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2일 오후 5시 37분]
지난 1일 고용노동부 충주지청은 현장 근로감독 결과, 충북 음성군 대소면에 위치한 건국우유 공장의 사내하도급 업체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이것이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 미작성 ▲주휴수당 미지급 ▲임금명세서 미교부 등 노동법 상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지난 17일 오전, 방학으로 모처럼의 한산함을 만끽하던 건국대학교 상허문이 삽시간에 2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건국우유 공장 사내하도급 업체의 불법 파견 행태를 지적하고, 간접고용을 철폐하기 위해 건국대학교 학생들과 사회운동단체들이 모인 것이다.
이날 '건국우유 불법파견/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이 건국대학교 상허문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엔 음성노동인권센터, 음성민중연대 등 음성군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플랫폼C 등 간접고용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사회운동단체, 그리고 10여 명의 건국대학교 학생들이 함께 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심규원 건국우유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건국대지부 지부장)은 "공장 내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며 이번 불법파견 논란을 규탄했다. 이후 심 위원장이 "건국대학교는 건국우유의 불법파견/간접고용 철폐하라!", "건국대학교가 건국우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책임져라!"라고 구호를 외치자 참여자들도 힘차게 외치며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첫 번째 발언에 나선 박윤준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은 "최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에스코넬-아리셀 화재 참사 역시 간접고용과 불법 파견으로 점철된 불안정 노동의 현장이었다"며 "음성 지역 또한 지난 20년 간 직업소개소와 사내하도급 업체, 원청 간의 다단계 간접고용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지역"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박 상담실장은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건국우유는 본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고 건국대는 이사장 면담을 요청하였음에도 역시나 본인들과 관계가 없는 사안이라며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오늘 진짜 사장인 건국대학교가 이 사안에 대해서 책임지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모였다"라고 건국대학교의 책임을 강조했다.
건국대 학생 "노동자들의 눈물과 피로 일군 장학금은 거부"
건국대 학생들의 규탄 발언도 이어졌다. 이인진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건국대지부 부지부장은 "건국우유라고 하면 우리 학교가 운영하는 수익사업체 중하나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증언을 듣고 학교 측에 분명한 책임을 묻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이 착취 고리의 최종심급은 하도급업체도 직업소개소도 아닌 원청인 건국우유, 그리고 건국우유를 경영하는 건국대학교 법인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부지부장은 "대학에서 건국우유를 경영하며 발생한 수익금은 대학의 장학금으로 사용된다. 노동자들의 눈물과 피로 일군 장학금은 거부하겠다"라며 "우리 학교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어려움에 민중을 위한 공동체와 혁신의 정신으로 설립되었다. 우리 대학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건국대 학생인 김소연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건국대지부 회원은 "이번 사안을 마주하는 마음이 유독 더 분노스럽고 비통한 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만큼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신뢰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대학으로서의 공적 책임을 방기한 건국대학교 재단에 큰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고 규탄했다.
10개월 간 일하다 해고... "나라도 세상에 얘기해야"
이 자리엔 건국우유 공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10개월 동안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해 고용노동부에 현장 근로감독을 청원한 당사자인 A씨도 참석했다. A씨는"일용직으로 일하면서도 자부심을 가졌다. 갑자기 작업시간이 바뀌어 몸살이 나서 병원에서 링거를 맞아가며 일을 했는데 갑자기 '내일 아침부터 나오지 말라'고 통보를 받고 해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휴일도 없고 병가도 없다"며 "피해를 입으면서도 당장의 생계로 인해 노동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나라도 세상에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기자회견장까지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A씨는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이 모이고 특히 건국대 학생들까지 나서주니 기운이 생기고 용기가 난다. 다들 이렇게 연대해 주어 정말 감사하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발언이 끝난 후 건국대학교에 책임을 묻는 규탄 퍼포먼스가 있었다. 우유곽 모형을 들고 나온 건국대 학생들은 "건국우유의 수익금의 전액은 건국대학교 장학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는 건국대학교 학생으로서 노동자를 착취해 만들어지는, 이런 부정의한 성분표로 가득찬 우유를 팔아서 나온 장학금을 거부한다"며 '불법파견/간접고용', '다단계 하청/중간착취', '각종 노동권 침해'라는 문구가 적힌 성분표를 뜯어냈다.
뜯어낸 뒤 나타난 새로운 성분표에는 '불법파견 철폐! 간접고용 폐지!',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해당 문구들은 건국우유 공동행동이 현장에서 반드시 쟁취해 낼 요구들이다. 이 요구가 건국우유 공장에 온전히 반영될 수 있도록 공동행동과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퍼포먼스 이후 최종현 학생사회주의자연대 회원과 위대현 교수노조 대외협력실장의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음성 지역 내 노동시민사회단체 또한 이달 내로 건국우유 공동행동의 활동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지역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지역과 음성지역의 연대,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로 이루어진 건국우유 공동행동은 노동자 직접고용과 노동법상 권리 보장을 위해 계속 투쟁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건국우유 측은 22일 <오마이뉴스>에 보낸 입장문에서 "건국우유는 불법파견을 한 사실이 없으며, 음성소재 하도급 업체의 불법 파견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A씨는 건국우유에서 근무하다가 일방적인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A씨는 건국우유가 아닌 하도급업체 직원"이라며 "건국우유와는 전혀 무관한 근로자"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건국우유에서는 A씨는 물론 그 어떤 근로자도 착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박성우 기자는 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