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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대우국민차 (현 한국GM) 소속의 20대 젊은 노동자 이상관이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로 요양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원 치료 중이었던 그에게 근로복지공단에서 입원 종결을 종용하였고,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인 후 벌어진 일이었다.

나이 든 아버지에게 업혀 통원치료를 다니면서도 나아지지 않자 "예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몸이 아프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인 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9년은 아직 IMF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때였고 '고통분담'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불합리한 탄압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던 때였다. 산재노동자들에게도 입원치료의 통원치료 강제전환, 산재요양의 강제종결 사례가 늘어났다.

만약 이상관이 제대로 충분한 치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급성기의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고 아픈 데서 비롯된 심리적 문제도 도움을 받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도록 재활치료가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그래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지금이 어떤 시절인데 90년대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60년간의 산재보험의 역사 속에서 적용범위나 인정기준에 비해 요양과 재활은 가장 관심받지 못했던 영역으로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특히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산재환자는 요양 후 충분히 회복되는가?

산재환자가 얼마나 충분한 치료를 받고 있는지는 몇 가지 지표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데 그 한 예가 직장복귀이다. <산재보험 패널조사> 2차 코호트에서 요양종결 1년 후, 원직장 복귀자는 조사대상의 34.3%, 타직장 재취업자는 32.8%에 그쳤다. 요양종결자라면 더 이상 요양이 필요치 않은 상태이니 마땅히 건강이 모두 회복되었거나 산재로 인한 기능 손실이 고정된 상태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심각한 장해만 제외하면 건강문제가 직장복귀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경제활동에 복귀하지 못한 사람들의 57.1%는 장해등급이 없었다. 또한 산재로 인한 장해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가를 물었을 때 '그렇다' 또는 '보통'으로 응답한 경우는 73.6%에 달했다. 요양종결 후 본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느끼는 바 역시 좋지 않았다. 전반적인 건강상태에 대해 '매우 좋지 않다' 또는 '좋지 않은 편이다'로 응답한 사람은 36.2%로 높았다. 더욱이 그들 중 74.5%는 건강문제로 인해 일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산재 발생 이전에는 모두 일을 하고 있던 노동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요양 종결 후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산업재해가 현재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물었을 때 39.2%의 산재노동자가 '많은' 또는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하였다. 무장해 산재노동자의 경우에도 이 비율은 31.9%에 달했다. 치료가 끝나도 여전히 산재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으로 삶의 질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와 같이 요양종결 후 직장복귀나 주관적 건강상태에 대한 조사결과를 봐서는 현재의 산재 요양은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다.

산재 요양 중에 일어나는 일 : 낮은 휴업급여와 비급여 치료

산재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고, 일단 인정이 되면 가장 힘든 산을 넘은 것이 맞다. 하지만 산재로 인정되었다고 해서 더 이상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낮은 휴업급여는 많은 산재노동자가 지적하는 문제다. 올해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이 실시한 "노동자가 본 산재보험 실태와 개선과제" 조사에서 지난 3년 사이 산재보상을 받았던 노동자 407명 가운데 51.6%가 휴업급여가 적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현재 휴업급여는 평균임금의 70%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80%나 90%까지 보장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하던 일을 할 수 없어 쉬고 싶어도, '일반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정도라고 의사가 판단하면 휴업급여가 지급되지 않기도 한다. 일반적인 '근로자'가 아닌 '노무제공자'의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전부터 산재보험에 전면적으로 포괄된 '대리운전기사'의 경우 원래 투잡을 뛰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른 일은 할 수 있어도 운전을 할 수 없는 경우, 부분적으로라도 휴업 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은 그런 제도가 없다. 휴업급여 1일 최저선도 '근로자'는 최저임금이지만, '노무제공자'는 1일 4만1150원이다. 대리운전노조 김주환 위원장은 "사고성 재해의 경우 특히 적용은 이제 잘 되는 편이다. 다만 보장액이 너무 낮은 등 실효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원칙적으로는 산재노동자의 요양에 필요한 비용을 산재보험에서 모두 보장한다고 되어 있으나 현실에서는 산재노동자의 추가적인 비용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요양급여는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를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재활보조기구, 화상환자의 치료재료 등 국민건강보험에서 포괄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도 일부 추가로 포함시키고 있다. 덕분에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 63.8%에 비해 산재보험의 보장률은 93.7%로 전체 진료비 중 요양급여로 보장받는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은 사실이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수입보다 훨씬 감소한 휴업급여에 의존하면서 생활해야 하는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치료를 위한 본인 부담금은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요양급여 항목을 확대해 나갈 수도 없다. 산재보험 재정은 무한하지 않고, 급여의 범위는 우선순위에 따라 정할 수밖에 없다. 사망률을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제로 필요한지, 비용 대비 효용이 높은지,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인지 등의 기준을 적용하여 급여항목을 어느 선에서 제한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그 피해는 산재노동자가 입게 된다. 따라서 급여의 범위는 확대해 나가되 충분한 연구와 근거에 기반하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본인부담금을 줄이기 위한 요양관리에 더 힘을 쓸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가능한 비급여 제품을 급여 제품으로 대체하도록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또한 필요하다.

 2024년 6월 25일 열린 산재보험 60주년 기념식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단체와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피켓팅을 진행했다
2024년 6월 25일 열린 산재보험 60주년 기념식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단체와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피켓팅을 진행했다 ⓒ 산재보험 개악 대응 함께

산재노동자의 요양 경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한 자동차부품 사업장의 근골격계 업무상질병 요양 경험자를 대상으로 산재요양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를 시행한 바 있다2). 심층면접 결과 이들은 산재요양 중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크게 호소했다. '꾀병 환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행동이 제약되고 요양기간 내내 고립된 채 시간을 보내 요양기간을 '창살 없는 감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요양승인이나 요양기간 연장을 기다리며 심한 불안감을 경험했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나아지지 않는 증상, 복귀에 대한 불안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산재요양의 원인이 된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치료는 매우 부실했다. 운동법을 가르쳐주거나 도와주는 운동치료를 받은 경험이 낮아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며 방치되었고 심리적 불안정과 고립감은 더욱 심해졌다.

"치료도 하루 종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잠깐 가서 한 시간 정도면 물리치료 받고 오는데, 의사도 안 만나고, (중략) 나머지는 집에 있어야 하거든요."

"산재기간 때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고 이렇다 보니까 저녁이 되면 졸음이 안 오고 낮에 쉬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내가, 자꾸 저를 갉아 먹는(거 같고), 우울증도 많이 왔었고."

심지어 대부분의 노동자가 요양 종결을 '의사와 얘기하는 게 아니라 원무팀장과' 얘기해서 결정했다고 진술하였다. 의학적인 판단보다 행정 편의가 요양기간 결정에 더 우세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연구는 10여 년 전의 연구결과로 현재는 어느 정도는 개선된 측면이 있다. 특히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의 재활서비스의 경우 설비, 인적자원 등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고 이용한 산재환자의 만족도도 높게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산재환자의 대다수가 요양하는 민간의료기관에서의 치료와 재활 서비스의 질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위한 요양관리 개선

산재로 인정된다고 재활과 사회복귀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재보험의 개선에 있어서 정부뿐 아니라 노동계에서도 산재인정 단계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인정 이후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지 못했다. 정부는 다른 보험에 비해 산재환자의 요양기간이 길다며 이를 통제하려 시도했던 것 이상의 적극적인 요양 서비스 개입을 보여주지 않았고 노동계 역시 강제 치료종결에 저항하는 것 정도였다.

요양관리는 요양의 질 관리가 되어야지 요양기간 관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요양기간을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치료를 보장할 수 없다. 현재는 산재환자의 요양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실태조차도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산재요양과 재활의 문제는 전체 의료서비스의 질이나 의료체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고, 급성기 치료 이후 제대로 된 재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관으로의 신속한 전원과 같은 산재의료 전달체계의 확립 등도 필요한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근로복지공단에 한두 개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업무재배치와 산재보험업무의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방향 전환을 논의해야 할 때이다.

1) 근로복지공단, 2019년 본인부담금 실태조사
2) 2013년 두원정공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혜은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2024. 8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kilshlabor@gmail.com


#산업재해#산재보험#업무상재해#근로복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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