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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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 덕에 루마니아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습니다'(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우리 부자는 러시아에서부터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유라시아를 횡단한 후 다시 러시아를 통해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를 지나오며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 다시 돌아가기엔 아들과 나 모두에게 무리일 것 같았다.
그래서 중간에 한국으로 차를 보내고 우리는 비행기로 남은 여행을 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그렇게 결정한 자동차 여행의 종점이 바로 그리스의 아테네였다. 차량 탁송을 맡길 국내 업체를 찾아, 한 달 전쯤 아테네에서 보내기로 예약을 해두었다.
우리는 불가리아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자동차 여행지인 그리스로 들어왔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그리스에도 아들과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지중해하면 떠오르는 하얗게 눈부신 건물을 볼 수 있는 '산토리니'도 있고, 더 남쪽에 있는 섬 '크레타'와 '코린토스 운하'도 보고 싶었지만, 아테네에서 차량을 맡기기로 한 날짜가 다가와 아테네에 가기 전 딱 한 곳만 들렀다 가기로 했다.
어렵게 선택한 도시는 칼람바카(Kalambaka)였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칼람바카'라는 도시 이름보다는 '메테오라'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곳이다. 칼람바카에 도착하니 수도원이 있는 바위산은 생각보다도 훨씬 크고 웅장했다. 서둘러 짐을 풀고 큰 바위산 아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태풍아, 여기는 양고기가 유명하대, 우리 양고기 먹자."
"양고기? 아빠, 맛있겠다."
먹자마자 미간 찌푸려진 양고기, 왜냐면
양고기와 전통 소시지 요리를 주문했고, 식당 측은 곧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양고기는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고 그냥 불에 구운 요리였다. 접시에 담긴 모습도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딱 한입 고기를 뜯고는 바로 미간을 찌푸릴 정도의 충격과 함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너무 맛있어서다.
"태풍아! 이거 먹어봐. 진짜 맛있어. 인생 양고기다."
"진짜? 우아~ 아빠 진짜네. 양고기가 왜 이렇게 맛있어?"
칼람바카에서 먹은 양고기는 생긴 건 정말 평범한 양고기구이 같았지만, 맛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고기의 굽기가 질기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적당한 식감과 적당한 소금간 등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 지금껏 여행하며 먹은 맛 중에 최고로 꼽힐 맛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들과 칼람바카 시내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포장한 뒤 수도원을 보러 갔다. '메테오라(Meteora)'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라는 뜻으로 이곳엔 높은 바위산 꼭대기에 700여 년 전에 지어진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을 보기 위해서는 산 꼭대기로 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며 보는 풍경은 정말이지 여기가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이 멀미할까 싶어 잠깐씩 주차하고 차 밖에서 시원한 공기를 쐬는 동안, 나는 경치를 구경했다. 산 중간에서 보는 풍경과 경치도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구경하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아들과 수도원을 잘 볼 수 있는 바위 꼭대기 전망대로 걸어갔다.
"아빠, 나 고소공포증 있어, 여기 좀 무서워."
"아빠 손잡고 가면 괜찮아. 저기 봐, 저 바위 꼭대기에 집이 있지?"
"응, 그렇네. 저긴 누가 살아?"
"우리나라 절에 계신 스님처럼 그런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야. 저렇게 높은 데에 몇백 년 전에 지은 거래. 대단하다 그치?"
전망대 아래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서는 샌드위치와 음료를 꺼냈다.
비현실적인 바위산과 더 비현실적인 바위산 꼭대기의 수도원을 보며 아들과 샌드위치를 먹었다. 경이로운 풍경을 보며 아들과 먹는 샌드위치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먹은 고급 요리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이제 아테네에 차량을 맡기기로 한 날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아 다시 서둘러 아테네로 향했다. 계속 몇 시간을 달리자 아테네 고속도로 요금소가 보였다. 그런데 요금소를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라톤을 달리다 종점을 본 기분'이라 해야 할까. 마라톤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왠지 그런 기분이었다. 끝에 가까웠다는 기분.
'아. 이제 진짜 흰둥이(자동차 이름)랑은 마지막이구나!'
숙소에 도착해 다음 날은 제일 먼저 제1회 올림픽이 열린 '근대 올림픽 경기장'으로 갔다. 나는 한국에서 여행 출발할 때 아들 태권도 도복을 챙겨왔었다. 여행하며 많은 도시에서 아들의 품새 영상을 찍어 남겨놓고 싶었지만, 일정 내내 혼자 모든 걸 챙겨야 해 바쁜 핑계로 도복을 꺼낼 일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테네에서만큼은 꼭 도복을 입혀 아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올림픽 경기장 입구에 도착해 아들에게 미션을 줬다.
"태풍아, 네 도복 아빠가 챙겨왔거든? 이거 입고 고려 품새 한 번 해보자."
"이걸 언제 챙겨왔데? 아빠 나 창피한데? 그리고 여행하느라 다 까먹었어."
"아냐, 몸으로 배운 건 금방 기억나. 이거 하면 아빠가 '소원 쿠폰' 쏜다."
"소원 쿠폰? 진짜? 알았어!"
아들은 잠깐 시간을 달라며 구석으로 가 품새 연습을 했다. 잠시 뒤 연습을 끝낸 아들 손을 잡고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관광객들의 환호... 아테네올림픽경기장에 올라간 태극기
경기장 깃발이 걸려있는 아래에서 아들이 구호를 외치며 고려 품새를 멋지게 선보였다. 그러자 옆에서 구경하던 관광객들이 환호해 주었다. 품새가 끝난 후에는 아들과 경기장 트랙을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결승점을 통과하고서 나는 2등 단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아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태풍아, 너도 올라와. 네가 1등 했잖아."
아들이 1등 단상으로 올라가자 지켜보던 관광객들이 환호와 함께 손뼉을 쳐줬다. 우리는 함께 태극기를 들었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 혼자 호텔 주차장으로 나가 짐을 정리했다. 이제 차에 실려있는 모든 짐을 꺼내 가방에 담아야 했다. 그렇게 몇 달간 아들과 버티게 해준 짐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우린 이제 곧 한국으로 갈 흰둥이(자동차)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이제 네 할 일 다 했어! 고마워."
방에 있는 아들을 데리고 나와 차량을 한국으로 보낼 사무실로 향했다.
아테네 외곽의 물류 회사였다. 도착하니 내게 필요한 서류와 주소가 적힌 종이를 주며 도장을 받아오라고 했다. 주소가 적힌 곳은 공증사무소 같은 곳이었다. 차량 반출 전, 그리스 세관에 제출할 서류에 도장을 받아오라는 것.
주소를 찾아갔는데 직원들은 모두 바빠 제 할 일만 하고 인사조차 잘 받지 않았다. 한참 기다리다 일 처리가 끝난 듯한 직원이 있어 다가가 물었지만, 영어를 못하는지 내게 그리스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번역기를 켜봤더니, 아마 내 여권과 비자를 함께 달라는 거 같았다.
나는 '한국인 여행자이고, 비자는 없다'며 여권만 주려고 했다(그리스에서 한국인은 최대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 직원은 내게 그리스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번역기로 내 사정과 필요한 걸 말했지만, 사무소 직원은 이제는 서툰 영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Go to Police(경찰서로 가). Go away!(저리가)"
다시 한번 '나는 여행 중이고 한국인 여행자는 비자가 필요 없다'라고 번역기로 말했지만, 이젠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마저 나에게 소리치며 나가라고 했다. 정말로 비자가 있어야 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급하게 가까운 경찰서를 찾았다. 인근 경찰서에 직접 가서 경찰관에게 물었다.
내 자초 지경을 듣더니 경찰관 왈 그 업무는 아까 그 사무실에서 하는 업무가 맞고, 한국인은 비자가 없어도 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리고 왜 나보고 경찰서로 가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내가 그 공증사무소가 공공기관인지 사설 기관인지 물으니, 사설 사무소라고 했다. 그리곤 친절하게 다른 주소를 하나 알려줬다. 나는 아들과 경찰관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갔다. 사무실 문을 열고 위축된 얼굴로 아주 공손하게 물었다.
"저는 한국인 여행자이고…."
내 말을 듣던 직원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손에 있던 서류를 달라고 했다. 건네주니 아무 말 없이 바로 도장을 꺼내 찍어주곤 가라고 했다.
나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황당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이렇게 간단히 도장만 찍을 일이었나 본데 아까 거기는 왜 그랬지?' 싶어서다. 차량을 맡길 사무실로 돌아가 이 서류를 주니, 담당 직원은 이제 모든 절차가 다 잘 끝났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준 친구 흰둥이와의 작별
나는 바빠서 한동안 못 한 세차를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어 창고 한쪽에 있던 수돗물로 차를 세차했다. 우리는 그간 함께한 자동차와 인사를 나눴다.
"태풍아, 이제 정말 흰둥이랑 마지막이다. 인사하자."
"응, 흰둥아 잘 가! 한국에서 보자."
"진짜 고생했다.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수고했어~"
흰둥이를 토닥거리는 과정에서 내 눈에선 정말 눈물이 났다. 시베리아 비포장길과 진흙길에서 내가 의지할 곳은 이 차밖에 없었다. 우랄산맥에서 폭설을 만났을 때도,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아찔한 빙판길을 운전할 때도, 흰둥이는 그 흔한 정비 경고등 한번 들어온 적이 없었다. 헛바퀴를 돌거나 바람이 빠지지도 않았다.
지구 한 바퀴, 약 4만 km를 달리면서 우리 부자를 안전하게 아테네까지 데려다준 자동차 흰둥이에 나는 더 할 수 없이 큰 감사함을 느꼈다.
'흰둥아! 고맙다. 남들은 연식도 오래된 국산 차라고 얕잡아볼지 몰라도, 넌 나한테 최고의 자동차야!'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히며, 개인 블로그(blog.naver.com/james8250)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