다. 이곳은 바로 낙동강 해평습지다. 지역에 따라서 고아습지라 부르기도 하는 곳으로 4대강사업 당시 강에서 퍼올린 준설토로 기존 둔치를 더 높이 돋운 곳이기도 하다. 원래 땅보다 1~2미터 이상 땅이 더 올라가 지하수 투수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곳으로, 4대강사업 초기 이곳은 거의 황무지 같았다.
4대강 황무지에 심겨진 생태교란 식물 큰금계국
그곳에 심어둔 나무는 족족 죽고, 식물도 뿌리를 잘 내리지 못했다. 너무 메마른 탓이었다. 땅이 높아 표면 아래 강물이나 지하수가 위로 올라오는데도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 당시는 마치 거대한 황무지를 보는 것 같았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황무지 같았던 그곳에 화려한 노란색을 띠는 큰금계국을 심었다. 그러니까 황무지처럼 거친 땅에 이 큰금계국만 자리를 잡아 점점 펴져나간 것이다. 그것이 햇수로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 멸종위기종 표범장지뱀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일본 등지에서 생태위해종(국내서는 아직 환경부가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하지 않았다)으로 지정된 식물 아래 아래 멸종위기종이 깃들어 살고 있는 묘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생태교란종과 멸종위기종의 불편한 동거
그렇게 14년이 지나면서 지금은 안정화되어 작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큰금계국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자리를 비키지 않는 다년생 식물로 이들이 번성해버리면 우리 토종 식물들은 자리를 잡을 수 없다.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생태학자 김종원 전 교수에 따르면 "큰금계국은 화려한 꽃을 피워서 벌과 나비까지 불러모아서 이 나라 고유종 충매화 식물(곤충이 수정해주는 식물)의 생존 또한 위협해버려 멸종위기종 충매화 식물의 멸종을 앞당기게 한다"는 사실이다. 김 전 교수는 "서구나 일본에서는 뿌리째 뽑아 제거하고, 다른 곳에 심기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를 해 일본의 경우 현재 개체수 관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쯤되니, 표범장지뱀은 왜 이렇게 독특한 무늬를 지니게 됐을까가 궁금해진다. 한상훈 박사는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생각하라"고 했다. 즉 "모래로 뒤덮인 황무지와 같은 곳에 듬성듬성 나 있는 풀들로 구성된, 마치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표범장지뱀이 오랜 시간 진화하면서 생태학적으로 적응하여 생존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한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큰 강의 삼각주, 모래섬, 모래 언덕, 해안가 및 도서 지역의 모래 해변 등이 표범장지뱀이 살 수 있는 서식 환경"이라면서 "이러한 특이한 서식지만을 선호하고 생존하여 왔기에 우리 곁에 있으면서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동물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 귀한 생명이 큰금계국과 함께 낙동강 해평습지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큰금계국은 인간이 씨를 뿌려 만든 것이고, 표범장지뱀은 저절로 그곳에 정착해 자손을 퍼뜨려와 지금에 이르렀단 것이다.
인간 개입은 이제 그만
그런데 큰금계국은 화려한 꽃으로 벌, 나비뿐 아니라 사람까지 불러모은다. 이들이 한창 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낙동강 제방에 차를 세우고는 강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기 좋은 명소가 된 것이다.
그 바람에 이곳을 국가정원으로 만들자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인공의 정원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인간이 개입해 큰금계국을 번성시켜놓고, 이번에는 다양한 꽃들이 만발한 정원으로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계속해서 인간의 개입이 이어진다. 하지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큰금계국만 제거하고 그곳을 그냥 놔둬야 한다"란 환경단체의 주장은 그래서 합리적 명분을 얻는다.
그래서 외쳐본다. "표범장지뱀의 땅 해평습지를 그대로 보전하자!"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