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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의 잉어 대구 신천에는 잉어가 많이 산다. 잉어들이 가까이서 유영하는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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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천은 서울 청계천의 모델이 된 하천으로 유명하다. 하류에서 물을 상류로 끌어와 계속해서 강물이 흐르게 하는 인공하천의 대명사다. 청계천도 신천을 따라 하류에서 최상류로 물을 끌어와 강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하천을 운용한다. 이들을 따라 전국의 하천이 비슷한 방식으로 인공하천의 길을 가고 있다.
현대적 하천의 모범이 되어 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두 하천 다 바람직한 하천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현대 하천의 모범이 되려면 어떤 점을 더 고치고 살려야 할까?
10㎞ 구간에 보가 14개인 대구 신천
청계천과 달리 대구 신천은 수중보가 많다. 콘크리트보도 있지만 대부분 고무보로 되어 있어서 고무보에 바람을 넣었다 빼는 방식으로 물 조절을 한다. 그런데 그 보가 너무 많다. 신천은 전체가 27㎞ 정도 되는 하천인데 계곡 부분을 빼고 도심 구간 10㎞ 정도다. 그런데 그 구간에 보가 무려 14개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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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로 막힌 신천의 부영영화 지난 봄 보로 막힌 신천에 강물이 고여 썩어가고 있고, 그 안에서 잉어들이 힘겹게 유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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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보에 물을 다 채우면 14개의 미니 저수지가 만들어지게 된다. 토막토막 단절된 하천의 행태가 된다. 하천에 물이 많으면 좋긴 하다. 수중 생태계란 것이 물이 있어야 돌아가니 말이다. 그러나 물이 너무 많은 것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이 많아서 도리어 생태계가 교란되기도 하고, 물을 가둬 두면 녹조 같은 것이 발생해 수질이 악화된다.
그런데 물을 가둬 기껏 하는 일이 분수를 쏘는 것이다. 하천 가운데 분수가 올라오게 한 것인데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보면 좋기만 할까? 자연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말이다.
반면에 보가 열릴 때가 있다. 큰비가 오거나 장마기에는 보를 열어둔다. 그러면 신천이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신천 바닥은 흔히 청석이라 하는 바위로 되어 있다. 일부 모래층도 있으나 대부분 청석으로 되어 있어 보를 열게 되면 낮은 물길이 청석 위를 세차게 흘러가는 구조다.
그러면 백로와 왜가리, 오리 같은 새들이 찾아온다. 와서 낮은 물길의 신천에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얀색 백로가 가느다란 다리로 재빠르게 움직여 물고기를 낚아채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진기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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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의 백로들 신천에 수중보를 열자 백로들이 떼로 몰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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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왜가리는 물 위의 성자처럼 부동의 자세로 묵묵히 오래 기다리다 한방에 물고기를 낚아챈다. 오리들은 얼굴과 부리를 연신 물속에 박고 조류 같은 먹이를 열심히 뜯어 먹는다. 그 옆을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유영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운이 좋은 날은 이른 아침이나 일몰 무렵 수달을 만날 때도 있다. 보가 열려 있는 며칠 전 수달 가족이 오후 늦게 신천에서 잉어 사냥을 하면서 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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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의 수달 늦은 오후 신천에서 수달이 놀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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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살아있는 하천이 모습이다. 수중보만 열면 이런 모습이 연출된다. 그래서 지금처럼 장마기에는 신천이 제법 하천다운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수중보가 다 열려 있기 때문에. 이처럼 항상 수중보를 열어두면 안될까?
신천의 수중보를 열자
얼마 전 같은 질문을 대구시 하천과 담당자에게 했다. 돌아온 답은 "신천은 상류에서 하류까지 표고차가 커서 수중보를 열게 되면 강물이 다 쓸려 내려가 버려서 신천이 건천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들어보면 그럴듯한 설명처럼 들린다. 그러나 과연 현실도 그럴까? 지난 장마기부터 장마가 끝난 두어 달가량 신천을 지켜봤다. 물론 그 전에도 계속 신천을 모니터링해왔던 경험까지 합쳐서 이야기해보면 보를 연다고 해서 건천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항상 일정한 수량의 강물이 흐르기 때문에 더욱 건천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지금 신천에는 신천하수종말처리장의 처리수 10만 톤이 도수관로를 타고 상류로 올라가 상동교 부근에서 방류된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부터는 낙동강에서 하루 10만 톤을 더 끌어와서 합치면 하루 20만 톤의 강물이 상류에서부터 흐르게 된다.
신천보다 훨씬더 규모가 큰 국가하천 금호강의 하천유지용수가 25만 톤 가량이다. 상류 영천댐의 하루 방류량이 25만 톤 정도인 것이다. 금호강보다 5만 톤 정도 적은 20만 톤이나 되는 강물이 신천을 매일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결코 적지 않은 강물이 매일 일정량 흘러가기 때문에 신천이 건천이 된다는 것은 지나친 기우다. 따라서 신천의 14개 수중보를 모두 열더라도 신천이 절대로 건천이 될 리가 없다.
건천화는 오히려 보로 인해 일어난다. 고무로 된 수중보에 바람을 넣어서 보를 들어올릴 때 보 상류에는 물이 가둬지지만 보 아래는 물이 차단되어 보에 물이 다 채워져 강물이 그 보 위를 흘러넘칠 때까지 보 아래는 물이 말라 물고기들은 큰 수난을 당하게 된다. 그 시간이 대략 1시간가량 이어진다. 그 1시간 동안은 물고기와 수중 생물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물을 채워 하는 일이 분수 쏘기
보를 열었을 때 맞이하는 두 번째 난관은 가득 찬 물이 없기 때문에 분수를 쏠 수 없다는 점이다. 시원한 물줄기를 뿜으며 솟아 올라오는 분수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최대 난관이다.
대봉교 부근서 만난 한 시민은 "분수가 올라오면 시원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분수가 없어도 크게 지장이 없다. 그 분수를 계속 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신천에는 산책하고 운동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분수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따라서 대구시가 주장하는 것은 시와 담당자의 고정관념일 뿐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수중보를 모두 열게 되면 신천이 상류에서 하류로 막힘없이 흘러가게 된다. 물의 이동도 막힘이 없을뿐더러 생태계도 막힘과 교란이 없어진다. 즉 물고기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그 물고기를 잡으러 새가 날아오고, 강물은 계속해서 흘러가면서 수질이 더욱 정화된다. 보다 맑고 깨끗한 강물이 흘러가고 생태계가 더욱 건강하게 꽃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다. 분수냐? 오리 같은 새들이냐? 고여 썩은 물이 분수로 올라가 뿌려지는 것을 보고 싶으냐? 맑고 깨끗한 건강한 강물이 흐르고 그 속을 물고기가 자유롭게 유영하고 그 물고기를 잡으러 새가 찾는 생태계의 선순환적 질서를 보고 싶으냐는 것이다.
답은 자명할 것 같다. 분수보다는 새가 더 하천에 어울리고 또 사람들도 새를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 또한 인공이 아닌 자연을 찾고, 막힘이 아닌 흐름을 찾는 것이 현대의 추세이고 보면 지금과 같은 신천의 운용 방식은 과거의 것이란 사실이다.
인공이 아닌 자연하천으로 ... 신천의 '오래된 미래'를 꿈꾸며
지난 20년 이상을 그렇게 해왔다고 그대로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인식이 바뀌면 행정도 바뀌어야 한다. 인공의 하천이 아닌 자연의 하천을 요즘 사람들은 더 원한다는 점을 깊이 헤아릴 필요가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신천 둔치에 수영장을 만들었다. 지난 장마기 초기에 개장식도 했다. 둔치에 조성된 인공 수영장을 보고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옆에 신천의 강물을 두고 둔치에 콘크리트로 수영장을 만들어 수돗물을 채워 아이들 놀이터를 조성해둔 것이다.
신천을 더 맑고 깨끗하게 해 신천에서 아이들이 멱을 감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들이 신천에서 물고기도 잡고 물방개도 찾고 멱도 감은 신천의 '오래된 미래'를 꿈꿔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가?
상상력의 빈곤 아니면 토건족의 놀음에 놀아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강을 두고 그 옆에 수돗물 수영장을 만드는 이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현대인과의 교감은 요원한 것이다.
대구 신천의 생태적 변화를 기대해 본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수중보만 없애도 가능해진다. 처음부터 모두 없애기 부담스러우면 절반 정도는 없애고 절반만 운용하다가 서서히 없애나가면 된다.
신천의 생태적 변환 그것은 신천이 살고, 그 안에 사는 물고기를 비롯한 야생의 친구들이 살고, 결국 우리 인간이 잘살게 되는 길이다. 기후위기의 대안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나둘 바로잡아가면 된다. 신천부터 변화시키면 된다. 아이들이 신천에서 물고기도 잡고 멱도 감게 되는 신천의 '오래된 미래'를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