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아이들은 주로 동네 골목에서 놀았다. 한참 놀이욕구가 충만해 있는 아이들은 좀처럼 집에 있지 못한다. 함께 놀고 싶은 아이들을 골목으로 불러내고, 또 함께 놀고 싶은 아이들 스스로도 골목으로 나온다.
골목놀이는 자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말뚝박기,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소꿉놀이 등 어울림에 따라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로 전개되지만, 놀이욕구가 가득 찬 만큼 아이들은 어느 것을 놀아도 재미가 난다. 김녹촌의 동시 '겨울 아이들'은 골목 안 아이들의 놀이풍경과 정서를 이렇게 노래했다.
손끝이 아리도록 추운 날에도
골목 안은 아이들로 법석거려요.
팽이치기 자치기 함께 뛰놀면
찬바람도 추위도 도망가지요.
귀끝이 따갑도록 추운 날에도
빈터에는 아이들로 가득 차지요.
구슬치기 말타기 함께 뛰놀면
찬바람도 추위도 물러서지요.
-김녹촌, '겨울 아이들', <독도 잠자리>, 파랑새어린이, 2004.
팽이치기, 자치기를 함께 하며 뛰놀면 찬바람도 추위도 도망간다고 했다. 골목에서 누리는 아이들의 놀이 신명은 다른 무엇으로 억제될 수 없다. 그러기에 아이들의 골목놀이는 해질녘이 되어도 끝날 줄 모른다.
그런데도 골목의 놀이판이 깨질 때가 있다. 이 놀이판을 마무리짓게 하는 것은 "OO아 밥 먹어라"하는 엄마의 목소리다.
해질녘이 되면 이 소리가 골목 여기저기서 알람처럼 들려온다. 놀이에 팔려 그 소리를 못 듣거나 듣고도 모른 체하고 놀면 급기야 엄마가 와서 아이 손을 잡고 들어간다. 골목 놀이판은 이렇게 종료된다.
이와 함께 골목 놀이판은 또 다른 요인으로 깨지기도 한다. 그것은 날씨이다. 놀이 중에 비가 내려도 웬만하면 그냥 견디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드물다. 일단은 골목 어느 집 추녀 밑으로 들어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상황을 살피는 것이 예사이다.
추녀 밑에 늘어선 아이들은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노래를 하면 함께 부르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도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한 가지 간절함이 있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구전동요 중 이런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아래의 '비야비야 오지마라'가 그것이다.
비야비야 오지마라
우리형이 시집간다
가마문에 비들치고
다홍치마 어룽진다
-김사엽 외, <조선민요집성>, 정음사, 1957, 부산 동래.
전통혼례는 예식은 신부 집에서 치르고, 그 뒤 사흘 만에 신부가 신랑집으로 향한다. 이를 신행이라고 한다. 신행은 신부가 시가에 처음으로 들어가는 날이기에 말 그대로 시집가는 날이다. 이때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를 탄다. 노래에 나오는 가마는 신부의 신행길을 말한다. 신행 때 신부는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는다.
노래는 비더러 내리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리 해야 될 사유를 말했다. 언니(형)가 시집가는데, 가마에 비가 들이치면 다홍치마가 얼룩진다는 것이다. 비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딱한 상황을 비에게 알리고, 더 이상 비를 내리지 않도록 호소한 것이다.
놀다가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비가 그치기를 소망하는 뜻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이런 노래에 신행길 신부 옷이 젖을까봐 걱정하는 내용은 다소 엉뚱해보인다. 그러나 여기서의 엉뚱함은 비가 차마 비를 계속 내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설정한 상황이다. 어지간해서는 시집가는 날 신부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동심은 자연과 교감하며 소통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신을 둔다. 그래서 동심은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고자 한다. 언니가 시집가는 상황을 설정해 이를 핑계로 비를 통제 하려는 동심의 발상이 재미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기상청은 금년 장마가 예년보다 요란할 것으로 예보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기에 우리의 올 장마도 간단치 않을 수 있음은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비로 인해 별 탈이 없었으면 좋겠다. 골목 어느 집 추녀 밑에 늘어선 아이들의 심정으로 '비야비야 오지마라'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