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됐던 지난해 8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개인전화를 이용해 해외 출장 중이던 이종섭 국방부장관과 모두 3차례 통화한 다음날인 3일, 이 장관이 윤 대통령 절친으로 알려진 고석 변호사(육사 39기,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역임)와 통화한 기록이 확인돼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장관은 육사 40기로 고 변호사의 한 기수 후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박은정 조국혁신당(비례대표) 의원은 12일 법사위 회의에서 "한 달 뒤인 7월 19일이면 채 해병 1주기가 된다는 어머니의 호소를 접했다"면서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고 간책임을 반드시 묻기 위해 한 가지 추가 사실을 말하려 한다"라고 밝혔다.
박 의원이 공개한 지난해 이종섭 장관의 통화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8월 3일 오후 2시 45분, '010-71'로 시작되는 휴대전화와 한 차례 통화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이 전화를 확인하니 윤 대통령의 사법원수원 23기 동기이자 지난 총선 용인병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고석씨"라고 폭로했다.
당시 이 장관과 고 변호사는 27초가량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20몇 초 짧게 통화했어도 지시형으로 이미 형성된 것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해당 내용을 소통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고 변호사와 이 장관이 통화한 전날인 8월 2일은 임성근 해병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기록을 경찰로 이첩했다가 군 검찰이 되찾아 온 날이다.
"대통령 최측근이 구속 밀어붙여" 의혹 제기된 바 있어
박은정 의원은 "용인병에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고석씨가 단수공천이 돼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경선 없이 전략 공천된 것에 대해 비판이 많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5월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전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변호를 맡은 김정민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육사 출신의 의외의 인물이 배후에서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대통령의 최측근인 인물, 전혀 공직에 있지 않은 분인데 그분이 (박정훈 대령) 구속을 밀어붙였다는 말이 돌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고석 변호사는 육군사관학교 39기로 1983년 소위로 임관해 이듬해인 1984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다. 이후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을 함께 다니면서 친해졌다고 알려졌다.
지난 2008년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준장으로 진급했는데, 당시 대전지검 논산지청장으로 있던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영전을 축하해 줄 정도로 관계가 돈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육군본부 법무실장을,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끝으로 전역할 때는 윤석열 당시 검사가 찾아와 "그간 고생했다"고 덕담을 건냈다고도 한다.
박은정 의원은 고석 변호사와 지난해 8월 해병대수사단 기록 회수에 관여했던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은 같은 육사 출신 군 법무관으로 끈끈한 선후배 사이라고도 주장했다.
박 의원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은 최근 jtbc 보도에 나왔듯이, 국방조사본부가 최종 보고서에서 임성근을 빼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는 분"이라며 "무엇보다 지난해 8월 2일 박정훈 대령이 경찰로 넘긴 사건 회수를 지시한 당사자이고 박 대령에 대한 무리한 영장 청구에 관여한 의혹도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육사 출신이며 군 법무관인 이아무개 중령도 국방부법무관리관실 요직에 근무 중인데 고석, 김동혁, 이 중령 등 육사와 군법무관 출신들이 채 해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이 있는 3인방"이라고 주장했다.
고석 "기억이 없다"
고석 변호사는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장관과 통화한 이유를 묻자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지난해 5~6월부터 용인시민안보포럼 창립을 준비하며 당시 함께 했던 멤버들에게 부탁해 (업무)수첩을 찾아보니 '8월쯤 주요 내빈들에게 행사일정을 안내하며 축사를 부탁했던 것 같다'고 알려줬다"며 "이 장관은 올해 1월 8일 (22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열었던) 북 콘서트의 축사를 부탁해 거기서 처음 얼굴 보고 인사했다"라고 전했다.
고 변호사는 박 의원이 사실상 자신을 수사외압 배후로 지목한 데 대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 왜 그런 발언을 하는지 의문이다. 차라리 언론브리핑을 하면 법적 대응이라도 할 수 있는데"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박 의원이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자신이 해병대 수사단 기록이 회수된 다음날 이 장관과 통화한 것을 문제 삼은 데 대해선 "연수원 졸업한 뒤 지금껏 대통령과 식사 한 번 안 했다"라고 일축했다.
한편, 이날 법사위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제1차 전체회의를 열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발의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상정하고 심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