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경호처와 경찰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명예전역 반대 서명'을 제출하려는 국방부 민원실 취재를 이례적으로 전면 통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측은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7월 31일부터 2만 2080명에게 받은 서명을 신원식 국방부장관에게 제출하려고 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민원실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통령경호처 지휘를 받는 202경비단과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오전 9시 30분께부터 현장을 찾은 군인권센터 관계자와 취재진의 민원실 건물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해당 건물은 누구나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으며 편의점, 빵집 등도 입점해 있는 곳이다.
이들은 "군사기지법(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상 촬영이 안 된다", "취재를 할 수 없는 곳이다"라고 말하며 휴대폰으로 이미 촬영한 사진의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 민원실은 그동안 여러 차례 취재가 이뤄진 공간이었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촬영도 가능했다. 이날 민원실 관계자조차 "이쪽(전쟁기념관 쪽) 방향으로 (제) 손만 나오게 찍으면 된다"며 촬영 방법을 안내하기도 했다.
'된다', '안 된다' 자꾸 말 바꾼 경찰
이러한 민원실 관계자 안내로 취재가 이뤄지는 듯했으나, 경찰이 뒤이어 도착한 취재진 중 일부의 통행을 막으며 실랑이가 이어졌다. 경찰은 국방부 민원실로 향하는 삼각지역 횡단보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기자들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미 (국방부 민원실에) 들어가 있는 기자들은 어쩔 수 없고 더 (기자들을) 들여보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횡단보도에서 통제 당한 취재진은 현장에 있던 용산경찰서 경비과장에게 "민원실 관계자가 제한된 상황에서의 촬영을 허락했다", "촬영을 통제해야 한다면 풀(공동취재단)을 꾸려 일부 기자만 들어가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경비과장은 길 건너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와서 '공동취재단 취재는 가능하다'는 취지로 기자들에게 전했다.
하지만 잠시 후 경찰은 사진·영상을 찍지 않는 취재기자까지 포함해 모든 취재를 불허한다고 통지했다. 취재진이 "민원 제출 현장조차 취재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용산경찰서 경비과장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럼 지금 왜 우리를 막는 것인가"라고 재질문하자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국방부 민원실에 미리 도착해 있던 취재진에게도 취재를 불허한다는 통보가 이뤄졌다. 심지어 공동취재단 자격으로 국방부 민원실에 가 있던 국방부 출입기자단 소속 영상기자조차 취재할 수 없었다.
앞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취재가 가능하다'고 말했던 민원실 관계자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달라진 상황을 전했고, 국방부 민원실의 취재진도 모두 건물에서 내보내져 삼각지역 바리케이드 너머로 이동해야 했다.
"이런 일 처음, '권력 비호' 생각 지울 수 없어"
결국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김형남 사무국장만 통행이 허가돼 국방부 민원실로 향했고, 모든 기자가 국방부 민원실 출입은 물론 삼각지역 횡단보도도 건널 수 없었다.
임 소장은 오전 11시 30분께 민원실에 서명을 제출하고 난 뒤 길 건너 전쟁기념관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국방부 민원실 출입 통제는) 군인권센터에 대한 업무방해이기도 하지만 언론에 대한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군인권센터가 설립된 이후 국방부에 수많은 민원을, 서류를 제출했는데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난 건 처음"이라며 "(임성근) 사단장 하나를 이렇게 보호해야 하는 것인가. 권력이 비호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 (경찰이) 평소 하지도 않은 짓을 하면서 과민하게 반응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남 사무국장도 "(민원 제출 전인 오전 9시 30분께부터 경찰이) 이미 기자들 출입을 막으며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민원실 직원이 '내부 사무실을 찍지 않으면 관계 없다'고 해서 (취재를 진행하는 것으로) 협의가 돼 있었다"라며 "그런데 어디서 자꾸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경비단이 입장을 번복했고 나중엔 민원실에서 (취재진을) 내보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군인권센터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청문회에서의 대국민 거짓말, 전례 없는 9개월 황제 연수에 이은 명예전역 시도에 많은 시민들이 분노를 전했다"라며 "지난 7월 31일부터 모집한 범국민 서명 운동에 총 2만 2080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라고 밝혔다.
이날 국방부 민원실을 통해 신원식 장관에게 해당 서명을 제출한 임 소장은 "군인사법은 비위 행위로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받고 있을 때 전역을 지원한 사람은 '전역 시켜선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라며 "임성근은 현재 검찰과 공수처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절대 전역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전역지원서를 받아들여 심사위원회에 회부하는 직권남용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임성근은 명예전역이 아니라 파면 대상"이라며 "신 장관은 위법한 명예전역 심사 절차를 즉각 중단시키기 바란다. 신 장관마저 직권남용의 공범이 되어 위법한 전역을 승인한다면 군인권센터는 이후 가용한 모든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지난 4일 입장문을 통해 "저는 사건 초기부터 수중수색을 지시한 바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했고 이는 경찰 수사 결과로 확인됐다"라며 "그동안 저에게 군복 벗기를 요구하던 사람들이 막상 제가 전역을 신청하자 이제는 제가 전역을 통해 도주하려고 한다는 인격말살적 비난을 앞다투어 하고 있다. 유감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