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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가족의 사망사고가 올해 들어 3건이나 발생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10건씩 발생했는데, 모두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고려한 제도적 기반이 부재한 탓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전국 15개 광역시·도에서 오체투지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발달장애인의 일가족이 신변을 비관해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고를 제외하고라도 장애인 가정은 일상에서 다양한 어려움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특히 발달장애아동의 경우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지만, 방과후에 이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기관은 드물다. 이렇게 장애아동과 가족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 놓여있다.

그런 와중에 조금 다른 이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 경기 남양주시에 발달장애인만을 전담하여 방과후 돌봄을 제공하는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가 그 주인공이다. 2018년 문을 연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는 지역 최초의 발달장애 전담 아동센터이자, 현재까지도 지역 내 유일한 발달장애 전담 아동센터다.

관련하여 8월 13일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재경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지난 25년 동안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혼자 키운 그는 '선배 엄마'의 마음으로 장애아동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했다. 다음은 이재경 센터장과 나눈 일문일답.

"아이들이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는 곳 꿈꿨죠"
 
 지난 5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겸해 센터 선생님들이 준비한 카네이션을 든 이재경 센터장. 이 센터장은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도 끊임없이 전했다.
 지난 5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겸해 센터 선생님들이 준비한 카네이션을 든 이재경 센터장. 이 센터장은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도 끊임없이 전했다.
ⓒ 이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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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달장애인만을 전담하여 돌보는 지역아동센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우선 센터장인 나에게도 자폐성 장애가 있는 25살 아들이 있다. 장애가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장애가 있는 아들을 인정하지 못한 남편과는 결국 이혼을 하고, 친정집에 들어가 살았다. 농사일을 하시는 나이 많으신 어머님은 손주를 돌보는 데 한계가 있으셨고, 학원 강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모기에 잔뜩 물려 꼬질꼬질한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 많이 울었다. 돈도 벌어야 하지, 아들도 돌봐야 하지, 그런데 방과후에 아들을 맡길 곳은 없지, 첩첩산중이었다.

고민 끝에 학원보다 퇴근이 빠른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지역아동센터의 시스템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장애아동은 비장애아동과 어울리지 못했고, 몇 안 되는 장애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은 당연히 빈약했다. 후로 장애아동만 다니는 지역아동센터를 만들어보자는 비전이 생겼다. 장애아동이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눈치 안 봐도 되는 곳,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노는 곳, 부모님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꿈꿨고, 6년 전 그 꿈을 이뤘다."

- 6년 동안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자리를 잡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시작부터 어려웠다. 장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웠는데, 아파트에 지역아동센터를 차리려다가 관리사무소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때 선계약금도 날렸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른 곳에 센터를 차렸는데, 2년 동안 아무런 지원 없이 자부담으로 견뎌야 했다. 내 월급은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급여를 제때 드리는 것만 생각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견뎠다.

무엇보다 참고할 만한 모델이 없었다. 우리 지역에는 장애아동만을 받는 센터가 없다. 물어볼 곳이 없어서 그냥 맨 땅에 헤딩만 해댔다. 각자 사정이 있는 부모님들과 상담하는 것도 어려웠고, 아동의 장애 유형에 맞게 케어하는 것도 어려웠다. 남몰래 많이 울었는데, 종종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 힘들어도 센터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코로나 시절 아이들이 학교도 가지 못할 때,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는 꿋꿋하게 아이들을 반겨주었다. 모두가 힘들었지만, 장애가 있는 가정에게는 특히 가혹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리 센터가 장애가정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구나, 보람을 많이 느꼈다.

장애아동만을 전담하는 센터가 있다 보니 엄마들도 아이들을 마음 편히 보내고, 그렇게 직업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들이 먹던 우울증 약도 줄어들고, 울상이던 얼굴이 웃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참 행복했다. 장애 아들을 둔 선배 엄마로서,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도 뿌듯하다. 자리에 앉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아이들이 앉아서 한글 공부도 하고, 숫자 공부도 하고. 프로그램 시간에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이름만 부르면 바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 학교보다 센터가 더 좋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 코로나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방학 때는 돌봄 부담이 더 클 것 같다. 가정과 센터의 방학은 어떤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거다.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혼자 있지도 못하고, 혼자 밥도 못 먹고, 옷도 제대로 못 입는다. 당연히 가족이 돌봄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우리 센터는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가정의 돌봄 부담을 우리가 어느 정도 나눠 지는 것이다.

여름에 지인이 '휴가 다녀오셨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이 한창 성수기다.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만큼 센터 입장에서도 방학이 버겁긴 하다.협소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 문제가 찾아온다. 자폐성 아동의 경우,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옆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 명이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 옆에 있는 아동도 영향을 받는다. 옆에 친구가 우는 게 듣기 싫다고 꼬집거나 무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학이 되면 가정이나 센터나, 개학이 빨리 다가오길 기다린다."

온갖 어려움에도 반드시 가족여행을 떠나는 이유
 
 2022년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에서 제주도로 떠난 가족여행. 사진 속 이재경 센터장은 장애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삭발을 감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짧은 상태다.
 2022년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에서 제주도로 떠난 가족여행. 사진 속 이재경 센터장은 장애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삭발을 감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짧은 상태다.
ⓒ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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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 엄마의 경험을 토대로 센터 운영에 있어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나?
"장애를 가진 아들과 같이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후배 엄마들은 그 어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 역시 이전의 선배 엄마들 덕분에 장애인바우처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고, 장애인 이동을 도와주는 활동지원사 제도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센터 운영을 단순 돌봄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 입장에서 아동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술, 음악치료, 생활체육 수업을 구상하고, 외부 전문 강사를 찾아다녔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다음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님들께 눈을 돌렸다.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없던 부모들이 친구를 만나고, 일을 하고, 자격증을 땄다. 아동을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양육자인 부모님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족여행을 기획했다. 2022년 코로나로 어려운 시절에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고, 2023년에는 전북 군산과 전주로 가족 여행을 갔다. 올해는 지난 5월 강원도 정선, 영월, 강릉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장애가 있는 아들, 딸을 키우면서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건 사실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제주도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여행이 된 아버님도 계셨다. 제주도 여행 영상을 병상에서 두고두고 보며 행복해하다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감사하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센터를 운영하며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 많은 가정을 이끌고 여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 시도했던 제주도 여행 때는 티켓을 끊는 것부터 문제였다. 한국 국적이 아닌 아동이 있었는데, 단체 여행이다 보니 한 명만 통과가 안 돼도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었다. 다행히 기적처럼 문제가 해결되어 떠날 수 있었다.

2023년 여행 때는 한 아동이 경기를 일으켰다. 구급차 불러 응급실에 가고, 기관 삽입을 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늘이 노래지고, 눈물만 났다. 다행히 지금은 좋아져서 센터에 잘 다니고 있다.

여행 도중 돌발 행동을 하는 건 일도 아니고, 빈뇨로 고생을 한 아동도 있었다. 식당과 숙소를 정할 때도 신중해야 했다. 혹시 괜한 편견과 비장애인의 시선 때문에 여행 도중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하루 날 잡고 수영장에 가려고 계획했는데, 예약 확인 차 전화를 하니 장애인을 받기는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게 이유였다. 다른 데로 갈 수 있으면 다른 데로 가라고 했다. 눈물을 참지 못해 울고불고 통화했다. 아직까지도 장애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강고하다는 걸 다시 느끼고는 하루종일 속상했다."

"우리의 목소리에 사회가 응답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2023년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에서 전라도로 떠난 가족여행.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를 상징하는 '쓰리고'로 여행을 명명했다. '쓰리고'는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의 운영 모토이기도 하다.
 2023년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에서 전라도로 떠난 가족여행.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를 상징하는 '쓰리고'로 여행을 명명했다. '쓰리고'는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의 운영 모토이기도 하다.
ⓒ 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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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최근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리들의 블루스> 등을 통해서 발달장애인이 대중에게 많이 노출된 것 같다. 사람들의 이해나 사회적 시선이 조금은 개선된 것 같나?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며 눈물이 나기도 했고, 공감도 많이 됐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분명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특히 변호사처럼 의사소통을 하는 일은 더 그렇다. 자폐 특성상 소통과 공감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간혹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이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비춰질 때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주변에서 내 아들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는데 엄마인 내가 발견하지 못 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게 아니다. 비장애인 중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장애인 중에서도 그런 특별한 사람이 있는 거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발달장애인의 존재가 덜 낯설어졌다는 건 긍정적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우영우가 문 앞에서 숫자를 세는 장면이 여러 번 나왔기 때문에, 비슷한 행동을 하는 장애인을 봐도 이제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가 있다."

- 강고한 편견도 문제지만, 사회 자체의 구조적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최근 발달장애인을 둘러싼 참사를 바라볼 때의 심정이 어떤가?
"장애 부모들이 계속 요구하고 외쳤던 것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다. 장애가 있는 일가족이 자살하거나, 먼저 죽이고 따라 죽으려다 살아남아서 괴로워하거나, 오랜 돌봄에 지쳐 자식이나 부모를 죽이는 일은 장애인 돌봄을 가정이 오롯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벌어지는 거다.

아직 우리는 연령대별로 장애인에게 필요한 게 제도화되지 않았다. 부모가 나이 들고 병 들면, 발달장애인은 살아갈 수 없다. 국가가 조금이라도 우리를 생각해달라 요구하는 발달장애 부모들을 일각에서는 가장 유별난 장애인 부모연대라고 부르더라. 500명이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하고,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 바닥에 오체투지를 하고, 삼보일배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삭발하고. 이렇게 강성인 건 무서울 게 없기 때문이다. 보호자 없이 세상에 남겨질 아들, 딸을 생각하면 다른 걸 고민할 겨를도 없다.

예전에는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요즘에는 보호자 없이도 30년, 50년 더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외에도 현장에 필요한 게 많을 것 같다. 시급히 갖춰져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지역아동센터는 장애아동을 잘 받지 않으려고 한다. 케어가 힘들기 때문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사회복지사 한 명이 장애아동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간혹 장애아동을 받는 장애통합 지역아동센터에는 장애아동 5명이 이상일 경우, 장애통합교사 1명을 파견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는 그렇다. 그런데 장애아동이 5명이어도 장애통합교사 1명, 10명이어도 1명, 15명이어도 1명이다. 장애아동이 몇 명이든 간에 교사 1명밖에 파견이 안 되니 장애통합 지역아동센터 입장에서는 장애아동을 더 받을 수 없는 노릇이다. 장애아동 5명당 장애통합교사 1명을 배정하는 식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공간이다. 본인만의 고유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자폐성 장애의 특성상, 이런 장애아동을 위해 공공시설에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다함께 돌봄센터는 현재 오픈부터 모든 공간과 시설, 운영비를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해준다. 장애아동 돌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장애아동 지역아동센터를 특성화된 사업으로 만들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당장 시행하기 어렵다면 현재 운영 중인 장애아동 전담 지역아동센터에 공간을 비롯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줬으면 좋겠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가 과도기인 이 시점에서 발달장애아동 돌봄에 필요한 요구에 사회가 응답해주길 바랄 뿐이다."

이재경 센터장은 인터뷰를 하는 도중 종종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데 센터 아동이 다가올 때면 금세 표정을 바꿔 환한 미소를 아동에게 지어보였다. 해맑게 웃는 아동을 바라보며 이 센터장은 "아이들이 저 웃음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게 소원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이재경 센터장. 이 센터장은 현재 구리남양주 장애인권위원회 위원도 겸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이재경 센터장. 이 센터장은 현재 구리남양주 장애인권위원회 위원도 겸하고 있다.
ⓒ 이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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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지역아동센터#발달장애#지적장애#자폐스펙트럼장애#발달장애인국가책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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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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