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내 동공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눈시울이 살짝 젖었을지도. 냉정을 가장하며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애썼지만, 가빠지는 호흡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대로 두면 어디론가 팔려 가 매춘부가 될 게 뻔한 딸을 두고 볼 수 없어 함께 목숨을 끊는 부모 이야기였다. 가난 때문이었고, 더 깊은 원인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철저한 계급문화 탓이었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일 수는 없었다. 130여 년 전 계급제가 철폐됐고, 세계 11위 경제 대국이 됐음에도 '생활고 못 이겨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민낯 아니던가.
김재문 NEKOS(Nepal Korea Culture Exchange & Social Organization) 대표를 만난 것은 지난 9일과 11일. 모처럼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놓칠세라 지인을 통해 부리나케 만남을 요청하자 그가 흔쾌히 응했다.
남을 위한 봉사를 업으로 하는 이에게서 흔히 느껴지는 선함이 그의 인상에서 짙게 풍겼다. 성격까지 활달해 초면임에도 거침없는 질의응답을 이어갈 수 있었다.
딸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네팔의 불가촉천민 부족 중 하나인 '바디족' 이야기다. 현재 네팔에 약 3만8000명의 바디족이 살고 있다.
"바디족의 비참함인데, 그들은 300년 넘게 그렇게 살아왔어요. 교육을 받지 못하면 딸들이 선택할 길은 매춘이 가장 유력하죠. 불가촉천민이, 그것도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니까요.
매춘을 알선하는 이들이 '좋은 일자리 구해 준다'고 꾀는데, 그런 좋은 직장을 네팔어도 모르는 아이들이 어떻게 구하겠어요. 부모들도 모른 척하면서 보내는 거죠. 그러니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뿌리 깊은 카스트, 바디족 딸들의 비극
김 대표 등에 따르면, 바디족 딸들의 비극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카스트(Caste) 탓이다. 1960년대에 카스트가 폐지됐으나, 카스트는 지금도 유령처럼 떠돌며 네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승려계급인 브라만, 귀족·무사계급인 체트리, 농민·상인계급인 바이샤와 천민계급인 수트라로 나뉘는데, 바디족은 여기에 끼지도 못하는 불가촉천민 '달리트'에 속한다.
이들은 오랜 기간 사회적 박탈과 억압, 배제를 당해 왔기에 지금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하다. 굶지 않기 위해 매춘을 하는 여성이 많고, 남성들은 모래 채취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집이 없어, 정부 재산인 강변에 살고 있다.
바디족은 상위 계급인 브라만, 체트리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 옆을 스쳐 지나칠 수도 없다. 또한 상위 계급은 바디족이 먹는 물이나 음식을 만지지도 먹지도 않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성관계하는 것은 허용돼 바디족 여성들을 매춘 대상으로 이용했다.
김재문 대표는 교육으로 바디족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바디족 아이들 교육 지원 사업에 뛰어든 이유다.
"교육으로, 스스로를 구할 기회를 주는 거죠.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해 네팔어도 하지 못하는 아이기 수두룩하니, 그 사회에서 좋은 직업을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거죠.
제도적으로는 카스트가 없어졌지만 사회적 인식은 그렇지 못합니다. 바디족 같은 달리트하고는 밥도 함께 먹지 않는 게 네팔 분위기입니다. 접촉 자체를 꺼리는 거죠.
하지만 아주 드물게 돈을 많이 번 달리트는 그 윗 계급하고 잘 지내는 경우가 있어요. 돈 때문에 불평등이 조장되는 우리와 다르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곳에서는 돈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거죠. 바디족이라도 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얻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대접을 받으리라 봅니다."
이런 이유로 시작한 게 바디족 아이들 학비 지원 사업이다. 올해 3월 여학생 7명을 선발해 그가 오랜 기간 후원하는 세인트존스 잉글리쉬 스쿨(Saint john's english school)에 입학시켰다. 대부분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중병을 앓고 있어 도저히 학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가정 아이들이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선발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정말로 어려운 것은 돈 문제 해결이었다. 교복비, 책값 등을 포함해 1년에 80만 원 정도의 교육비가 필요했지만, 그 돈을 당장 만들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 김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외상'이다.
"교장하고 이사장한테 후원자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했죠. 다행히 흔쾌히 승낙해서 아이들을 입학시킬 수 있었습니다."
일대일 결연 장학사업, 학교 도서관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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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울린 축제, 네팔 세인트 존스 잉글리시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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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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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일은 후원자를 찾아 '외상값'을 갚는 일인데, 그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인 듯했다. 이미 오랜 기간 한국에서 후원자를 모집해 네팔 아이들 돕는 일을 해온 터다. 그는 한국 후원자와 네팔 아이 일대일 결연 맺기 사업을 2013년부터 하고 있다. 현재 140여 명이 매달 3만 원씩 장학금을 지원한다.
한국 후원자는 김 대표가 경기도 시흥시에서 자원봉사단체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과 친구, 친척 등이다. 김 대표는 (사)시흥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회장을 할 만큼 한국에서도 봉사활동에 열정적이었다.
그가 네팔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이다. 해외봉사단 활동을 하며 인연을 맺은 시흥 거주 네팔 노동자 아칼 타망(Akkal Tamang)이 귀국해 도움을 요청하자, 그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아줬다. 김재문, 그는 현재 아칼 타망과 함께 네코스(NEKOS)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동안 네코스에서 한 일은 일대일 결연 장학사업 외에 장학재단설립을 위한 염소농장 설립, 학교 도서관 건립, 자원봉사자 교육 및 사업 개발, 네팔 청소년을 한국에 초청해서 진행하는 청소년 리더 역량 강화 등 무척 다양하다. 바디족 여학생 학습지원 역시 네코스 이름으로 하는 일이다.
일대일 결연 학비 지원 대상은 경제적 이유 등으로 학교 교육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다. 반드시 어느 학교에서든 학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후원 기간은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이고, 학업을 중단하면 후원도 중단된다. 학생이 졸업하거나 학업을 중단하면 후원자에게 연락해 다른 학생과의 결연, 또는 후원 중단을 결정한다.
꿈을 위해 많은 무엇인가를 포기할 용기가 필요
김재문, 그가 한국도 아닌 네팔에서 봉사활동에 열정을 쏟기까지는 오랜 준비가 필요했다. 인생 2막을 위한 준비였다.
"저는 서른 살 때부터 50살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어요. 40부터 준비하기로 계획했고요. 그래서 신학대학에 들어갔는데, 목사가 되려는 건 아니었고, 인문학을 공부하겠다는 목적이 컸어요. 대학원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이유는, 봉사활동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인생 1막이었던 인쇄업은 그에게 경제적인 안정은 제공했지만,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돈 버는 일은 그에게 있어 생계 수단이었고 가족을 위한 의무였을 뿐이다.
돈 버는 데 그다지 소질도 없었고 돈 버는 일을 하면서 그리 행복하지도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딸들이 학업을 마치면서 돈을 벌 이유도 사라졌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나이가 쉰 살 즈음. 싫은 내색 없이 적극적으로 응원한 아내와 딸들이 있어 두려움 없이 내딛은 발걸음이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순간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였느냐는 물음에는 긴 답변을 내놨다.
"아이들이 저를 코리아 바제(한국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무릎에 올라와 앉기도 하고, 그 해맑은 모습을 볼 때가 제일 기쁘죠. 내가 정말 잘하고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되고요.
'내 인생 정말 괜찮구나, 성공한 인생이다.' 이런 생각도 하고요. 인생 성공 기준이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행복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목표니, 이미 성공한 거죠."
봉사활동 중에서도 특히 교육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학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학창 시절 기억이 있어서다. 그는 "저 또한 중학교 때부터 계속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 했고, 그마저도 어려워 학업 기회를 잃는 친구를 많이 봐 왔다"며 "이것이 교육 지원 사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화를 마치며 인생 2막을 준비하려면 우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그다음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일을 찾는 건 사실 쉽지 않으니 '그래도 괜찮다' 싶은 게 있으면 과감하게 선택하고 실천에 옮기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선택'이란 단어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도 밝혔는데, 무척 흥미롭다.
"선택이란 게 진정 무엇인지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여럿 가운데 골라 뽑는다는 게 사전적 의미인데, 이게 뒤집어 보면 그 여럿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결국 선택에는 포기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 행복을 찾기 위해 많은 무엇인가를 포기할 각오가 섰을 때 그때가 인생 2막을 시작할 적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