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기자말] |
우리 집은 1978년에 지어졌다. 무려 46년이 된, 서울 외곽에 자리한 오래된 단독주택이다. 수십 번의 땜질과 수리로 지금껏 버텨왔다. 몇 번 리모델링할 기회가 있었지만 건축업자들의 농간을 미리 알아채곤 포기했다. 그러는 사이 주변의 집들은 새 주인을 만나 대부분 빌라나 상가로 신축했는데, 우리 집만은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이곳에 이사 와 얼마 후 결혼했다. 우리 부부와 아버지, 어머니, 두 아이들까지 모두가 여기서 함께 살았다. 1992년에 어머니가 작고하시고 아이들까지 집을 나가니 이제는 아버지와 우리 부부만이 남아 집을 지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집에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았다.
긴 장마철을 싫어하는 이유
잠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방 천장을 보는 습관이 있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리면 나는 절로 예민해진다. 비가 이틀 이상 내리면 여지없이 천장에 비 흔적이 남는 탓이다. 처음엔 아기가 오줌 싼 누런 기저귀 같은 그림이 손바닥만 했는데, 어느새 점점 자리를 넓혀 천장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그럼에도 내 방은 천장을 뚫고 비가 방바닥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빗방울이 내 얼굴을 강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근거 있는 불안감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천장 뿐 아니라 외벽과 가까운 곳에도 누수로 곰팡이가 누룩처럼 자리하고 있어서다.
아버지가 계시는 안방 천장과 부엌, 그리고 화장실까지. 이런 상태는 비슷해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 많은 비가 내리면 급기야 화장실과 거실 천장에서 빗물이 쏟아지는데, 한심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적, 비 새는 방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걱정하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뿐인가. 오랜 비가 그치고 나면 집에는 퀴퀴한 냄새와 곰팡이가 진동한다. 내가 유독 긴 장마철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에 익숙하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그런 집에 사는지도 모르고 지낸다.
지난해 가을 동네 지인이 우리 집에 잠시 들렀다. 고령의 아버지를 뵐 겸 안부차 오셨다. 그런 그는, 집을 나가면서 내게 집에서 곰팡이 냄새가 너무 난다고 살며시 귀띔 했다. 인사하러 온 사람이 곰팡이까지 걱정하다니 심상치 않았다.
그의 말에 내심 충격을 받았다. 연로한 아버지와 환자인 내게 곰팡이는 좋지 않은 환경이라며 서둘러 개선하기를 바라는 조언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집을 수리하고 누수를 막는 방수작업을 당장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집안에서도 오래된 집이 불편해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노후에 생존이 걸린 문제라 더욱 그랬다. 그러니까 집수리는 이사를 포기하고 고민을 거듭하다 고른 차선책이었다.
어쨌든, '건강에 나쁜 환경에 살면서도 그간 고치지 않고 사는 것이 신기하다'는 지인의 표정을 읽고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때 70 나이에 백세를 앞두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가 집을 고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며느리가 신경 쓰였다는 아내
지난 5월 초 드디어 결심했다. 오래된 집을 방수공사와 내부 리모델링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가 들든, 모든 것을 집수리에 올인하기로 했다. 사실 언제까지 살지 장담할 수 없는 암환자로서 나는 보다 쾌적하고 안락한 가정에서 생을 마치고 싶은 욕망도 용단에 한몫했다(관련 기사:
암투병 중 기사쓰기, '살아갈 용기'입니다 https://omn.kr/27b4d ).
'집 대수선'은 무엇보다 가족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 문제를 아내와 아버지와 상의했다. 의외로 두 사람은 긍정적이다. 마치 내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서 아내는 내가 전혀 생각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말 본 며느리가 집에 오면, 며느리가 화장실을 쓸까봐 내심 마음 졸였다는 얘기였다.
오래된 수전과 세면대 등 창고 겸 쓰는 우리 집 화장실은 사실상 쓰레기 하치장 같은 곳이기도 했다. 집을 수선하는 데 있어, 화장실 개조가 가장 시급한 부분이라는 것도 아내 덕에 알았다.
그러나 막상 집수리를 실행으로 옮기는 데는 고려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시공업자를 선정하고 집을 비우고 두세 달 임시 거처할 집도 구하고 동시에 오래된 세간살이를 정리하고 버리는 등 준비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집을 대수선 하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전문가들은 차라리 새로 집을 짓는 것이 낫다고 했다. 리모델링은 신축보다 용이해도 하자가 발생하기 쉽고 공사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집을 수리하는 것도 되도록 피하라 한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따르고, 신경쓸 것도 많아 그러다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사 업체 말로는, 새 집으로 이사 가는 것보다 보관 이사가 두 세배 힘들고 비용도 비싸다고 한다. 이삿짐을 잠시 보관했다가 다시 집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이사를 두 번 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집수리와 공사를 남의 손에 맡긴다 하더라도 이처럼 우리들이 사전에 정리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개인적으로 정기적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당장의 치료도 중단 없이 계속 받아야 했다.
건강하고 안전한 집은 고령자들의 로망
오래 고민했지만, 그러나 백세 시대와 급격한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그러한 우려는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요즘은 60대에 은퇴하고도 30~40년을 더 사는 마당에, 거주할 곳을 새로 찾거나 사는 집을 대수선 하는 일은 건강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기 바라는 고령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집수리를 하면서 건축업자는 물론 시공과 관련한 다양한 사람들의 세상 사는 모습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걸 여러 번 실감했다. 내가 그동안 사람을 너무 믿고 살았구나,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헌 집을 새 집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유능한(?) 생활인으로 거듭났다. 못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고 전등 하나 제대로 끼울 줄 모르는 내가 어설프나마 맥가이버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집수리 현장을 지키며 얻은 소소한 기쁨이다.
태풍 '종다리'가 지금은 잠깐 소강상태다. 새벽에는 강한 바람과 창문에 들이치는 빗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집을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천장에서 비가 새지 않을까 또 괜한 걱정을 했다.
지금도 집수리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외벽과 슬라브 방수공사가 일부 남아있다. 이 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그간의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느낀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가족들에게 공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