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된 지 벌써 900일이 넘었다. 정리해고의 근거로 사용되었던 코로나19의 위기도 사라지고 관광객이 넘쳐나지만, 경영자는 복직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명동역 10번 출구에 농성장이 있고 연대자들이 온다. 왜 싸우고 연대하는지, 왜 복직을 해야 하는지 세종호텔 정리해고에 얽힌 문제들을 연재로 드러내고자 한다.[기자말] |
서울역 인근 관광레저산업노조 사무실에서 작은 영화상영회가 열렸다. 영화는 전 이사장 주명건에 맞서 세종대를 지키려 했던 학생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주님의 학교>, 관객은 세종호텔 해고자들과 연대자, 그리고 세종대 졸업생들이었다. 우리는 같은 상대를 향해 싸우는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용기가 되고자 했다.
영화가 끝나고 사회자가 내게 물었다.
"왜 계속 주명건과 싸우나요?"
그러고 보니 2009년 세종대 학보사 기자로 주명건 복귀의 문제점을 기사로 썼던 나는 2011년에는 총학생회 간부로 주명건 복귀 반대 시위를 하다 학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리고 2024년 명동 세종호텔 앞 농성장에서, 세종대 앞 집회에서 세종호텔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또다시 주명건과 싸우고 있다. 2009년에 외친 그 이름을 아직도 외칠 줄이야!
주명건이 돌아오고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갔다
한때 세종대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군자동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30여 년간 비리사학이라는 오명 속에서 높은 등록금에 부족한 강의실, 변변한 학생회관과 기숙사도 없는 대학을 다녀야 했던 학생들의 탄식의 표현이었다.
그런 세종대가 2004년 교육부 감사를 통해 재단 이사진이 물러나자 변하기 시작했다. 학생, 교수, 직원, 동문 4주체의 참여를 통해 총장이 임명되었고 부당하게 해직됐던 교수들이 복직했다. 등록금 책정에서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되고 기숙사, 학생회관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최하위권에 머무르던 교직원들의 임금도 인상되고, 모든 분야에서 구성원들의 권리가 신장됐다. 학생들 사이에 돌던 그 탄식의 말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2010년 전후의 이명박 정부시절, 조선대, 상지대, 광운대 등 쫓겨났던 비리재단들이 하나둘씩 대학으로 복귀했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구성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그 길을 터줬다. 정상화가 지연되던 세종대도 2009년 3기 임시이사가 구성되더니, 결국 구 재단이 복귀했다. 전 이사장이던 주명건은 2010년 명예이사장이라는 직책으로 5년 만에 세종대에 복귀했다.
세종대는 완전히 이전으로 돌아갔다. 2006년에 입학한 나는 주명건이 물러난 이후의 세종대와 복귀한 세종대를 그대로 경험했다.
대학 구성원들의 추천으로 총장을 선출했던 전례를 무시하고 내정자가 총장으로 취임하며 주요 보직을 변경했고, 노골적인 학생회 탄압으로 이어진다. 2009년 가을, 총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대학은 1980년대 만들어져 한 번도 적용되지 않은 후보자 자격 규정을 제시하며 선거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영화 <주님의 학교>에서는 2011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조교의 지시로 선거를 방해했었다는 학생의 인터뷰도 등장한다. 대학본부는 주명건 복귀 천막농성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징계 운운하며 협박을 하거나, 총학생회장이 여름농활을 떠난 사이 부친을 찾아가 졸업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5월 20일 있었던 창립기념일에 주명건 반대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학생회 간부는 업무방해, 건조물 침입으로 경찰에 고발을 당했다. 이처럼 반대하는 교수와 직원, 학생들을 각종 혐의로 고소 고발해 2년 사이 학교에서 진행된 소송만 20여 건이 됐다.
임기가 한참 남은 학내 언론사 주간교수를 교체하고 학보사, 방송국, 영자신문사를 통합하는 규정을 개정하여 언론사 기자들을 통제하고 검열을 강화했다.
특히 주명건 퇴진 이후 변화한 대학의 상징으로 세종대는 한글을 형상화한 스퀘어UI로 학교 마크를 새롭게 만들었는데, 이 마크가 주명건 복귀와 동시에 사라졌다. 대신 주명건 전 이사장의 이름으로 특허 등록되어있던 기존의 UI가 다시 나타났다. 건물에 있는 간판 교체는 물론 교수들의 수첩까지 수거하고 새로운 마크가 찍힌 수첩을 나눠줬고, 교직원들 옷에 붙은 마크를 박음질해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등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세종대와 똑같은 상황의 세종호텔
비슷한 시기 세종대 법인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세종호텔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주명건은 세종대 복귀에 앞서 세종호텔을 운영하는 세종투자개발 회장으로 취임했다. 대표이사로는 주명건과 함께 물러났던 전 대양학원 사무총장 최승구가 선임됐다.
나타나는 현상도 비슷했다. 세종대에선 학생, 교수, 직원, 동문들 사이에서 분열이 생겨났다. 구성원들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조직이 등장하여 주명건 측 목소리를 대변했다. 주명건 측근으로 알려진 교수의 연구실 대학원생이 주도하는 모임이 등장해 총학생회의 주명건 반대 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일부 학과 학생들은 교수와 조교의 지시를 받고 학생들의 시위를 막으러 오기도 했다.
세종호텔에서도 복수노조가 생기고 간부급 조합원들이 노조 탈퇴와 어용노조와 다를 바 없는 새노조 가입을 강요하면서 노동자들끼리 갈등이 생겼다. 2012년에는 파업에 참여하는 노조 조합원들을 다른 노조 조합원들이 끌어내며 서로 싸우기도 했다.
외주화, 상업화 추진으로 피해 보는 건 결국 구성원들이었다. 세종대에서는 학생들과 생협, 대학 3자가 학생회관 계획을 함께 추진하고 완성했으나, 2009년 계획이 전면 수정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던 휴게실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로, 컴퓨터실은 유료 PC방으로 변경되는 등 복지와 자치의 공간이어야 할 학생회관이 '특급상권'으로 신문광고에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등록금의 또 다른 형태인 공간대여료, 물품사용료들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학교 건물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장사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강의실, 연구실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게 되었다.
세종호텔은 부서 하나씩 외주화로 돌리며 청소, 유지보수 등 원래 호텔 정규직 노동자가 하던 일들을 하청 노동자가 담당하게 했다. 월급은 동결되고, 정규직 전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강제전환 배치가 이뤄지는 등 노동조건은 열악해져 갔다. 10년 사이에 정규직 직원이 10%밖에 남지 않았다. 호텔 경영이 어려워져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자회사들은 점점 많아지고 커졌다. 자회사나 용역회사들은 주명건의 측근이 운영하거나 이사로 참여하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사라졌다
세종대 생협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견학을 올 정도로 모범사례로 꼽혔지만 주명건 복귀 후 명도소송까지 거쳐 퇴출됐다. 대학 상업화의 과정이기도 했지만, 본질은 학생들이 조합원으로 운영에 참여하는 민주적 시스템에 있었다. 생협은 물가인상으로 자판기 콜라 가격을 올리는 것도 학생들의 의사를 묻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해왔다. 학생자치기구와 언론사가 탄압받고 위축되었듯이, 주명건이 복귀한 세종대에 생협은 어울리지 않는 조직이었다.
코로나19로 호텔산업이 어려워진 가운데 세종호텔은 민주노조 조합원들만 해고했다.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경영진에 대항해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던 이들만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호텔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딱 한 번 신청했을 뿐 자산매각이나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끝나고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식음사업장을 재개하지 않고 해고한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호텔 안에 노동자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교수님 이름은 몰라도 주명건 이사장 이름을 모르는 학생들은 없었던 세종대에 이제 그 이름을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학교가 그렇게 변해가는 동안 2013년 이사로 복귀했던 주명건은 교육부 감사를 통해 2021년 또 한 번 이사에서 해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명건과 그의 자녀들은 대학의 수익용 재산 관련한 회사에 이사로 이름을 올렸고, 2024년 2월 마침내 아들 주대성이 대양학원의 이사로 취임했다. (2023년 12월 서울고법은 유명환 전 장관과 주명건 전 이사장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처분 사유는 정당하지만, 시정 요구 없이 처분해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편집자 주)
우리 몫까지 싸우는 세종호텔 해고자들
주영하-주명건-주대성 이른바 3대 세습을 완성하고 견고한 그들만의 성곽을 쌓은 세종대와 대양학원 재단에 유일한 틈이 있다면 그것은 세종호텔 해고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복직투쟁과 더불어 세종대와 세종호텔이 가진 근본 문제를 건드린다. 주명건의 아들 주대성의 이사선임을 반대하고, 주명건의 이사 복귀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세종호텔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은 본인들의 생존권 투쟁이기도 하지만, 세종대 재단의 민주화 투쟁이기도 하다. 노동문제이면서 사학문제이기도 한 셈이다.
"우리 몫까지 싸워주고 있다."
세종호텔 투쟁을 보며 한 졸업생이 내게 말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담긴 표현이었다. 오랜 비리사학의 오명 속에서, 열악한 대학 환경 아래에서, 민주적이고 자긍심 넘치는 모교를 갖고자 했던 많은 졸업생들이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복직을 바라고, 승리를 응원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온몸을 부딪쳐 싸우고 있다. 대학 구성원들이 싸워야 할 몫에, 동문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변화시켜야 할 몫까지 더해가며 싸우고 있으니. 필자도 한 사람의 세종대학교 졸업생으로서, 세종대가 위치한 광진구의 지역 주민으로서, 더 간절하게 그들의 복직을 바란다. 더 힘차게 함께 2009년에 외친 그 이름을 2024년에도 함께 외치며 싸우자고!
덧붙이는 글 | 이나리님은 정의당 광진구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