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초, 무주산골영화제를 위해 대전에 잠시 들르게 됐다. 직통 차편을 구하지 못해 대전을 거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마침 시간도 남겠다 평소 가고팠던 장소에 들렀다. 몇 번 찾았으나 번번이 헛걸음이 됐던 '바베트의 만찬'이었다.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지역 서점이며 특색 있는 가게를 찾길 즐기는 내게 '바베트의 만찬'은 꼭 한 번 찾을 장소를 꼽아둔 리스트에 들어 있는 가게였다. 마침 이날은 문을 열고 있었고, 나는 가게에 무거운 짐을 놓아두고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다. 허락된 두어 시간 만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얇은 책, 카페 겸 서점으로 운영되는 이 가게에서 꺼내 읽을 수 있었던 얇은 소설이었다.
읽은 책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기대치 않은 진한 감상을 남기고 갔다. 책을 읽고 벌써 보름여가 지난 지금까지 그 감상이 생생히 떠오를 만큼.
'바베트의 만찬'이란 이름을 내건 이 가게에서의 경험이 내게는 완전하여서, 나는 무거운 등짐에다 책 한 권을 보태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볼 때마다 여기서 맛본 감동이 떠오르리란 기대였다. 가게에서 파는 여러 권의 책 가운데 카페 이름과 같은 책 <바베트의 만찬>이 눈에 들었다.
어느 독립서점서 가져온 책 한 권
주인장에게 책의 제목을 가게 상호로 딴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그가 내게 이 책과 그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보고 나면 알리라고 하였다.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무주산골영화제 기간 동안 나는 이 단편집을 완독하였다. 매일 아침 여섯시부터 일곱시까지, 무주군청 앞 잔디밭을 거닐며 실린 소설 하나하나를 읽어 내렸다. 몇 번이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특히 표제작 <바베트의 만찬>은, 그 결말부는 그야말로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예술을 하는, 적어도 애호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이가 나와 같은 감상을 얻으리라고 확신한다.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의 작은 마을 베를레보그가 소설의 배경이 된다. 한국에서 평생을 살며 한 차례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아마도 내 일생동안 잊지 못할 자국을 남겼단 게 글을 쓰는 지금도 신기하기만 하다.
베를레보그에 목사 한 명이 있었다. 개신교 루터파 목사로, 그가 일으킨 교파는 훗날 노르웨이 전역에 꽤나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그가 죽고 한참 지난 뒤의 일이고, 소설이 다루는 건 그 이전의 얘기다.
목사에겐 두 딸이 있었는데, 마르티네와 필리파가 되겠다. 이들은 제 이름을 따온 마르틴 루터와 그의 친구 필리프 멜란히톤만큼이나 신실하고 검소한 청교도적 삶을 살아간다. 아버지인 목사가 살아있을 때는 물론, 그 뒤까지도 말이다. 소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마르티네와 필리파의 젊은 시절을, 그녀들을 사모했던 매력적인 남자들을, 그네들이 끝내 이뤄지지 못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펼쳐낸다.
가장 완전한 단편소설을 한 편 꼽자면
<바베트의 만찬>의 매력은 결말부에 이르러 전해지는 감격이다. 마르티네와 필리파, 그녀들을 거쳐간 어느 사내가 수십 년이 흘러 한 자리에 모이고, 이 자리에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특별한 감상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빚어지는 것이다. 극중 인물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을 독자가 알게 되며 빚어지는 코미디가 이 소설이 끝내 도달하려는 목표점까지 경쾌하게 내달리도록 한다.
본명이 카렌 블릭센인 덴마크 출신 작가 이자크 디네센이다. 자전적 작품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도 유명한 그녀는, 평생의 자기 삶을 통해 얻은 지혜와 자세를 이 책에 녹여내었다.
소설엔 모든 것을 잃고 노르웨이 벽지 시골마을로 건너온 여자인 '바베트'가 등장한다. 어느 모로 봐도 쇠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이 마을엔 마르티네와 필리파가, 아버지가 이룩한 교파와 삶의 자세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매의 집에서 집안일을 담당하던 바베트가 어느 중요한 날 12인분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이, 또 덕분에 마련된 만찬자리가 소설의 핵을 이룬다.
흥미로운 건 만찬비용을 마르티네와 필리파가 아닌 바베트가 댄다는 점이다. 둘에게 청해 얻은 권한으로 바베트는 제 모든 재산을 털어 넣어 한 끼 식사를 준비한다. 전 재산과 한 끼 식사의 교환,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이 거래가 마침내 설득력을 얻는 순간의 감동이 이자크 디네센이 소설 가운데 구현하려 한 것이다.
작가인 이자크 디네센(필명)의 삶을 떠올린다. 남편이 수없이 바람을 피고, 당대 의학으론 불치에 가까웠던 매독을 작가인 그녀에게도 옮겼다고 알려져 있다(후에 이혼한다). 커피농장은 기울어가다 마침내 망해버리고, 사냥꾼이었던 그녀의 애인까지 경비행기 사고로 죽어버린다. 마음 붙인 모든 것이 상처를 주고 마침내는 사라져 간다. 한없이 불행한 일생일 수도 있는 것을, 이자크 디네센은 그냥 놓아두지 않은 것이다.
파리에서 얻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바베트, 다시 제게 그 전까지 아무 의미도 없었던 벽지 시골동네로 흘러 들어와 전 재산을 한꺼번에 털어 넣어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마침내 독자를 설득해내고 만다. 그건 이자크 디네센의 삶이 없었다면, 그 삶으로부터 길어낸 예술혼이 없었다면 감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선명히 남은 채찍자국... 이야기꾼들은 멸종하지 않았다
책 말미엔 1959년 이자크 디네센이 미국에 초청을 받아 갔을 당시 청중에게 저를 소개한 말이 적혀 있다.
"까마득히 오랜 역사를 지닌 한 종족이 있습니다. 나는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그 종족의 후예로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한량인 이 종족은 현실세계에 발붙이고 열심히 사는 정직한 사람들 틈에 앉아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또하나의 세계를 지어냅니다." -247p
희망적인 건 이야기를 전하는 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제 삶 전체를 재료 삼아 세상과 통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빚어내는 일이 여전히 유효하다 믿는 이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중 하나다.
모든 걸 잃고 타국으로 흘러온 주방장 바베트, 제가 가진 모든 걸 하루아침에 태우고 난 그녀가, 그러나 조금도 비루해보이지 않다.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라니까요." -53p
그 말에 실린 자긍심이 어찌나 컸던지, 그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등판에 '쩌억-' 한 줄기 채찍자국이 남은 듯도 하였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