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군대에 있는 제 친구들을 비롯해, 20대 남성에게 군인이 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들의 죽음은 대통령에게 격노할 사안도 아닌가요?" - 이민지 한국외국어대학교 휴학생
"채상병 사망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군복무 중이었습니다. 생활관에서 뉴스로 소식을 접했는데 저희도 채 상병이랑 처지가 비슷했기에 많이 분노했습니다." - 류기환 홍익대학교 2학년 재학생
11일 오전 9시 30분께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 앞. 채상병 사망 사건 당시 초동 조사를 맡았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다섯 번째 재판을 앞두고 채상병 또래 대학생들이 그 옆에 섰다.
'스물한 살 대학생 채상병의 죽음,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검은색 손팻말을 든 대학생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경고하고 박 대령에게 연대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날 현장에 오지 못한 대학생 30여 명도 손수 응원 메시지를 적어 박 대령에게 전달했다.
"더 이상 친구들 죽음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
중앙지역군사법원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박 대령의 상관명예훼손 및 항명 혐의에 관한 5차 공판을 열고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이에 앞서 자발적으로 모인 대학생들과 박 대령의 변호인, 해병대원, 군인권센터, 더불어민주당·개혁신당·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등은 '박정훈 대령 5차 공판 응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달 '채상병 특검 거부권 저지 청년·대학생 긴급행동'을 제안했던 손솔씨는 이날 박 대령 옆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손씨는 "현재 대학교 기말고사 기간임에도 오늘 이 자리엔 대학생 30여 명이 와있다"며 "저희가 박 대령과 함께 서는 이유는 군에서의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책임을 다하는 국가를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채상병 사건부터 그 후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재판 과정까지 대학생들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면서 "채상병 사망 사건은 해병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의 이야기고, 대학생의 이야기고, 온 국민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휴학생 이민지씨도 "2년 전 한국외대에서도 군 내 사망사고로 1명의 학우를 잃었다. 올해 역시 군기 훈련을 받다가 숨지거나 수류탄 폭발 사고로 훈련병이 죽는 등 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며 "대학생 커뮤니티에는 '나라에서 마음대로 군대에 데려갔으면 병사들 목숨만큼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글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대학생들은 더는 또래 친구들이 군대에서 이유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 채상병 사건의 해결이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홍익대학교 2학년 재학생 류기환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해 12월 전역했고, 채상병 사망 사건 당시 군복무 중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군 생활관에서 다 함께 뉴스를 보며 동기들과 '채상병이 물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갔겠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 '그래도 이번엔 잘 해결되겠구나' 등의 대화를 나눴다"면서도 "그 후 책임자들의 행보를 보며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종범 불출석 소식에 김규현 변호사 "특단 조치" 예고
박 대령의 변호인으로 활동하는 김규현 변호사는 "지금까지 우리는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통화한 내역을 밝혔고, 국방부 조사본부가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는 것이 맞지 않다'라고 판단한 정황 등을 확인했다"며 "앞으로도 통신 내역 등에 대한 사실 조회를 신청하고 공수처 등 자료에 대한 문서 송부 촉탁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공판엔 정종범 해병대 2사단장(사건 당시 해병대 부사령관), 허태근 전 국방부 정책실장,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장동호 해병대사령부 법무실장 등 4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었으나 정 사단장은 서북도서 방위를 위해 출석하지 않는다고 전해졌다.
이에 김규현 변호사는 "군사법원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 증인에 대해서 강제구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늘 재판에도 정 전 부사령관이 불출석한다면 우리는 군사법원에 특단의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대령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현장에 오지 못한 대학생들이 보내온 응원 메시지를 전해 받고 법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