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가 원래 그렇기도 하지만, 읍내에서 당산마을은 유독 대대로 터 잡고 사는 토박이들이 많다. 당산마을은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는 '수구막이'로서, 수령이 꽤 돼 보이는 동구나무 10여 그루가 여전히 마을 입구에 서 있을 정도로 옛 마을의 형태가 적잖이 남아 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읍내에 정통 한옥이라니, 놀랍기도 하려니와 반갑기도 하다.
그 한옥은 읍내 한복판에서 태어난 김대웅(73, 아래 삼촌) 씨가 15년 전에 당산마을에 들어오면서 지은 집이다. 그전에는 반딧불 아파트에서 한 10년을 살았다. 삼촌이 아파트를 뒤로하고 한옥을 지은 것은 꿈을 좇아서다. 오랫동안,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안전과 편리 대신 '건강하고 평안한 집'을 꿈꿨단다. 다소 역설적이나, 그 꿈은 아내의 건강이 무너지면서 실현됐다.
선친께 물려받은 당산리의 두 다랑이 논 500평을 평탄작업한 뒤, 줄기초를 넣고 34평의 한옥을 올렸다. 벽재(壁材)는 강원도에서 공수한 친환경 황토벽돌이다. 목재는 캐나다산 더글라스로, 국내산 육송보다 저렴하고, 옹이나 송진이 덜해 다루기가 쉽다. 큰 목재(대경목)도 많고 함수율이 낮으니 비틀림도 적다. 다만 갈라짐은 육송보다 심하다.
외벽은 황토벽돌에 미장하고 백회를 발라, 밖에서 보는 벽은 하얗다. 내부는 한지 도배로 마감했다. 'ㄱ자' 형태의 긴 가로에는 거실을, 짧은 세로에는 안방을 들였다. 서까래 위에 개판(판자)을 대고 황토로 보토를 했다. 지붕은 고상한 팔작지붕, 지붕재는 대전에서 공수한 구운 황토 청기와다.
기둥과 보가 수입목이다 보니, 원이 아닌 각기둥이다. 주방과 거실 통합형 구조로, 12m가 넘는 큰 거실은 중간에 장지문을 달았다. 장지문은 공간을 분리한 듯하지만, 한지 창호 미닫이문이라 필요할 때는 문을 떼 내고 쓴다.
거실 측면에 10m의 긴 벽장을 넣었다. 옷과 이불을 포함 잡동사니를 넣는 수납장인데, 전통 창호라 얼핏 보기에는 방으로 이어진 출입문 같다. 원형인 지붕 서까래와 달리 거실 천장의 서까래는 각재를 썼다. 그런데 맞배가 아닌 수평과 사선형을 섞은 팔자(八) 형태인 점이 특이하다. 보통은 지붕 서까래를 그대로 천장으로 삼는데, 이 집은 다락을 넣지 않고도 별도의 천장을 만든 거다.
안방은 외벽에 창문을 둘씩 짝지어 두 개를 냈는데, 안쪽 새시창에다 바깥 한지 창호를 댔다. 긴 창 하나보다 단열과 환기 면에서 탁월해 보인다. 안방 천정은 두꺼운 보에 루버를 댔고, 벽은 방한용 앰보싱 벽지를 댔다. 이곳 역시 한 면 전체에 드레스룸 겸 벽장을 넣었다. 앤티크 장롱은 집과 구색이 맞고, 예닐곱 개의 목공 소품들은 거실 곳곳에 자리 잡고 한옥의 평안함에 일조한다.
주방은 진한 회색 싱크대와 아이보리색 상부장으로 돼 있고, 아일랜드 식탁도 놓았다. 채광을 위한 람마창(통풍창)을 일반 사찰처럼 이 집 사면을 돌아가며 다 넣었는데, 덕분에 부엌은 어둡지가 않다. 지열 보일러를 쓰는데, 보조 난방으로 썼던 화목 난로는 번거로워 치웠다고.
달아낸 현관의 출입문은 한옥답게 목재로 짜 달았다. 동쪽엔 쪽마루, 남쪽엔 누마루를 냈는데, 처마를 매우 길게 빼 비 들이칠 걱정은 없겠다. 바깥 처마의 원형 서까래와 사각 부연은 단체 미팅하듯 가지런히 마주한 게 참 보기 좋다. 만족한다면서도, 삼촌은 다락방이 없는 것은 아쉬워한다.
삼촌은 아내가 흙 속에서 살더니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며, 좋아한다. 역시 인체 성분과 비슷한 나무와 흙이 최고다. '부실 없이 제대로만 지어달라'고 했다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별문제 없다.
정원은 과하지도 않고 넘치지 않게, 참 아기자기하게 꾸며놨다. 소나무를 포함한 정원수와 화초, 그리고 많은 다육이들이 주인의 부지런함을 인증한다. 삼촌네 부부의 인상이 좋다. 행복하고 잘 산 티가 만면에 가득하다. 앞으로의 여생도 쭉 그렇게 보낼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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