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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 채식과 복싱을 시작했다.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이 두 가지가 나의 관심사. 생활 챔피언의 먹고 사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기자말]
 자주 요리하는 채식 대체육과 채식 카레 밥상
 자주 요리하는 채식 대체육과 채식 카레 밥상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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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해?"

채식인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단백질은 고기로만 섭취할 수 있다는 편견이 만들어낸 질문이다. 서른 해를 육식 세계에 갇혀 살았기에 채식 2년 차 정도까지는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두부와 두유로 대체한다'라고 대답했지만, 내 목소리는 페이드아웃 효과가 자동으로 덧입혀져 기어가는 듯했다.

전에는 관심 없던 영양 자료도 찾아보고 건강 도서도 읽기 시작했다. 어느새 채식 6년 차, 이제는 누구보다 자신 있게 대답한다. "단백질 섭취는 현미밥과 두부로 충분합니다." 전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데도 듣는 이의 반응은 시답잖다. 고개는 끄덕거리지만 대화의 공기가 영 찜찜하다.

묻고 따지고 싶지만... 속앓이하며 참아낸 이유

얼마 전 비건(완전 채식) 교사들이 쓴 책 <학교에 비거니즘을>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비건을 지향하는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채식하면서 겪은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채식하는 이들의 건강을 걱정한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채식인이 어디라도 아프면 진귀한 현상이 펼쳐진다. 주변인들이 갑자기 '채식 때문 아니냐'라고 진단하는 의사로 변한다. 솔직히 속상할 때가 많았다. 되묻고 따지고 싶기도 했다. 채식 세계와 육식 세계에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놓인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때마다 속앓이하며 참아냈다. 참았던 이유는 대답의 태도나 내용이 채식을 향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까 초조했기 때문이다. 이 무슨 '채식 순교자' 같은 마음인가.

6년 차가 되면서 단백질을 비롯한 영양에 관한 질문과 대화는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이제는 전혀 속상하거나 짜증스럽지도 않다. 답답하지도 않다. 여유라는 마음의 근육이 생겼나 보다. 질문자의 의도를 간파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악플도 관심이다'라는 태도로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있다. 훗날 채식의 씨앗이 꽃피울 그날을 상상하며.

예상치 못하게 채식 세계와 육식 세계가 버무려지기도 한다. 비빔밥의 민족이기 때문일까. 집 주변 김밥집 사장님에게 메뉴판에 없는 김밥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햄, 계란, 맛살, 어묵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빼달라고 요청했다. 사장님은 "그럼 뭘 넣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멋쩍게 당근이나 오이를 더 넣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사장님은 처음 본 나의 건강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걱정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를 동정하거나 틀렸다고 규정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밥집 사장님이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메뉴판에 없는, 정말 한입에 넣기 힘들 정도로 통통한 슈퍼파워 야채김밥을 만들어주신다. 별다른 요청을 하지 않아도 신선한 당근과 오이를 듬뿍 넣어주시기 때문이다.

어느덧 채식김밥 주문에 익숙해진 사장님을 보며 귀찮게 한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사장님은 초기에 "고기 안 먹으면 힘을 어떻게 쓰냐?"는 질문도 거침없이 하셨다. 세 번 정도 질문하시고 그 이후로는 안 하셨다. 세 번의 질문을 한 뒤에서야 지난번 했던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몇 번만 더 질문해 주시지. 복싱으로 다져진 복근과 알통을 보여주려고 결심했는데 말이다.

외유내강, 친절하지만 강한 비건
 
 생활복싱대회
 생활복싱대회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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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을 제대로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되었다. 채식하는 복싱인이 된 것. 느낌 탓일까. 단백질을 어떻게 섭취하는지 궁금해하는 이가 더욱 늘었다. 조금 달라진 건 진심으로 물어보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나라도 궁금할 터. 상식적으로 복싱과 같은 격투기는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채식으로 가능한지 궁금한 것이다.

확실한 건 전보다 에너지 섭취량이 늘었다. 일반 음식점에서 주는 밥 한 공기로는 부족하다. 복싱을 시작하고 기초대사량이 늘었고 자연스레 밥양이 늘었다. 전보다 현미밥에 더 많은 잡곡을 섞는다. 검은콩과 귀리, 퀴노아를 섞는다. 보통 밥을 추가로 더 먹을 수 있는 식당을 가거나 마음껏 양조절을 할 수 있는 도시락을 싼다. 단순히 무엇을 섭취하는 게 좋은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지도 공부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공부 중이다. 복싱을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채식과 복싱. 두 개의 관심사만 들으면 혹자는 내가 건강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이로 오해할 수 있다. 물론 건강은 중요하지만 건강 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게 아니다. 동물권 때문에 채식을 시작했고, 체력을 올리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다. 그러나 복싱을 지속하는 첫 번째 이유가 건강은 아니다.

나는 복싱의 세계에 깃든 여러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 복싱에 미쳐있다. 채식과 복싱은 건강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건강 때문이라면 걷기나 헬스 정도로 만족했을 테다. 채식과 복싱의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깊은 세계다. 뭐랄까. 채식과 복싱의 세계를 바다로 비유한다면, 나는 아직 스노클링을 즐기는 수준이랄까. 심해의 영역이 궁금해진다.

이 연재를 통해 채식과 복싱의 세계에 빠진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가볍게 들려주고자 한다. 복싱 외에도 그동안 35년 생활체육인으로서 경험해 왔던 다양한 운동 이야기가 깜짝 등장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채식과 복싱은 분명한 비주류다. 사실보다는 태도에 주목한다. 채식과 복싱으로 나 자신을 성찰하고 달라진 눈으로 보는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고자 한다. 외유내강은 내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친절하지만 강한 비건이 되고 싶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근육과 글이 서로 닮아갔으면 좋겠다. 때론 힘 있게, 때론 유연하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채식#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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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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