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새로 이사 간 지인의 집에 집들이를 갔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지하 주차장에서 걸어가다 일어난 일이었다. 어디 빗물이 고인 모양이었다. 이놈의 폭우. 날씨를 탓했다.
그나마 엉덩이를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들이를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얼음팩을 대고 있을 때는 몰랐던 통증이 진하게 전해져 왔다. 멍이 조금 들었을 뿐 그다지 붓지 않아 괜찮겠지 싶었는데 일어서서 걸으니 무릎에 돌덩이가 하나 붙어 있는 듯 무겁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로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은 뒤 의사가 말했다.
"세게 부딪히셨나 봐요. 슬개골에 아주 미세하게 금이 갔네요."
"네?!"
의사가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았다. 허벅지와 정강이 사이에 자갈돌처럼 생긴 자그마한 뼈가 보였다. 그 뼈의 이름이 슬개골이었다. 그 뼈에 금이 갔다고 의사가 말했다. 넘어지며 자동차를 고정시키는 바에 무릎이 부딪힌 게 떠올랐다. 오른쪽 무릎이 꺾였는데 그 무릎이 바에 부딪히고 그 충격으로 금이 간 모양이었다.
어째야 하냐는 물음에 의사는 다행히 깁스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도 금이 간 거라 항생제를 일주일 정도는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자판을 두드리며 이 주에 한 번 엑스레이를 찍으러 오라고 말했다. 의사의 처방을 들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약이네요."
내 말에 의사도 웃으며 완전히 나으려면 8주 정도 걸릴 거라고 했다. 8주라. 무척 길게 느껴지는 숫자 앞에 난감함이 밀려들었다. 집안일도 그렇고 무엇보다 노젓기 운동을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무릎을 다치고 가장 아쉬운 점은 노젓기 운동을 못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30분 정도 노젓기 운동을 하며 몸과 정신을 깨웠는데 그 일을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그동안 노젓기 운동 덕분에 활력도 생기고 불뚝한 배도 가라앉았는데...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무릎에 매달려 있던 돌덩이 느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병원을 나서며 밀려들었던 난감함은 가족들의 도움과 싱크대를 잡고 하는 팔굽혀펴기 운동 덕분에 많이 사라졌다.
절뚝거리는 엄마가 안쓰러웠던지 청소며 설거지며 빨래 너는 일을 아이들이 도와주고 남편도 무신경하게 내뱉던 말을 조심했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날 때면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며칠 전에는 막내가 함께 보자며 드라마 하나를 틀어주었다. 한석규, 김서영 주연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드라마(1시간짜리 요약본)였는데 대장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를 위해서 하루하루 아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해 나가는 남편의 이야기였다. 무척이나 정갈하고 다정한 드라마여서 심신이 맑아졌다.
드라마를 보며 나의 늙음이 꼭 나쁘지만은 않구나 생각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며 이제는 기름지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은 멀리하게 되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이 가족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니 내 몸에 이로운 음식을 하다 보면 그것이 곧 가족에게도 이로운 음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다 싶었다. 매사에 좀 더 조심하고 좀 더 신경 쓰라는 것. 그제야 무릎을 다친 것도 날씨 탓이 아니라 젊을 때만을 생각하고 무신경하게 걸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음은 정신이 아니라 몸으로 온다.
이제는 어디에 부딪히면 영락없이 골절이 발생할 확률이 더 높은 나이가 되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슬개골이 그것을 일깨워주었다. 슬개골의 일침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