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히삐요!'
꾀꼬리가 지저귄다.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노란빛이 예쁜 꾀꼬리 네 마리가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다니며 날아다닌다. 여기서 자리를 잡고 산란해 가족을 이루었나 보다. 꾀꼬리의 황홀한 노랑을 본 이들은 어렸을 때는 자주 봤는데 나이 들어서 처음 봤다며 신기해했다.
때까치는 난폭한 성격이라 까치계의 깡패라고 얼간이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가 말해줬는데 생기기는 귀여운 편이다. 비교적 머리가 크고 동그랗다. 덩치는 작지만 하는 짓은 맹금류 같다고 나귀도훈(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이 말하며 웃는다. 몸을 숨기지도 않고 나무 정상에 앉았다.
누구라도 새와 관련된 추억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꾀꼬리, 때까치, 파랑새, 멧비둘기 등 농성장 근처에 나오는 새마다 각자 엮인 이야기가 있어 덥고 습한 이 시간이 시원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흘려보내는 이 이야기들이 모두 금강을 지키는 힘이 되고 있다.
잠시 모습을 드러낸 벽화… 곧 다시 만나자
지난 15일 저녁 6시부터 대청호 조정지댐 방류량이 기존 초당 1900톤에서 초당 500톤으로 변경됐다. 그런데 '500톤 추가 방류'한다고 재난 안전 문자가 왔다. 곧 정정문자가 왔지만, 그라운드 골프장의 대장할아버지는 문자를 받고는 걱정돼서 저녁에 골프장으로 오셨다. 방류량을 늘렸으니 다시 침수될 수 있다고 걱정이 되신 모양이다.
나귀도훈이 홍수통제소 홈페이지를 열어 보여주면서 대장할아버지께 설명하고 대청댐 운영팀 전화번호도 알려드렸다. 지금 강 수위에서 방류량을 늘리는지, 줄이는지는 중요하지만 정정문자를 보면 내부에서도 얼마나, 어떻게 방류되는지 소통이 안되는 건가 싶다. 이러면서 보의 탄력 운영을 자신하는 환경부. 보를 청기백기 올리고 내리는 것 쯤으로 생각하는 건지 걱정스럽다.
방류량을 줄이니 16일 아침에는 물에 가라앉았던 벽화가 드러났다. 녹색 천막의 땅도 드러났다. 비가 온다고 하니, 다시 잠기겠지만 잠시여도 반갑다. 환경부가 언제 수문을 닫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장마로 수문 사이에 자갈과 펄이 어지간히 쌓였을 것이다. 30억 원을 들여 정비했는데, 수문 한번 올리지 못하고 또다시 정비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매년 반복되는 복구… 강의 시설물 최소화 해야
그라운드 골프장 옆으로 거대한 나무계단 두 뭉텅이가 떨어져 나가있다. 골프장 내려가는 계단인데 작년 여름 비에 쓸려갔단다. 골프장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계단 없이 30도 정도 되는 사면을 조심스레 오르내리신다. 올해도 물이 들어찼으니 이건 언제 복구가 될 지 알 수 없다. 금강스포츠공원 입구에는 올해 말 착공한다는 현수막조차 비바람에 찢겨나가 차의 통행을 가로 막고 있다. 여기에 뭘 한다는 것 자체가 곧 예산 낭비다.
대전시는 갑천변에 어린이 물놀이장을 만들겠다고 한다. 비가 지나가고 지금 펄밭이 돼서 발도 딛지 못하는데 말이다. 비가 15일 이상 내리고 있고 앞으로도 15일 이상 더 비가 온다. 기본적으로 비가 오면 이용할 수 없는 시설이고, 비가 지나가면 물에 잠기는 시설이다. 158억 원을 들여, 반복적으로 복구 예산이 들어가는 시설을 짓는 것은 지자체장의 욕심일 뿐이다. 임기 내 뭐라도 해보겠다는 심산이겠지만 틀렸다.
세종시가 비단강 금빛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제시한 '오리배 꿈'도 똑같다. 하천에 물을 채우고 시설을 더 하면 자기가 더 선택받을 것이고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는 착각, 하천에 아무 것도 살지 않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욕심. 결국 흐름이 막혀 죽은 강을 만들고 본인도 4년짜리 임시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천막이다."
물이 한 번 지나간 뒤 원래 천막농성장이 있던 자리 하류에 걸려있는 녹색천막을 발견했다. 천막은 뜯겨나가고 골조만 남았지만 반갑다. 벽화와 살짝 얼굴을 내민 하중도까지 원래 우리가 있던 곳이 그대로인 게 기쁘다. 더 반가운 것은 조그맣게 드러난 천막의 땅에 찾아온 할미새다. 아직 잊지 않고 여기를 찾는구나 싶었다.
62일 차에 둔치로 올라와 어느덧 80여 일을 맞는다. 거의 한 달을 이재민 생활을 하다 보니 예전에 보이던 그 풍경이 그립다. 돌탑이 쌓여있고, 웅덩이가 고여있고, 여울에서 들리던 자갈거리는 소리, 물수제비를 뜨던 때가 너무 오래전 같다. 다리 밑에 농성장을 찾은 이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
잠시 드러난 벽화 속 아이는 웃고 있다. 금강은 여전히 힘차게 흐르고 있다. 우리가 금강을 지키는 시간도 그만큼 흘렀다. 비를 피해 임시로 지내는 천막농성장에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꾀꼬리도 함께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