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준비 완료, 출발합시다!"

웨이즈(Waze) 내비게이션 앱이 경쾌하게 외쳤다. 지난 한 달 동안 약 1만km를 직접 운전하고 다니면서 안전하게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힘이 컸다.

이 세상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여행도 스마트폰 등장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이십 대 초반에 혼자 인도를 여행할 때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그때는 지도책을 보고 다녔고, 가이드북을 경전처럼 모시고 다녔다. 모든 게 정확하지 않았고, 확실한 건 없었기에 골목 하나를 돌 때마다 사람들에게 물어야 했다.

물론 음성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낯선 여행지에서 여행자들은 언제나 크고 작은 사기를 당했고, 여행자들이 만나면 그것은 곧 무용담이 되었다. 그때 나의 경전이었던 <인도 100배 즐기기>를 쓴 환타님을 10년 후 인도 라자스탄 주의 한 여행자 숙소에서 직접 만나 함께 사막 여행을 했던 경험은 나의 여행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장면이다.

2024년의 여행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비게이션이 없었다면 도로 번호와 나침반으로 길을 찾아야 했을 텐데 지금은 스마트폰과 인터넷만 있으면 한국어 음성지원이 되는 내비게이션을 유럽에서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보통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구글 지도를 사용하지만, 운전할 때는 웨이즈(Waze) 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유럽에서는 내비게이션이 과속 단속 카메라 위치 등을 알려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웨이즈(Waze)는 사용자들이 내비게이션과 연동된 커뮤니티의 형태로 도로 위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기능이 있어서 카메라 위치는 물론 도로 위의 공사, 사고, 갓길 정차 차량 등의 교통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 준다. 무료인 데다 사용법이 간단하고 한국어 음성 지원도 해줘서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궁금한 건 바로바로

Waze 내비게이션 유럽에서 운전하는 동안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 앱
▲ Waze 내비게이션 유럽에서 운전하는 동안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 앱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여행 일정을 비롯해 여행지에서 궁금한 점은 챗지피티(ChatGPT)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 가족의 기본적인 여행 정보를 알려주면 가령 '프랑크푸르트(Frankfurt)와 히르츠할스(Hirtshals) 사이에 우리 가족이 식사와 휴식을 할 수 있는 고속도로 휴게실 중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는 곳'을 간추려서 알려주기도 하고, '노르웨이의 집들이 왜 붉은 색인지 알려줘'라는 질문에도 척척 대답을 해줬다.

과거에는 여행을 하다가 마주친 낯선 장면에서 생기는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사소한 질문이든, 심오한 질문이든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해결하며 '아하!' 할 수 있다. 아버지는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챗지피티(ChatGPT)에게 산타클로스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으셨다. 다만 아버지의 경상도 사투리를 AI가 못 알아들어서 관련 분야의 기술 발전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ChatGPT 이번 여행에서는 ChatGPT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 ChatGPT 이번 여행에서는 ChatGPT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우리 가족의 첫 번째 목적지는 덴마크 최북단 항구 히르츠할스(Hirtshals)였다. 내일 오후 8시까지 딱 1000km를 달려야 했다. 챗지피티(ChatGPT)가 알려준 중간 지점의 휴게소는 491km 떨어진 카셀(Kassel)에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 사고 여파로 공항에 계획보다 늦게 도착했고, 모든 일정이 뒤로 밀렸다.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와 적당한 곳에서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한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변기 커버가 없는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깊은 토론을 했다. 어떤 자세가 정답인지, 어느 쪽이 더 위생적인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챗지피티(ChatGPT)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모두 정답이었다. 물론 우리가 정답을 맞췄다고 해서 그 방식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아직 화장실에서 스쿼트를 할 정도로 급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독일 고속도로 화장실 평소에 하체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 독일 고속도로 화장실 평소에 하체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스쿼트 화장실을 뒤로 하고 덴마크를 향해 더 달렸다. 한여름이라 유럽의 하늘은 밤 10시까지도 밝았다. 도로 위에 어둠이 깔릴 때까지 동생과 번갈아 운전하다가 캠핑카 여행의 첫날 밤을 작은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맞았다. 긴장되고 피곤한 하루였다.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한 캠핑카였지만, 다들 너무나 깊게 잠들었다.

아침 6시. 부스럭부스럭 소곤소곤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캠핑카에서는 한 사람이 일어나면 결국 나머지 모든 사람이 일어나게 된다. 먼저 자고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가장 쾌적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이틀 만에 깨쳤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누룽지 끓이는 냄새 때문에 모두 일어났다. 부모님은 한국에서도 캠핑을 자주 다니시기 때문에 정말 캠핑의 고수였다. 엄마는 한국에서 누룽지 2Kg과 된장을 챙겨와서 가족들의 아침을 정말 든든하게 챙겨주셨다. 누룽지는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의 스테디셀러였다.

한국산 누룽지 엄마표 캠핑카 아침 식사의 스테디셀러였다.
▲ 한국산 누룽지 엄마표 캠핑카 아침 식사의 스테디셀러였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커피는 내가 맡았다. 경치 좋은 야외에서 커피콩 갈리는 소리와 향긋한 커피 향은 그 순간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핸드드립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챙겨가면 매일 새로운 카페에서 신선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장기 여행을 다닐 때 가장 좋은 도구는 클레버(Clever)를 사용하는 것이다.

집에서는 주로 V60 여과식(Pour Over) 드리퍼를 사용하지만, 야외에서 간단하게 내리기 위해서는 프렌치 프레스 같은 침출식(Brewing)이 좋다. 하지만 침출식은 맛이 거칠고 잔여물 때문에 맛이 항상 거슬린다.

클레버는 두 가지의 방식을 절반씩 섞어 놓은 드리퍼다. 조금 불편하지만, 조금 더 맛있다. 침출식으로 불려서 여과지를 거치기 때문에 주전자가 필요 없으면서 눈도 조금 즐거운 방식이다. 야외에서 우아하게 드립 커피를 마실 때 딱 맞는 도구다.

클레버 Clever 커피 한 잔 내려서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최고의 카페가 된다.
▲ 클레버 Clever 커피 한 잔 내려서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최고의 카페가 된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완벽한 시간 계획, 오만이었다

남은 거리는 약 700Km였다. 아침 일찍 출발했으니, 오늘은 여유롭게 운전만 하다보면 하루 일정이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덴마크로 가는 중에 함부르크(Hamburg)에 들러서 캠핑카를 타고 시내를 돌며 여유롭게 구경했다.

일요일이라 독일의 거의 모든 대형마트가 휴일이었는데, 구글지도에 독일-덴마크 국경마을 플렌스부르크(Flensburg)의 슈퍼마켓은 영업 중이라는 반가운 표시가 있어서 마지막으로 식료품 쇼핑을 마쳤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설레고 즐거웠다.

즐거운 슈퍼마켓 쇼핑을 마치고 오후 3시에 확인해보니 독일 플렌스부르크(Flensburg)에서 노르웨이 행 피오르드라인(Fjordline) 페리를 타는 덴마크 히르츠할스(Hirtshals)까지의 거리는 약 360km였고, 예상 소요 시간은 4시간이었다. 배는 저녁 8시 출발이니까 1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완벽한 시간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프랑크푸르트-히르츠할스 노르웨이 행 페리를 타기 위해 첫 날 이동한 경로
▲ 프랑크푸르트-히르츠할스 노르웨이 행 페리를 타기 위해 첫 날 이동한 경로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이하고 위험했는지는 환호성을 지르며 덴마크 국경을 건너간 후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치 공포 영화의 예고편처럼 쾌청했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컴퓨터 그래픽처럼 쏟아지는 비를 보며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는데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다. 그때부터 도로 정체가 시작되었다. 단 한 순간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다. 어제에 이어 동생의 입에서는 불길한 주문이 흘러 나왔다.

"햄아, 이 정도면 우리 배 못 탈 수도 있겠는데…"

"걱정 마, 한 시간 여유 있게 출발했으니까."

아니었다. 두 번째 북유럽 캠핑카 여행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리가 페리 선착장에 출발 시간 전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000km의 이동 거리를 생각해서 1시간 정도를 여유 시간으로 두었었다. 그제야 예약 메일을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내 눈에 보이지 않던 한 문장이 크게 들어왔다.

Latest time for check-in is 1 hour before departure time.

가장 늦은 체크인 시간은 출발 1시간 전입니다.

무려 국경을 넘나드는 페리이다. 심지어 노르웨이는 EU 국가도 아니다. 다만 솅겐협약(Schengen Agreement) 덕분에 입국 심사가 면제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여유 있게 1시간이 아니라 적어도 1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지금 당장 이 도로 정체가 풀리지 않으면 우리는 배에 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숨도 안 쉬어졌다. 페리 비용 1500유로(225만 원)를 포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도착지인 베르겐(Bergen)의 캠핑장과 송네 피오르(Sognefjorden) 투어 예약까지 모든 일정과 여행 경비를 허공에 날리는 상황이었다.

웨이즈(Waze) 내비게이션이 전방의 정체구간을 포함해 새로 계산한 도착 예정시간은 저녁 7시 10분이었다. 앞으로 4시간 동안 웨이즈(Waze)의 계산이 정확하게 들어맞아야 하고, 3.5톤의 캠핑카를 승용차처럼 규정 최고속도로 달려야 했다.

그제야 남은 360km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이 됐다. 부산에서 수원까지 마치 자율주행차처럼 쉬지 않고 정확하게 달리는 중에 10분을 더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엄청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먹구름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불행의 전조였다.
 다가오는 먹구름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불행의 전조였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그 어려운 일을 동생이 해냈다. 내비게이션이 7시 10분에 항구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7시 5분에 도착했다. 장장 4시간 동안 앞만 보고 달렸다. 힘들다고 운전자를 바꿀 정도의 여유도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체크인 게이트에 도착해 예약한 티켓을 보여주니 덴마크 아가씨가 활짝 웃는 얼굴로 "Perfect. Have nice a trip(완벽해요. 즐거운 여행 하세요... 편집자 역)" 인사를 해준다. 체크인을 마치고 대기 선에 주차하고 나니 엄마가 뒤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찾으신다. 나는 부처님 대신 동생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몸과 마음을 모두 비웠다.

배를 놓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10분 단위로 빠듯하게 살던 일상의 모습이 여행에도 묻어난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노르웨이 베르겐으로 떠나는 페리에 캠핑카를 실었다.

Fjordline Ferry 엄마는 부처님을 찾으셨고, 나는 동생에게 절을 했다.
▲ Fjordline Ferry 엄마는 부처님을 찾으셨고, 나는 동생에게 절을 했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https://ninesteps.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부릉부릉#캠핑카#북유럽#가족여행#독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베트남 호치민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어른들과 그림을 읽으며 일상을 여행처럼 지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