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n포 세대라 불리던 90년대생의 '0원으로 간 호주' https://omn.kr/29a15)에서 이어집니다.
호주에 가고 싶은 열망은 컸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다문화 사회, 일과 삶의 조화, 지속가능성 등 중요한 가치들을 직접 보고 싶었으나, 높은 물가와 여행 경비는 큰 부담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서른 살에 첫 취업을 해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데다, 작년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
호주의 높은 물가를 고려하면 약 2주간의 여행 경비로는 최소 5백만 원에서 6백만 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무 살에 여권을 처음 만들어 해외로 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었던 나는 '카우치 서핑'이라는 서비스 덕분에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숙박을 공짜로 해결했다.
이 서비스에 등록한 현지인은 여행자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고 둘은 함께 지내면서 문화 교류하는 것이 목적인데, 덕분에 숙박비 절감은 물론 혼자 떠난 여행에서 현지인 친구들도 많이 만들었다.
8년 전 학비 3천만 원이 없어 스웨덴 유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장학금 기회를 따내기 위해 유학 박람회나 스웨덴 대사관 행사는 모두 찾아다니고, 관심 있는 학교에 적극적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하늘에 내 뜻이 닿은 걸까? 감사히도 3천만 원의 학비를 면제받고 스웨덴 대학원 유학도 다녀왔다.
온전히 내 힘으로 해외에 나가고자 노력하면서 배운 것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정말 무모해 보일지라도, 고군분투하다 보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은인을 만난다.
그래서 이번에도 길을 만들기 위해 뜻을 먼저 품었다. 막연히 호주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거짓말처럼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호주에 갈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만났다. 호주 친구로부터 호주 정부가 매년 호주와 한국 간의 관계를 증진하는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호주 정부에서는 매년 호주와 한국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금전적으로 지원해. 대학이나 언론사 등 기관 프로젝트가 많지만, 작년엔 호주 내 한인 2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개인 유튜브 프로젝트도 지원받았어!'
뽑힐지 안 뽑힐지는 모르지만, 일단 도전해 볼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소식이었다.
경력 활용해 한 달에 걸쳐 쓴 프로젝트 제안서
펀딩을 지급하는 호한재단(Australia-Korea Foundation)은 호주와 한국 양국 교류 증진을 위해 1992년 호주 정부에서 설립한 단체다. 이 재단은 매년 호주 외교부의 예산을 받아 양국의 교류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금전적인 지원을 해준다.
프로젝트 기획에 앞서 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난 프로젝트를 철저히 조사했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바탕으로 한국에 호주를 알리고 궁극적으로 양국의 인적 교류를 늘리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카카오브런치 글쓰기와 출판 경력을 활용해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Australia Through Korean Eyes)'라는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내 제안서의 핵심은 '온라인에 글을 쓰는 개인'으로서의 파급력이었다. 지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호주와 한국 기업이나 기관이 주최한 인적 교류 이벤트로 오프라인 워크숍이나 미팅 또는 연구 프로젝트였다.
문화 예술 교류를 포함해 다문화, 성평등, 언론 자유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 결과물이 나왔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행사와 그 결과물이 일반 대중에게는 전달되지 않고 주최 기관의 보고서나 페이스북 포스팅 형태로만 소비되고 말았다.
사실 개인으로서는 진행하기 어려워 보이는 프로젝트의 규모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일개 개인으로서 정부나 기관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게 나의 차별화 포인트라 생각했다.
그리고 호주에 대한 국내 인지도를 높이고 다양한 분야의 인적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대중을 독자로 한 호주 콘텐츠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반 대중들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진짜 호주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공유될 수 있다.'
준비과정에서 문득 스웨덴 유학 시절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2016년 스웨덴 유학을 하러 가자마자 브런치를 통해 북유럽의 지속가능성, 평등, 교육,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글이 몇 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공유되면서 수백만의 독자들과 연결되고 출판까지 할 수 있었다.
내 콘텐츠의 차별점은 한국인으로서 바라본 스웨덴 사회였는데, 우리가 마주한 사회 문제나 삶의 고민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스웨덴 경험담을 나누다 보니 많은 분이 공감해 주셨다.
그 경험을 살려, 호주에서도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 우리 가족의 희망을 심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한 달에 걸쳐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Australia Through Korean Eyes)'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결국 작년 말 성공적으로 9백만 원 정도의 펀딩을 받아, 지난 5월 말에 정말 '0원'으로 호주에 다녀왔다.
여전히 기회의 땅인 호주
5월 19일~6월 2일, 그 2주간 호주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한인 유학생 및 예술가, 한국인과 호주인 그 경계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재외동포,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왔다가 영주권을 준비하는 청년, 한국과 호주를 연결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호주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과 호주 사이의 다리를 놓고 호주에서 제2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여행 끝에 나는 호주가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의 땅'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가 차원에서는 다문화, 저출산, 낮은 삶의 만족도 등 우리가 마주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 개인 차원에서는 글로벌 커리어뿐만 아니라 각자가 그리는 삶의 행복을 쟁취해 나갈 수 있는 곳.
나는 앞으로 독자들과 함께 내가 호주에서 발견한 숨겨진 기회와 희망에 관해 얘기 나누고자한다.
-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enerdoheezer)에 최근 게재된 글을 보완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