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의 죽음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앞당기고 튼튼히 하는 초석이 됐다. 채해병의 죽음도 우리 사회의 어두웠던 권력의 음침한 부분을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줬다. 이 상의 영광을 하늘나라에 있는 채해병에게 온전히 돌리고 싶다." - 박정훈 대령
지난해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이끌다 되레 항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훈 대령(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 8일 '박종철인권상'을 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국회 청문회 외엔 공식 석상에서 발언하지 않았던 박 대령은 이날만큼은 수상 소감을 빌려 윤석열 정부를 향해 강한 목소리를 냈다.
순직한 채 상병을 향해서도 "너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도, 허망하지도 않다"고 애도의 말을 전했다.
심사평 "권력 전횡한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서"
박 대령을 제20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한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박종철센터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지난 2003년 제정된 이 상은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었던 박종철 열사를 기리고 국가권력의 부당함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된다.
심사위원장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심사평에서 "박 대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전횡한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섰다"라며 "이는 국가권력이 사적 폭력으로 변질되고 법 위에 그 폭력이 자리하는 잘못된 현실을 행동으로 깨쳐내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대령은 국가의 과오로 초래된 병사의 죽음 앞에서 군인이자 시민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다"며 "또 생명의 소중함을 무엇보다 우선하여야 할 군인의 소명에 따라 군령의 오류를 찾아내 지휘의 책임을 추궁했다"고 평가했다.
박 대령은 수상 소감에서 채상병과 박종철 열사의 공통점을 언급했다.
그는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결국 6월항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었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초석이 됐다"면서 "채해병의 사망 이후 역시 수사외압, 대통령실의 개입,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공범과 'VIP'의 등장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이맘때,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죽음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채해병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규명하고, 책임자가 처벌받아야만 우리 사회에 제2의 채해병 같은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란 믿음 하나로 버텼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세관이 연루된 마약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백해룡 경정의 용기 있는 진술에 의해 외압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며 "현재 저와 유사한 경험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당신들의 선택은 옳다'고,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상식을 찾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연히 수상할 사람에게 상이 돌아갔다"며 "전날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의 명예전역이 불발된 것과 비교된다"고 했다. 이어 "누가 범죄자이고 누가 범죄자가 아닌지 명암이 드러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령의 동기인 김태성 박정훈대령후원회장(해병대사관 81기)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두 차례나 행사한 이후) 오늘 채상병 특검법이 다시 발의됐다"며 "국민의 분열이 심화하고 정쟁화가 깊어지기 전에 정치권이 합리적인 타협점을 마련해 조속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