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우리 가족은 조금 이른 가족여행을 떠났다. 보통은 여름휴가 기간을 맞아 여행을 떠나지만 여든이 넘은 외조부모와 함께하기엔 푹푹 찌는 한여름 날씨는 큰 걱정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의 외할아버지는 심장 질환을 앓고 계셔서 조금만 숨이 차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에 조심해야만 한다. 사실 나도 한여름에 떠나는 휴가는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열도 많고 땀도 많은 탓에 더운 날씨에는 집 밖을 나서지 않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린 5월 초, 남들보다는 조금 이른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마침, 5월은 가정의달이니 가족 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시기인 것 같았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했지만,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을 잘 선택했기에 그리 추운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숙소이다.
"꼭 수영장 있는 데로 잡아!"
할머니가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물공포증이 있어서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태까지 숙소에 수영장이 있거나 스파풀이 있으면 그런 곳은 제외하고는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오랜만에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내비쳤다. 할머니가 젊었을 시절에는 아마추어 수영 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물에 대한, 어쩌면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이 나이에 큰 수영장 가기도 창피하고, 그리고 10년 만에 하는 건데 될지도 모르니까 우리끼리 해보자고."
그래서 우리는 인천 강화도 바닷가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수영장이 딸린 숙소를 예약했다. 사진으로 보이는 마당이 제법 예뻐 보여 설레는 마음이었다.
느지막한 오후쯤 숙소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강화도로 향하는 차량이 매우 많았다. 평소였으면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이지만, 이날은 정체 탓에 거의 2시간이 걸려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차를 탔기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치진 않았을지 걱정이 됐지만 중간에 잠시 쉬어온 덕분에 두 분 모두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향한 곳은 바로 수영장이었다.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수영장은 다소 작아 보였으나 물놀이를 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오~ 너무 좋다 야. 나 빨리 들어가 봐야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기에 빨리 수영을 시작해야 했다. 해가 지면 쌀쌀한 기운이 감겨오기 때문이다.
마침내 할머니는 10년 만에 수영에 도전할 수 있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할머니의 모습은 다소 들떠 보이기도, 조금은 두려워 보이기도 했다.
천천히 물에 몸을 담그던 할머니는 오른쪽 어깨가 아프다며 걱정하셨다. 수영을 하려면 팔을 돌려야 하는데, 어깨가 아파서 팔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쪽(오른쪽) 팔이 아파서 잘 안되는데, 일단 한번 해보고."
긴장되는 공기가 우리 모두를 감쌌다. '첨벙' 할머니가 수영을 시작했다.
"오! 된다! 할머니 잘한다!"
10년 만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할머니는 멋지게 수영을 해냈다. 얕고 작은 수영장이었지만 턴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할머니는 왕년의 실력을 맘껏 보여주었다.
나는 이를 영상으로 기록하여 유튜브(
영상 바로보기)에 업로드했고, 할머니도 당신의 멋진 모습을 몇 번이고 다시금 살펴보며 뿌듯해하셨다.
할머니의 도전은 단지 수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렵지만 결국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남들에겐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내가 행복하면 된다는 것을, 수영을 통해 몸소 보여주고 이야기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