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종자는 오랫동안 농민들의 손에 의해 최소 30년 이상 이 땅에 심겨진 종자를 말한다. 매년 심겨지며 조금씩 그 땅의 생태계에 맞춰서 적응해 온 토종종자는 우리 삶의 터전과 유기적으로 공명하는 존재이자 농민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최근 유전자변형 농수산물(GMO)과 종자주권 등의 이유로 이미 많이 주목받은 토종종자가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역 풍토에 맞는 다양성 확보를 통해 병해충 및 환경변화에서 생존율이 뛰어난 토종농작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함양군은 농업이 주요 생산기반인 지역으로 농업계획이 중요하다. 경상남도를 통해 함양군도 토종농산물 소득보전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저변확대에 한계가 있다. 농업 문화유산인 토종종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만든 토종종자 생태계를 알아보고 함양농업의 미래를 고민해본다.[기자말] |
홍성에서 시작된 토종씨앗 움직임
전국 최초의 지역신문, <홍성신문> 창간을 이끌어낸 홍성군. 홍동면은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로 협동조합과 유기농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활동가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홍성군 홍동면에는 움직임의 원동력으로 불리는 1958년 개교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아래 풀무학교)가 있다.
"여기는 소농을 키우는 학교고요. 철 따라 농사짓는 농부를 목표로 해요. 더 나아가서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을 가르쳐요. 농업을 매개로 삶의 태도를 배우는 그런 학교예요."
풀무학교의 오도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집에서 짓는 농사를 도우며 지냈다.
"어려서부터 소농이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이 지내던 증조할머니께서 씨앗을 다 받았어요. 볏짚으로 짠 멍석 위에 면 보자기에 싼 씨앗을 놓고 뭘 덮으셨어요. 키질도 하고 채도 치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도 제가 일하는 이곳 풀무학교를 나왔어요."
2003년 풀무학교 전공부 교사 일을 시작한 오도 선생님은 농사일을 돕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어릴 적 경험한 농사일과 일본 게이센 원예대학 원예전공으로 공부를 했을 때 경험한 텃밭정원(vegetable garden)을 기반 삼아 풀무학교 학생들과 자투리 땅 농사를 시작했다.
이때의 노하우를 담아 책 <텃밭정원 가이드북>을 냈다. 퍼머컬쳐의 개념도 흔하지 않던 시기에 혼작을 제안한 것이 요즘 퍼머컬쳐의 인기와 함께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오도 선생님은 "처음 풀무학교로 돌아온 20년 전 이때 이상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봤던 씨앗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색깔이 달라요. 살충제에 담그기도 하고 벌레 먹지 말라고 염색을 하기도 하고요. 70, 80대 어른은 눈이 안 좋으시니까 눈에 잘 보이라고 염색하기도 하고. 이건 완두콩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래요. 학생들도 놀라죠. 먹는 완두콩은 초록색인데 심는 완두콩은 색이 왜 이러냐고 질문하는데 대답할 수 없었어요."
다양한 가치를 유기농업을 통해 실천하는 풀무학교에 자부심이 있었던 오도 선생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살충제를 씨앗에 묻힌 후 염색액에 굴린 이 씨앗을 심는다면 아무리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소용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을 의심하는 일은 우리 농업에 없던 전통이다. 수많은 농민의 손을 거쳐 온 토종씨앗이 기본이던 사회가 끝나자 우리 현대인들은 씨앗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고의 혼수가 아기라는 씁쓸한 이야기 전에는 가전제품과 집이 있었고 다양한 예물 이전에 그 자리는 반듯한 양단이 차지했다. 씨앗은 그 이전의 이야기다. 고향을 떠나면서 남은 평생을 고향의 이름, 택호로 불릴 우리나라 딸들은 고향의 씨앗을 혼수로 가져갔다. 지금은 80대가 넘은 할머니들이다. 이들은 농민의 고질병인 관절통을 겪으면서도 매년 씨앗을 심고 수확하는 일을 반복했다. 매년 "안 한다"지만 작은 텃밭에 심기는 토종씨앗은 습관, 관습이고 어쩌면 나고 자란 고향과의 정서적 이음이다.
씨앗을 의심하면서 알게된 건 GMO(유전자변형 농수산물)의 위험성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씨앗받는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씨앗을 받으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방법을 기록한 책이 없는 거예요. 고민을 하다 일본에 계신 선생님에게 책을 한 권 받았어요. 일본어 번역된 호주 시드 세이버스 단체의 책을 받고서 씨앗 받는 방법을 공부하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나라에 책이 없으니까 내용을 정리해서 학교 교과서로도 만들고 마을 사람들에게 공유도 하면서 책을 만들게 됐어요."
우리나라에 없던 씨앗 받는 농사 가이드북. 오도 선생님은 농사를 하면서 다양한 작물의 형태를 면밀히 기록해서 그 결과물을 책 <씨앗 받는 농사 매뉴얼>로 정리해 세상에 내놨다.
씨앗 받는 농사
"저는 처음에 토종씨앗이 중요하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농사를 짓다보니 토종만 중요한 건 아니더라고요. 토종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먹는 채소들도 토종이 되기도 해요."
토종 토마토가 있다. '토종'과 '토마토'는 같이 '토'로 시작하는 것 말고는 잘 어울리는 구석이 없다. 토마토를 보면 원 이름인 '토마토(Tomato)'가 너무 쉽게 연상이 돼버려서 '토종'과는 다른 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먹는 작물 대부분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지역에서 유입됐다. '양(洋)'으로 시작하는 작물인 '양파'와 '양배추'를 포함해 고추, 마늘도 유입 작물이다. 문익점 선생의 목화씨 이야기만 하더라도 외부의 씨앗을 들여온 사례다.
오도 선생님은 "풀무학교 내 텃밭에서도 브로콜리, 콜라비 등 프랑스 유기 종자를 구입해 채종하고 있다"며 "토종 이외의 채소더라도 많이 먹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재배한다"고 말했다.
토종의 개념은 새롭게 농업에 나타난 GMO, 터미네이터 씨앗(Terminator seed), F1 종자 등 유전자변형 농수산물과 전통적으로 전승되는 우리 씨앗을 구분하기 위해 제시됐다. 때문에 토종의 기준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어떤 곳은 최소 30년은 이 땅에서 지낸 씨앗을 기준으로 삼기도 하고 학자들의 정의에 따라 20년을 말하기도, 50년을 말하기도 한다.
토종을 정의하고 그 특성을 보존하는 것과 씨앗 받는 농사를 하는 건 미묘하게 다르다. 전자는 토종을 발굴하고 그 고유한 특성이 훼손(교잡)되지 않게 노력해야 하지만 후자는 매년 작물의 미묘한 변화를 만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이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인의 식생활에 맞춰 소비되는 작물을 심고 매년 씨앗을 받는 농사 역시 이 땅과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토종을 만들어가는 활동인 만큼 매우 중요하다. 농업을 농부와 땅이 계속해서 관계를 맺어가는 것으로 본다면, 토종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씨앗을 받고 내년에 다시 심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풀무학교 농사는 자급이 우선이에요. 인원이 1년 동안 먹을 양을 먼저 정하고요. 나머지는 팔아서 소득으로 이어지는 계획을 세워서 밭을 분배하는 등 영농계획을 세우다 보면 토종도 심고 다른 유기 씨앗도 심는 거죠."
홍성씨앗도서관의 탄생
씨앗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져갔다. 오도 선생님은 "알게 된 이상 내 식탁에 올라오는 먹거리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품종을 조화롭게 기르는 텃밭정원 공부는 씨앗 받는 농사 공부로 이어졌고 이후 씨앗 공부로 이어졌다.
"씨앗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2011년부터 동네 사람들하고 모임을 했어요. 씨앗이 왜 중요한지, 씨앗 받는 농사가 왜 중요한지."
공부를 지속하며 종자은행 견학도 다녀오는 등 활동을 이어갔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2014년 4월부터 대산농촌문화재단의 농업 연구 사업에 신청해서 씨앗도서관을 만드는 준비를 시작했다. 홍성군 홍동면 구석구석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면서 씨앗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동네 어른들이 키우는 채소, 이 지역에서 자란 걸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9월에 씨앗 마실이라는 이름으로 동네 할머니들을 만났어요. 9월부터 12월까지 한 70여 종을 수집했어요. 그렇게 씨앗을 모아서 2015년 2월 28일 홍성씨앗도서관을 개관했어요."
처음엔 종자은행의 개념으로 만들 예정이었으나 씨앗도서관의 형태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다.
"종자은행에서 종자를 받으려고 하면 공문을 보내 절차를 거쳐 받을 수 있어요. 학교에서 그렇게 받았는데 발아율이 50%도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받기 어렵고 발아율이 떨어지는 형태라면 저희가 고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종자은행은 매년 새로 씨앗을 받지 않고 영하 18℃ 이하 냉동고에 보관하는 형태다. 필요한 것을 선별해서 채종을 거치지만 일부다. 그에 비해 씨앗도서관은 일반 농민의 접근도 쉽고 매년 채종이 기본이다.
"씨앗은 그 시대에 그 기후에 맞게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어렸을 때는 눈이 무릎 높이까지 왔어요. 지금은 발목까지도 잘 안 와요. 무릎까지 눈 오던 시기의 씨앗을 갑자기 꺼내서 지금 심으면 이 기후에 적응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거죠. 어
어쨌든 씨앗도 수명이라는 게 있는데 보관 중심의 운영은 어렵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대기업이나 연구소는 조직배양 등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살려내겠지만 그게 일반 농부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농부들한테 진짜 필요한 거는 계속 받아온 씨앗이에요."
홍성 씨앗도서관 탄생에 대한 내용은 책 <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토종 씨앗은 1년만 지나도 없어진다. 지금 우리는 토종 씨앗이 매년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기록과 수집이 정말 중요하다.
오도 선생님이 풀무학교 전공부 교사로 근무한 한지 벌써 20년이 됐다. 오도 선생님의 활동은 모두 기록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책 <텃밭정원 가이드북> <씨앗 받는 농사 매뉴얼> <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까지. 이 기록은 오도 선생님의 당시를 살아가며 든 고민을 철저한 기록을 통해 풀어낸 결과다. 실제로 선생님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실습 일지를 쓴다. 이런 기록들이 모여 우리에게 방향이 될 것을 생각하면 한 줄기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