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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실 진구사지 석등과 광배 동산의 아침 풍경
 임실 진구사지 석등과 광배 동산의 아침 풍경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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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토요일) 김제 금산사 전북불교 미래본부에서 주최한 '걷기순례 잇다' 행사가 있었다. '도시와 농촌을 잇다, 붓다로 잇다'는 표어로 지역의 구석구석을 걷는 순례 모임 성격이었다.

이날 행사는 전주혁신도시의 수현사를 출발하여 남원 만복사지, 선원사와 덕음암을 탐방하고 임실 진구사지를 거쳐 수현사로 되돌아가는 여정이었다. 수현사의 불교대학 재학생을 중심으로 하여, 남원 실상사, 선원사와 덕음암의 스님들이 이 행사에 함께하였다.

아침 안개 자욱한 곳에서 모이다

임실 지역의 행사라, 참가자들은 아침에 임실 진구사지에서 모였다.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임실 진구사지에는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폐허가 된 가람 터를 지키고 있는 우람한 석등(5.20cm) 위로 둥근 동산이 아침 안개를 배경으로 둥그스름한 광배를 이루었다. 자연스러운 동산과 인공 구조물 석등이 조화로운 풍경이었다.

 남원 만복사지 석탑
 남원 만복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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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행사에 사찰들의 역사문화 유산을 해설하는 문화해설사로 참가했다. 임실 진구사지에서 차량으로 50분 동안 44km 거리를 이동하여 남원 만복사지에 이르렀다.

전주 혁신도시 수현사를 출발한 버스가 20여 명의 참가자를 태우고 도착하였고, 남원 지역의 여러 사찰에서 참가자들이 차례로 도착하면서 '걷기순례 잇다'의 전체 참가자는 50여 명으로 불어났다.

만복사는 남원시 용정동의 기린산에 고려시대에 창건된 1목탑 3금당의 웅장한 사찰이었다.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를 지은 배경지로 유명하다. 이 사찰은 정유재란(1597년) 남원성 전투 과정에 왜군에 의해 방화되어 폐허가 되었다. 현재 국가유산으로는 오층 석탑, 석좌대, 당간 지주, 석불 입상과 석인상 등 석재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남원 만복사지 석인상
 남원 만복사지 석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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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만복사지의 석불 입상이 모셔진 전각에 모였다. 스님은 우리 지역 사회의 어려운 현실을 함께 고민해 보기 위해 이번 행사를 계획하였다고 입을 열었다.

지역 사회가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고, 고령화 등 사회적인 현상들로 우리 지역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도시와 농촌을 이어 함께하는 방안을 찾는 첫걸음으로 순례 모임을 마련했다는 설명이었다.

'너와 나의 무엇을 잇고, 또 지역과 사찰도 잇고, 또 지역과 사회도 잇고, 지역에 있는 마을 사람들끼리 또 잇자'는 이야기, '있는 것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폐허가 된 사찰의 작은 전각에서 내게는 진정한 울림으로 전해졌다.

남원시의 서쪽에 있는 만복사지에서 남원시의 중심지를 지나 선원사까지 2.5km와 선원사에서 덕음암까지 1.1km의 두 구간을 걷기 순례 참가자들이 걸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8월 하순의 무더운 날씨로 인해, 일단 선원사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남원 선원사 '걷기순례 잇다' 행사
 남원 선원사 '걷기순례 잇다'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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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산 선원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정유재란 때에 만복사(萬福寺)와 함께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고, 150년 후에 중건되어 이 지역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 사찰이었다. 문화유산으로는 약사전 안에 봉안된 철제 여래좌상과 높이 12m, 너비 7.5m의 커다란 괘불이 있다.

선원사는 남원 시내의 중심에 위치한 평지 사찰로서 예로부터 남원 지역의 백성들과 애환을 함께했다. 한발이 계속되면 스님들은 가까운 요천변에 괘불을 높이 세우고, 백성들과 함께 기우제를 지냈다.

이 사찰 명부전 탱화의 시왕 관모에 태극기(가로 8.5cm, 세로 3cm의 사각형으로 중앙의 태극은 지름이 2.2cm)가 한 폭 그려져 있다. 스님들은 일제가 태극기를 그리지도 게양하지도 못하게 하는 엄중한 시대(1917년)에 항일 독립 정신을 사찰 탱화에 그려넣었다.

일제 강점기에 이 사찰 도량에서 지역민들이 모여서 남원 권번 예인들의 판소리 공연을 들으며 독립 자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걷기순례 잇다' 행사의 중심이 될 역사성이 충분하였다.

조용히 걷는 참가자들, 주변에선 매미 울음소리만

 요천 남원대교를 걷는 행렬
 요천 남원대교를 걷는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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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천변 소리길을 걷는 행렬
 요천변 소리길을 걷는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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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순례 잇다'의 참가자들은 선원사를 떠나서 섬진강의 지류로서 남원 시내를 흐르는 요천을 가로지르는 남원대교를 건넜다. 참가자들의 행진은 작은 깃발 몇 개만 바람에 나부끼었고, 모두 침묵하며 걸었다.

이날 행사 팜플렛에 적혀 있던 인상적인 문구가 떠올랐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 깨닫고 행복하자!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찾는 즐거움을 즐기자'라는 내용 말이다.

참가자들은 그렇게 요천변 소리길을 걸었다. 무더위 속에 땀 흘리며 참가자들은 묵묵히 걷고 있었고, 산기슭 숲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청량하게 울려퍼졌다.

남원시 어현동 춘향테마파크 위쪽에 자리한 비구니 사찰인 덕음산 덕음암에 20여분 걸어서 도착하였다. 주지 스님이 미리 시원한 음료수를 마련해 놓았다. 이 사찰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원통전이 중심 전각이다. 미륵전에 약사불로 보이는 석불 좌상인 문화유산을 봉안했다.

 남원 덕음암 미륵전
 남원 덕음암 미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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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찰에서 요천 건너 광한루와 남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예로부터 이 지역 백성들은 이곳 덕음암에 올라 교룡산에 비치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았고, 요쳔에서 여름 밤에 횃불을 피우고 천렵하는 불빛을 보았으며, 선원사의 범종에서 저녁노을을 가르며 울러 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요즈음은 이 사찰이 깃든 덕음산에서 지리산의 만복대 줄기가 보이는 애기봉까지 이어진 솔바람길을 따라가는 호젓한 산길이 인기 있는 힐링 산책로이다.

원통전 앞에서 참가자들이 경건하게 섰다. 참가자들에게 건네는 스님의 말씀이 잔잔한 여울처럼 마음에 흘러들었다.

"요천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이곳으로 걸어 오시면서 명상을 하기도 하고, 여러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무언가를 '잇는'다는 것은 뭘까요. 우리가 이곳으로 오며 건너온 교량 같은 역할도 하고 손을 내밀어서 손을 잡고 이어줄 수 있는 부분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사회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삶 속에서 누군가를 조금만 생각하고 또 조금만 보듬어주고 조금만 이해해 주면, 그 자체가 깨달음 사회화의 시작이고 또 결과입니다. 우리는 헤어지기보다는 뭔가 서로 잇고 연결하며 사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원 춘향테마파크 연못 수련
 남원 춘향테마파크 연못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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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테마파크의 한 식당 앞에 작은 인공 연못에 수련이 무더위 속에서도 시원하게 피었다. 무더워진 몸과 마음을 점심을 먹으며 천천히 식히고, 일행은 임실 진구사지로 향했다. 춘향테마파크에서 임실 진구사지를 향해 차량은 44km, 50분 거리를 줄지어 이동하였다.

진구사는 백제로 망명한 고구려 승려들이 건립한 사찰로, 통일신라 시대에 석등을 조성했고, 고려 시대에 전성기였고, 조선 초기에 폐허가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이 사찰 앞의 섬진강을 가로질러 거대한 누각이 있었다고 한다.

석등의 옥개석까지 높이는, 우리나라 최대 석등이라고 알려진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의 석등보다 높다. 상륜부 장식인 보륜, 보주와 보개가 연결된 철주는 망실되었다. 진구사지에는 석등이 철불, 비로자나 석불과 함께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너와 나를 잇자. 기억과 지혜를 잇자. 그런 속에서 내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도 소중하지만, 너의 행복도 찾아주기를 기원하자. 또 우리 지역사회에서 지역사회가 하는 일들이 좀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런 마음을 담은 걸음걸음으로, 참가자들은 도시와 농촌의 사찰을 이어가며 '걷기순례 잇다' 행사를 마쳤다.

김제 금산사 전북불교 미래본부, 전주혁신도시 수현사 불교대학, 남원 실상사, 선원사와 덕음암에서 함께 모인 참가자들과 스님들이 '도시와 농촌을 잇다. 붓다로 잇다'는 표어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면서 임실 진구사지를 떠났다.

아침에 진구사지의 안개 자욱한 안개 앞의 동산이 광배가 되어 석등 위에 은은한 여운으로 머물던 장면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 장면을 '걷기순례 잇다' 행사에 함께한 참가자들에 여행의 풍경으로 전해주고 싶었다.

 임실 진구사지 석등 탐방
 임실 진구사지 석등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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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순례잇다#전주혁신도시수현사#진구사지광배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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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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