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끝까지 원칙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날 회의 내용에 대해선 질문 주시더라도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19일 정부과천청사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의응답에 앞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우선 이 말의 배경을 톺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7월 31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은 취임한 당일 비공개 전체 회의를 소집해 공영방송 이사(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와 KBS)를 선임했습니다.
불과 1시간 30분 만에 공영방송 이사 13명이 면접도 없이 속전속결로 뽑혔습니다. 야당은 공영방송 이사 선임이 졸속, 불법으로 이뤄졌다며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지만,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는 거부했고,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회의 내용 비공개 원칙을 거듭 밝힌 겁니다. 지난 14일 국회 청문회 현장에서 국회 상임위 소속 의원들은 회의 내용 관련 증언을 거부한 김 직무대행 고발을 결정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김태규 직무대행은 회의록 비공개 원칙을 거듭 밝혔습니다 '국회 증언도 거부해서 고발을 당했고, 공영방송 이사 취소 소송에서 역시 불이익이 있더라도 회의록 공개는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회의록 공개는 방통위 전체 회의 의결을 거쳐야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직무대행의 한결같은 입장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각한 법적 하자가 있는 주장입니다.
우선 김 직무대행이 이야기하는 회의록 공개 원칙은 '방송통신위원회 회의 운영에 관한 규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규칙에는 '국회·감사원·사법기관 등에서 관련 법률에 의한 적법한 절차를 통해 비공개 회의의 회의록과 속기록을 요구하는 경우 위원회는 의결을 거친 후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김 직무대행의 말처럼, 회의록과 속기록이 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제출되면 '규칙 위반'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 조항은 법률보다 하위법인 '규칙'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태규 직무대행이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결론에 필요한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증언감정법 제4조는 국회 증인으로 채택된 자에 대한 증언 의무를 '국회로부터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증언의 요구를 받거나, 국가기관이 서류등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 증언할 사실이나 제출할 서류 등의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공무원이 직무상 기밀이라는 이유로 관련 사안에 대한 증언을 거부할 수 없다는 걸 명시한 겁니다.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조항입니다.
법에는 상위법 우선원칙이 있습니다. 하위법이 상위법에 모순되거나 저촉되면 하위법의 효력은 부인되는 것을 뜻합니다. 대한민국의 최상위법은 '헌법'이고 법률, 명령, 조례, 규칙 등의 순으로 법의 위계가 정해져 있습니다. 김태규 직무대행이 언급한 법의 원칙은 '규칙'이고, 국회증언감정법은 '규칙'보다 상위 법인 '법률'에 명시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김태규 직무대행이 언급한 규칙은 국회증언감정법에 의해 효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국회에 출석해 회의록 관련된 내용을 증언해야 합니다. 김태규 직무대행의 주장처럼 '전체회의 의결'이 없어도 회의록을 제출하거나, 회의 내용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는 겁니다.
회의록 비공개, 국회증언감정법과 충돌... 정당성 없어
김태규 직무대행은 판사 출신입니다. 누구보다 법리 해석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회의록 비공개 원칙은 국회증언감정법과 충돌하는데 이에 대한 법리 해석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국회증언감정법과 동일한 지위의 다른 법률적 근거가 나오지 않을까 유심히 경청했지만, 적절한 답변을 듣진 못했습니다.
적절한 법률적 근거가 무엇인지도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김태규 직무대행의 말을 받아 적은 속기록을 들여다보고, 요점이 뭔지 알아내려고 몇 번을 더 읽어봤는데도 '명확한 법률적 근거'가 뭔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혹시나 오해가 생길지 몰라 당시 김태규 직무대행의 말을 그대로 옮깁니다.
"재판하는 상황에서 판사가 초안 작성해서 비공개된 상황에서 국회에서 공개하라고 하면 그 판사가 할 수 있겠나. 직무상 비밀은 각 부처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있고, 기밀 분류하고 등급 매기는 절차가 있다. (회의록 공개를) 제한하는 것은 재판상 민사상 이유 때문에 제한한다. 백 번 양보해서 이게(회의록) '직무상 기밀'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공개 주체의 문제는 남는다. 우리는 위원회 조직이다. (방통위원도) 위원회 구성원이니까 비슷한 지위로 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해볼 수 있다. 법에서는 엄격히 바라봐야 한다. 위원회와 위원장, 위원은 다 다르다. 위원과 위원회는 분명히 구분된다. 국회에서 말하는 그 지적들을 위원회에 다 할 수 있지만 저한테 하는 것은 무리다. 저한테 하는 거나 (사무)처장한테 하는 거나 주무관에게 하는 거나 똑같다."
분명한 것은 '회의록 비공개'라는 김태규 직무대행의 입장이 불변이라는 점입니다. 김 직무대행의 이같은 답변에 대해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위법 우선원칙에 따라 회의록은 제출돼야 한다, 아울러 현재 김 직무대행이 주장하는 규칙은 내부 규율을 위한 내부 규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기관이나 국민들에게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면서 "법률이 무의미해져 버리는 행정은 있을 수 없고, 위원회가 국회증언감정법을 무의미하게 만들 권한 또한 당연히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희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도 "공공기관 정보는 공개가 원칙이며 비공개 사유가 있을 경우 공개 금지가 아니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로 규정되어 있고, 정보공개법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일반법이라면 국회증언감정법은 그에 대한 특칙으로 볼 수 있으므로 국회증언감정법이 우선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두 법률가 모두 '상위법 우선원칙'에 따라 현재 회의록 비공개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고, 이 변호사는 이에 더해 '특별법 우선 원칙'도 이런 내용을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듣다 보니 다시 궁금한 점이 생겨 김태규 직무대행께 또다시 질문드립니다.
그렇다면 방통위 회의록 비공개의 원칙은 합법적인거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