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손톱이 길었다. 엊그제 깎은 것 같은데 주먹을 쥘 때마다 손바닥에 지압효과가 생긴다. 날을 세어 보니 어느새 2주가 흘렀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사실을 이럴 때마다 자각한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순식간에 흘러 있는 시간에 매번 놀란다.
내 손톱을 깎는 날은 아이들의 손톱도 깎는 날이다. 아이들 손톱 깎기를 하루 미루면 어째서인지 그냥 3, 4일이 지난다. 게으름은 천성이고 건망증은 약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과 손톱깎는 주기를 맞췄다.
몇 분이면 깎을 손톱이지만 늦은 밤 목도한 나의 긴 손톱은 그대로 방치된다. 불편함이 커지고 자주 거슬릴수록 잊지 않고 거사를 치를 수 있다.
거사를 치르다
손바닥에 난 손톱자국과 시계를 번갈아 보다 한 명씩 호출한다. 이리저리 튈 것을 생각해 '거사' 장소는 욕실로 정한다. 욕실 문턱에 걸터앉아 아이들의 손과 발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손발톱을 깎는다.
아직도 토실토실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손. 이렇게 부드러울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보들보들한 손을 만지니 기분이 좋아진다. 묘하다. 밖을 거닐 때 잡는 손의 느낌과는 다르다. 오로지 손만 보고 손만 느끼는 순간이다.
이 손은 이렇구나, 이 아이는 아직도 포동한 정도가 심하구나. 이 아이는 통통함이 많이 빠지고 제법 단단하고 늘씬해졌구나. 여전히 아기 같고 또 어느새 커버린 아이들의 손을 더듬으며 많은 생각이 오간다.
뽀얗고 여린 조막손이 상대적으로 '무지하게 큰' 내 손에 잡혀 있는 것을 보며 며칠 전 무섭게 대했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이상한 일이다. 예쁜 것을 보면서 미안함을 느끼다니... 별수 없이 그 순간 나는, 손 크기의 차이만큼은 더 아량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뜬금없는 다짐을 하고 만다.
조금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손톱을 깎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아빠를 안거나 아빠에게 기대게 되는데, 그 포근함이 지나치게 감동적이다.
쌔액쌔액 숨 쉬는 소리와 등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에 평온함이 밀려든다. 탁한 내 마음이 조금은 밝아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이 조금 선해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안
둘째의 손발톱까지 깎고 나면 편안해지는 마음과는 반대로 몸이 비명을 지른다.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저리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기에 잠시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워 몸을 한 번 늘리고는 셋째와 넷째의 손발톱까지 힘겹게 정리한다.
다시 잠시 누웠다가 그 자리에서 내 손발톱까지 깎고 나니 허리가 제 자리를 잃은 느낌이다. 이럴 땐 한동안 누워 제 자리를 찾아 줘야 한다. 몇 걸음만 가면 침대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손발을 씻고 쌓여 있는 손발톱을 치워야 한다.
"아... 힘들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말을 들었는지 아내가 손발톱 100개 깎은 기념이라며 달콤한 토마토를 입에 넣어준다. 토마토가 달다는 생각도 잠시. 100개? 그러고 보니 내 것까지 합쳐 100개나 되는 손발톱을 자른 셈이었다.
깎아놓은 어마무시한 수의 손발톱을 보니 나름 진 광경이다. 초승달 모양의 크고 작은 손발톱들. 작은 손톱에서 아이들의 웃음 진 반달눈이 보이는 건 왜인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니 태어난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이 10개인지 확인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다들 참 잘 자라주었다. 불현듯 솟아오른 감사함 덕분인지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쑥 들어간다.
정갈한 삶을 위한 작은 불편들
2주마다 100개의 손발톱을 자르며 생각한다. 오늘도 잘 살았구나. 지금껏 잘 살고 있구나. 겨우 손발톱을 자르며 힘들어 하는 걸 보니, 나에게는 더 큰 고생은 없었구나 하고.
잘라내 버려야 하는 손발톱처럼 삶에도 언제나 귀찮은 일과 불필요한 것들이 생겨난다. 즐겁고 행복한 것들과 함께 생겨나는 이것들은 보통 불만과 걱정이라 불린다.
삶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만과 걱정은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일종의 부산물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싫다고 피하거나 귀찮아하기보다는 잘 잘라내고 다듬어 볼 요량이다.
마치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손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는 것과 같이 소중한 것을 정갈하게 만드는데 꼭 필요한 과정을 귀찮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 과정이 때로는 힘들고 고달파도 의미 있고 감사한 일로 여겨보려 한다.
"아... 나도 손톱이랑 발톱 깎아야 하는데..."
또 2주가 지나 손발톱 100개를 깎고 잠시 누워 있으니, 지나가던 아내가 한 마디 툭 던지고 간다. 의도가 몹시 분명해 보이는 멘트. 과하게 또박또박한 발음. 뭔가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해 나는 다시 손톱깎이를 들고 손발톱 120개를 채운다.
덕분에 제자리를 찾아 가던 척추가 다시 뒤틀렸지만 삶은 바로 잡히는 느낌이다. 이제 손발톱 120개라는 걱정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